1978년 3월26일 동일방직 조합원 정명자를 비롯 김정자·김현숙·진해자·장남수·김복자 등 여성 노동자 6명은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부활절 연합예배 단상에 올라가 기습시위를 벌였다. 사진은 그해 5월 영등포 도시산업선교회에서 6명의 여성 노동자와 같은 시기 ‘성경 발언 논란’으로 구속된 인명진 목사의 석방을 위한 기도회를 알린 소식지. 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53
1978년 3월26일 새벽 5시30분,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는 부활절 연합예배가 열리고 있었다. 그동안 진보적 교단과 보수적 교단이 따로 하던 행사였으나 그해에는 통합예배를 보기로 합의해 17개 개신교 교단에서 50여만명의 신자들이 모인 대규모 집회였다. 그런데 예배가 시작되고 5시45분께 연단에서 기도하던 목사의 목소리가 갑자기 뚝 끊기더니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순간 수십대의 스피커를 통해 날카로운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동3권 보장하라! 동일방직 사건 해결하라! 방림방적 체불 노임을 즉각 지불하라! 가톨릭노동청년회와 산업선교회는 빨갱이가 아니다!”
여성 노동자 6명이 단상을 점령한 것이었다. 동일방직의 정명자, 방림방적의 김정자, 남영나이론의 김현숙과 진해자, 삼원섬유의 김복자, 원풍모방의 장남수 등이었다.
그들은 모두 크리스천이었는데 당시 21살의 정명자는 매우 독실한 편이었다. 그는 동일방직을 다니며 도시산업선교회(산선)를 통해 성경 해석을 듣고 현실과 이상 사이 괴리감의 이유를 깨달은 것을 계기로 노동조합 활동에 헌신적으로 앞장섰다. 그는 평소 교회는 가난한 자, 약한 자의 편에 서야 하는데 오늘의 교회는 지나치게 가진 자의 편에 서 있다고 개탄하곤 했다. 그는 훗날 구치소로 면회를 온 부친에게 “저 같은 딸을 가진 걸 행복하다고 생각하십시오. 이런 시대에는 호적에 붉은 줄이 없는 걸 부끄럽게 생각해야 되지 않겠어요?”라고 말할 정도로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김복자(김지선으로 개명)는 삼원섬유 노동조합의 부분회장으로 활동하다가 회사에서 쫓겨났고, 서울과 인천에서 취업을 했지만 두 번 모두 노동운동 경력 때문에 해고되고 말았다. 이후 평생을 노동운동에 헌신한 그는 감옥으로 면회 온 친구들에게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노동운동에 전력하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법정 최후진술에서는 “법정에서 받는 벌은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다. 신이 내린 벌만이 부끄러운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정자는 가톨릭 신자로 방림방적에 다니던 중 78년 2월 체불임금을 해결하라고 강력히 항의하다가 부서 이동을 당하는 등 회사의 부당노동행위 끝에 해고되고 말았다. 그는 늘 “노동문제는 노동자의 단결에 의해서만 해결된다”고 주장했다.
김현숙은 75년 봄 남영나이론에 입사한 뒤 77년 임금인상 투쟁을 하다가 15일간 구류를 받고 해고되었다. 그는 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동안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어째서 이 사회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타인의 이익을 잔혹하게 억누르지 않으면 안 되는가? 사랑이 없는 사회다. 우리 입을 것,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이 서로 위로하며 살아야 이 사회가 조금이라도 잘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썼다.
76년부터 남영나이론에서 일했던 진해자는 산선 소모임을 통해 노동운동을 알게 되면서 부활절 예배 투쟁에 동참했다. 그는 면회 온 친구들을 통해서 “저희들을 위해 기도하기보다는 저희들이 이런 감옥살이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그 배경과 상황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라는 말을 남겼다.
원풍모방의 대의원이었던 장남수 역시 산선 활동에 적극적이었는데, 단결력이 막강했던 원풍노조는 회사와 협상해 휴가 처리를 하는 것으로 그의 해고를 막아주기도 했다. 그는 평소 동료들에게 “우리는 벌떼처럼 되어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은 약하지만 노동운동을 탄압하는 무리를 찌르는 정의의 벌떼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곤 했다.
이들의 기습 시위로 생방송으로 중계되고 있던 부활절 예배는 5분 정도 중단되었다. 치안요원들에게 무차별 구타를 당하며 끌려가던 여성 노동자들은 끝까지 “우리도 인간이다”, “박 정권은 물러가라”를 목이 터져라 외쳤다. 여성 노동자들이 교회의 대규모 집회에서 노동문제를 호소하고 정권퇴진을 요구한 것은 한국 교회 역사상 없었던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들은 예배 방해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고, 9월16일 2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받고 모두 석방되었다.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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