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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길을 찾아서] 해고자 124명 ‘블랙리스트’ 돌린 김영태 / 이총각

등록 2013-07-30 19:13

1978년 3월23일 종교계의 중재안을 받아들여 단식농성을 풀고 회사 복귀 준비를 하던 동일방직 여성 조합원 124명은 4월1일 끝내 해고 통지서를 받았다. 섬유노조 김영태 위원장은 해고자 명단을 ‘블랙리스트’로 전국 사업장에 돌려 재취업까지 막았다. 사진은 3월23일 단식농성을 끝내고 명동성당에서 김몽은 주임신부와 함께한 여성 조합원들.
1978년 3월23일 종교계의 중재안을 받아들여 단식농성을 풀고 회사 복귀 준비를 하던 동일방직 여성 조합원 124명은 4월1일 끝내 해고 통지서를 받았다. 섬유노조 김영태 위원장은 해고자 명단을 ‘블랙리스트’로 전국 사업장에 돌려 재취업까지 막았다. 사진은 3월23일 단식농성을 끝내고 명동성당에서 김몽은 주임신부와 함께한 여성 조합원들.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54
1978년 4월1일 동일방직 작업현장 중앙 복도 게시판에는 124명의 해고자 명단이 나붙었다. 단식농성을 끝낸 3월23일 이후부터 노조 간부와 조합원들은 인천 산업선교회(산선)에 모여 좋은 소식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무려 124명에 대한 해고 통보는 모두의 말문을 막았다. 기어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굴욕적인 각서까지 쓰고 회사로 들어갔던 조합원들이 해고되어 산선으로 돌아오자 모두들 부둥켜안고 통곡을 했다. 이제는 노동조합 정상화가 아니라 생존권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총각은 지부장으로서 더 큰 치욕과 아픔이 느껴졌다. 124명 중에는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양성공도 많았다. 그들에게 더 많은 노동자의 권리와 조합원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게 하려고 얼마나 많은 날들을 가슴에 희망을 품고 투쟁해왔던가.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물거품이 돼버린 것이었다. 이제 다른 선택은 없었다. 총각은 이 부당한 현실을 바로잡을 수만 있다면 자신이 구속되는 일은 얼마든지 감수하리라 다짐했다.

인천 산선은 100명 넘는 동일방직 해고자로 북적였다. 지하의 소회의실도 방으로 꾸며지고 2층에 있는 예배당을 겸한 강당이 그들의 숙소가 되었다. 조화순 목사는 당장에 쌀과 이불을 조달하고 아직 찬바람이 남아 있는 4월의 밤을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상실감이 크니 춥기도 더할 것이었다. 그래도 한데 모여 있으니 힘이 나는 것 같았다. 노동자가 노동조합 활동을 한 것은 하늘이 파란 것만큼이나 명백히 정당한 일이었으므로 부당한 해고에 절망할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부장을 비롯한 노조 간부들이 끝내 이기리라는 각오를 다지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가족들의 생계까지 짊어진 여성 노동자들은 한 사람, 두 사람씩 자리를 비우기 시작했다. 나 혼자 몇 끼 굶는 것쯤은 참아낼 수 있겠지만 당장에 남동생 학비와 가족들의 배고픔은 눈감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다른 공장에 취직해 들어갔던 조합원들이 하나둘 다시 산선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블랙리스트가 전국에 배포돼 있었던 것이다. 섬유노동조합본부(섬유본조) 위원장 김영태는 동일방직 노동자를 길바닥에 내팽개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천인공노할 악행을 계속 저지르고 있었다. 그는 4월10일 124명의 해고자 명단을 전국에 있는 사업장으로 발송하여 동일방직 해고자들이 다른 공장에 취업하는 것을 아예 차단해버렸다.

해고노동자 이금옥은 통보를 받은 바로 다음날인 4월2일 인천기독병원 구내식당 잡역부로 취업했다. 힘들었지만 그래도 일을 해서 돈을 번다는 것에 만족하며 열심히 했다. 그런데 4월10일 인천경찰서 형사가 나타나 ‘여기서 근무하고 있는 것만 확인하러 왔다’며 둘러보고 돌아갔다. 그리고 1시간 뒤 서무과장이 호출하여 갔더니 동일방직 출신은 취업시킬 수 없다며 나가라는 것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 항의를 했지만 이미 끝난 일이었다. 이금옥은 8일치 임금 1만1000원을 받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4월19일 미국 투자기업 고미반도체에 입사원서를 낸 이향자는 아예 현장에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다음날 면접시험 중에 그동안 어디서 근무했냐고 질문을 해서 솔직하게 동일방직이라고 하니 면접관의 안색이 달라졌다. 그러고는 동일방직 출신은 취업할 수 없다며 면접 자체를 거절했다. 동일방직 해고노동자는 그렇게 ‘주홍글씨’가 돼버렸다.

산선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주로 기숙생들이었다. 집이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은 수시로 들락거리며 새로운 소식을 귀동냥했다. 잠깐 강경한 조처를 내린 것처럼 보였던 해고가 길어지자 장기간의 싸움에 대비해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래서 매주 수요일 오후 2시 산선 2층 강당에서 정기 모임을 열기로 했다.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회사에서는 124명이 해고되어 나간 뒤 수습책임위원으로 온 우종환과 조직행동대장 맹원구 등이 남자 조합원들과 지부 사무실을 점거하고 있었다. 그리고 회사 쪽과 밀착관계를 형성하며 조합원들에게 강제교육을 시키고 있었다. 드디어 본조의 지시대로 대의원선거를 치르기로 하고 4월27일로 날짜를 확정했다. 이제 동일방직 노동조합은 주길자 집행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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