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5월초 노조 총무부장 김인숙과 함께 인천소년교도소에 수감된 동일방직 노조 지부장 이총각은 9월 선고공판에서 뜻밖에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을 받고 풀려났다. 그동안 124명의 해고 조합원들은 거의 매일 조를 짜서 두 사람을 면회하며 옥바라지를 해주었다. 사진은 구속된 지부장을 대신해 복직 투쟁을 이끈 해고 조합원 대표들.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59
1978년 5월초 인천소년교도소에 수감된 이후 이총각은 재판이 있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팔을 벌리면 양쪽이 닿을 정도로 좁아터진 독방에서 빠져나와 유일하게 바람을 길게 쐴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보고 싶은 동일방직 해고 조합원 동료들을 잠깐이나마 만날 수 있는 날이기도 했다. 재판 날이면 조합원들이 떼로 몰려와 방청석을 가득 메웠다. 총각이 재판정으로 들어서는 순간 “지부장님!”을 외쳐 불러 교도관들의 “정숙!” 고함 소리를 들어야 했지만 그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는 교도관들의 협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총각은 조합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곤 했다.
조합원들은 돌아가면서 거의 매일 면회를 왔다. 물론 밖에서 힘겨운 투쟁을 계속해나가야 했기 때문에 못 오는 날도 있었다. 면회는 3분으로 짧게 끝내야 했지만 잠깐이라도 조합원들을 보는 게 총각의 낙이었다. 오늘은 누가 올까, 무슨 소식을 가져올까, 기대가 되고 설레었다. 집행 간부들이 와서 바깥일을 두고 상의를 할 때도 종종 있었는데 그가 반대 의견을 낼 일은 없었다. 모두 잘하고 있는데 더 보탤 말이 뭐가 있겠는가. 하루가 다르게 얼굴이 새까맣게 타서 오는 조합원들 보기가 너무 안타까웠다. 그들은 고생을 하고 있는데 자신만 주는 밥 먹으며 편안히 있는 것 같아 한없이 미안하기만 했다. 하지만 동료들이 밖에서 열심히 싸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총각은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를 것 같았다. 그래서 동료들의 면회가 기다려졌고 보고 싶은 마음에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어쩌다 면회가 없는 날은 하루가 너무도 길고 지루했다.
어머니는 재판이 있을 때마다 오셨다. 총각은 포승줄에 묶여 나오는 자신의 모습을 어머니가 보는 게 마음이 아팠다. 차라리 그럴 때는 천애 고아가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어머니는 판사의 질문에 총각이 거침없이 당당하게 말을 하는 걸 볼 때마다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다 괜히 빨리 나올 것도 더 길게 형을 받을까봐 불안하셨던 거였다. 최후진술이 있던 날, 어머니의 불안은 최고조에 달했다.
다행히 판사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 역시 가톨릭 신자여서 가톨릭노동청년회(지오세)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피고는 형을 마치고 출소하면 또다시 그 운동을 할 겁니까?”
판사의 질문에 총각은 큰 소리로 대답했다.
“더 열심히 할 겁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판사는 난감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래요?”
이총각과 김인숙을 담당했던 홍성우·하경철 변호사는 총각이 1심에서 나올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전망했다. 김인숙은 집행유예로 나올 것 같지만 이총각은 어려울 것 같으니 너무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 총각은 이 지옥 같은 감방에서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못 나가도 그만이라는 생각을 굳혔다. 재판에서 돌아오는 날은 마음이 복잡했다. 그날의 재판 과정을 곱씹어보면서 “이런 말은 더 할걸”, “고개를 어떻게 돌렸어야 했는데…”, “그래도 그 말은 잘한 것 같아” 등등의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9월12일 선고공판이 열렸다. 이총각과 김인숙은 문서은닉,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업무방해 등의 죄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풀려난 것이다. 그리고 불구속 기소되었던 김민심·김연심·석정남·임재옥·정의숙·최명희·최연봉 등은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기대를 못했던 총각이 집행유예 선고를 받자 조합원들은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그 자신도 얼떨떨했다. 변호사들은 아마도 판사의 재량이 많이 작용한 것 같다고 했다. 그 판사는 이후 10월의 인사이동에서 지방으로 전출되어 내려갔다고 했다.
그날 저녁 두 사람의 출소를 환영하기 위해 교도소 앞으로 수십명이 모여들었다. 이경심 세실리아가 어머니를 모시고 왔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떠밀려 딸 가까이 오지도 못했을 정도였다. 모두들 그의 출소 기념사를 기다리고 있어서 총각은 쑥스럽게 한마디 했다.
“여러분이 밖에서 열심히 투쟁을 해주신 덕분에 빨리 나왔습니다. 고맙습니다. 동일방직 민주노조는 죽지 않았습니다.” 총각은 목이 메어 더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동지들의 함성 소리가 저녁 하늘에 울려 퍼졌다.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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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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