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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길을 찾아서] ‘노동자 탄압’ 김영태 비판 유인물 배포 사건 / 이총각

등록 2013-08-07 19:22

1978년 5월 섬유산업노조 위원장 김영태가 부산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에 출마하자 동일방직 임시노조 간부 15명은 현지에 내려가 그의 악행을 알리는 유인물을 배포했다. 사진은 당시 선거법 위반으로 체포된 5명 가운데 지부장 직무대리 추송례(왼쪽)와 김옥섭(오른쪽)이 그해 7월 재판에 출석한 모습. <동일방직 노동조합 운동사> 중에서
1978년 5월 섬유산업노조 위원장 김영태가 부산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에 출마하자 동일방직 임시노조 간부 15명은 현지에 내려가 그의 악행을 알리는 유인물을 배포했다. 사진은 당시 선거법 위반으로 체포된 5명 가운데 지부장 직무대리 추송례(왼쪽)와 김옥섭(오른쪽)이 그해 7월 재판에 출석한 모습. <동일방직 노동조합 운동사> 중에서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60
전국섬유산업노조(섬유본조) 위원장 김영태는 1978년 1월23일 임시대의원대회를 통해 본부 산하 지부에 대한 본조의 통제권을 크게 강화하는 것을 내용으로 규약을 개정했다. 본조는 이 결과를 지부에 통보하고 대의원대회를 통해 채택하는 절차를 거치도록 공문을 내려보냈다.

간단하게 말하면, 본조에서 사고지부로 결정을 내리면 지부장은 본조에서 임명한 수습위원에게 모든 권한과 업무 일체를 즉시 인계하라는 내용이었다. 그 첫 대상이 바로 동일방직이었고 이에 저항하다가 이총각 지부장을 비롯한 민주노조 조합원 124명이 해고당한 채 거리에서 투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었다.

이렇게 문제의 규약이 지부의 자율성과 민주성을 파괴하고 어용인 상부노조가 하부노조를 마음대로 통제하는 수단이 된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원풍모방·와이에이치(YH)무역·반도상사 등 민주노조 지부들은 규약을 거부하고 논의를 보류하거나 아예 대회 의안에서 삭제하자고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그러자 본조에서는 지부에서 낸 조합비를 반송하는 것은 물론 상급노조에서 해야 할 모든 일을 거부한 채 개정된 규약을 채택할 것을 강요했다. 그리고 원풍모방의 방용석·박순희, 와이에이치의 최순영, 반도상사의 장현자 등의 대의원 자격을 박탈해버렸다.

78년 5월15일 김영태가 부산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에 출마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동일방직 임시노조는 지부 구성 이후 첫 활동으로 김영태의 악행을 알리는 유인물을 배포하기로 결정하고, 추송례 임시노조 지부장 대리를 비롯한 15명이 부산으로 향했다. 새벽에 도착한 그들은 가톨릭노동청년회(지오세) 부산연합회 사무실에서 아침을 먹고 휴식을 취한 뒤 점심때쯤 김영태의 선거구인 전포1·2·3·4동과 부전1·2동 지역을 답사하고 계획을 세웠다. 한두명씩 지역을 배당해 400부의 유인물을 집집마다 배포하거나 우체통에 넣는 등의 작업을 신속하게 진행한 다음, 각자 밤차로 서울로 돌아오기로 했다.

그날 밤 9시30분부터 유인물 배포 작업은 신속하게 진행됐다. 지리도 어두운 부산에 와서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해야 하는 작업은 모두를 긴장하게 만들었지만 15명은 서로에게 용기를 불어넣으며 각자 할당된 몫을 해냈다. 그런데 그만 김옥섭과 권분란이 동네 통장에게 붙잡혀 순찰을 돌던 김영태의 선거위원에게 인계되었다. 안순애와 김영순은 멀리서 이들이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는 재빨리 몸을 피해 부산역으로 향했다. 최연봉 역시 다른 지역에서 유인물을 뿌리다가 남자들하고 시비가 붙었는데 마침 지나던 한 남학생이 연봉의 손을 붙잡고는 “누나, 여기서 뭐 하는 거야?” 하며 큰길까지 데려다주었다. 아마 동네 불량배들이 괴롭히고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큰길에 나온 순간 연봉이 멀리 김옥섭과 권분란이 붙잡혀 실랑이를 하는 모습에 신경을 쓰는 사이 그 남학생은 사라져버렸다. 연봉은 그때 고마움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 게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다.

이어 연봉은 ‘가까이 오지 말라’는 옥섭의 신호를 받고는 부산역으로 가서 9명의 동료를 만나 함께 서울로 올라갔다. 새벽에 서울에 도착한 그들은 도시산업선교회(산선)로 돌아가려고 올라탄 버스 안에서 라디오로 부산의 유인물 배포 사건 뉴스를 들었다. 아무래도 산선에 가면 모두 잡혀갈 게 뻔했기에 그들은 각자 갈 곳을 찾아 흩어졌다.

한편 박양순·공인숙·추송례 등 3명은 부산에 남아서 취직자리를 알아보려고 하룻밤을 더 묵었다가 유인물 배포 사건 뉴스를 듣고는 부산에서 노동사목 활동을 하고 있던 정인숙의 소개로 한 수녀원에 숨어 있었다. 그런데 정인숙이 자신이 잘 아는 사람이 있는데 그와 얘길 해보면 이번 문제가 잘 해결될 수 있다며 전화를 했다. 그 말을 믿고 약속한 다방에 나갔던 3명은 그 자리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에서 형사들에게 연행되고 말았다.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지금도 확실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2002년 정인숙이 민주노총 여성위원장을 맡자 추송례는 ‘부산 의혹사건’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정인숙은 모든 책임 있는 자리를 내놓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 유인물 사건으로 구속된 추송례·김옥섭·권분란·박양순·공인숙 등은 79년 2월7일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출감했다. 함께 구속됐던 부산 지오세 회원 2명은 4개월 먼저 풀려났다.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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