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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길을 찾아서] 형사 감시망 뚫고 ‘해고자 기도회’ 참석 / 이총각

등록 2013-08-15 19:15

1978년 9월22일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 열린 ‘고난 받는 동일방직 해고근로자를 위한 기도회’에 이총각을 비롯한 해고자들은 경찰의 감시망을 뚫고 참석했다. 사진은 이날 오후 6시 시작된 기도회에서 문동환 목사가 강연을 하는 모습. 사진 기독자민주동지회 제공
1978년 9월22일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 열린 ‘고난 받는 동일방직 해고근로자를 위한 기도회’에 이총각을 비롯한 해고자들은 경찰의 감시망을 뚫고 참석했다. 사진은 이날 오후 6시 시작된 기도회에서 문동환 목사가 강연을 하는 모습. 사진 기독자민주동지회 제공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66
1978년 9월22일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 대강당에서 ‘고난 받는 동일방직 해고근로자를 위한 기도회’가 열렸다.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와 한국인권운동협의회 등 6개 단체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금요기도회였다.

동일방직 해고 노동자들은 이날 연극 ‘동일방직 문제를 해결하라’에 직접 출연하기로 했다. 10명의 해고자들은 현장에서 당했던 일들을 중심으로 대본을 만들어 지난 두 달 동안 연습에 땀을 흘린 터였다. 안동순은 생산과장 역, 안순애는 새마을부장, 전창순은 노무차장, 변현순은 부사장, 조효순은 김영태 섬유노조 위원장, 김영순과 최연봉은 조합원, 김용자는 반조직파 고두영, 석정남은 해설자 역을 맡았다. 모두들 어색한 몸짓에 자꾸 웃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연습이 반, 웃는 게 반이었다.

앞서 9월12일 지부장 이총각과 총무부장 김인숙도 2년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출소했다. 많은 조합원들과 해고자들이 구치소 앞까지 찾아와 지난 5개월간의 고통을 환호와 박수로 격려해주었다. 이총각은 감격으로 떨리는 마음을 겨우 진정시키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절대로 진 것이 아니다.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사회가 아무리 부패하고 우리의 힘이 약해도 투쟁은 앞으로도 꾸준히 전개되어야 한다. 그동안 많이 고생한 여러분께 감사한다. 절대로 용기를 잃어서는 안 된다.”

부평 노동사목 실무자로 있던 이경심 세실리아를 앞세워 딸을 마중나온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총각은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신 따뜻한 저녁밥을 먹으니 온갖 시름이 다 가시는 듯했다. 그동안 먹는 것도 부족하고 해를 보는 것도 부족해 얼굴이 누렇게 뜨고 부스럼이 하얗게 앉아, 한눈에 봐도 영양상태가 부실해 보이는 것만 빼면 총각의 건강상태는 다행히 양호했다.

총각은 바로 다음날 곧장 인천도시산업선교회(산선)로 해고 동료들을 찾아갔다. 산선의 실무자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이 다시 한번 환호하며 반겨주었다. 총각은 오랜만에 동료들과 둘러앉아 구치소 경험을 들려주고, 자신이 없는 동안 동료들이 겪어야 했던 고초도 빠짐없이 들었다. 총각은 자신의 자유가 구속당한 대가를 그들이 고통스럽게 대신 치러야 했다는 생각에 한없이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그러면서도 한편 자랑스럽고 대견했다. 노동자들의 당연한 권리를 찾는 일이 왜 이렇게까지 힘들고 고통스러워야 하는 걸까? 왜 인간의 탐욕은 그리도 질기고 비열한 걸까? 이해할 수도 없고 용서할 수도 없는 수많은 일을 겪어야 했지만 딱 한 가지 확실히 알게 된 건 ‘걷는 자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냥 저절로 손에 쥐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총각이 구치소에서 나온 날부터, 집 마당에는 담당 형사가 와서 서성거렸다. 이제 어디 가서 무얼 하든 그들의 감시망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런 걸 신경 쓸 그가 아니었다. 총각은 그동안 그리웠던 사람들을 만나며 자신의 부재로 뚫려 있던 공백들을 조금씩 채워가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해고 동료들이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사건들을 연극으로 만들어 연습하는 모습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금요기도회 날이 다가올수록 모두들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담당 형사들이 산선 주위를 배회하고 집을 감시하는 게 부쩍 눈에 띄었다. 해고자들은 그동안 애써 준비해왔던 연극이 그들의 방해로 무산되는 일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발생 가능한 사태에 대비해 어떤 일이 있어도 공연을 할 수 있도록 꼼꼼히 점검해나갔다.

결국 공연을 3일 앞두고부터 형사들이 각자의 집 앞을 지키며 외출을 금지하기 시작했다. 안순애는 자신 때문에 연극을 망치게 될까 봐 안절부절못하였다. 그는 9월22일 용기를 내어 옆집 장독대를 뛰어넘어 탈출을 감행했다. 기도회 시간을 아슬아슬하게 남겨두고 기독교회관에 도착해보니 다른 사람들도 모두 비슷한 상황이었다. 맨 먼저 도착해 초조하게 출연자들을 기다리고 있던 석정남은 한 사람 두 사람 도착할 때마다 반가운 마음에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총각은 이경심과 함께 기독교회관을 찾았다. 기도회 장소인 대강당은 오후 6시가 조금 지나자 출입문 바깥까지 사람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금요기도회가 그날처럼 대성황을 이룬 적은 없었다고 했다. 총각은 맨 앞쪽에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연극에 출연할 동료들은 얼마나 떨릴까? 무사히 잘 끝날까? 총각은 긴장감에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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