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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길을 찾아서] 경찰 무차별 폭력에 짓밟힌 기도회 / 이총각

등록 2013-08-19 19:08수정 2013-08-19 20:59

1978년 9월22일 저녁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 금요기도회에서 동일방직 해고노동자들이 준비한 연극은 경찰의 무자비한 유혈폭력진압으로 중단되고 말았지만, 이를 계기로 노동운동이 범재야의 민주화운동으로 확산됐다. 사진은 당시 동일 해고자들의 연극 장면(왼쪽)과 연행 과정에서 다친 상처를 보여주며 공권력의 폭력 만행을 증언하고 있는 이소선 어머니의 모습.(오른쪽) 사진 기독자민주동지회 제공
1978년 9월22일 저녁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 금요기도회에서 동일방직 해고노동자들이 준비한 연극은 경찰의 무자비한 유혈폭력진압으로 중단되고 말았지만, 이를 계기로 노동운동이 범재야의 민주화운동으로 확산됐다. 사진은 당시 동일 해고자들의 연극 장면(왼쪽)과 연행 과정에서 다친 상처를 보여주며 공권력의 폭력 만행을 증언하고 있는 이소선 어머니의 모습.(오른쪽) 사진 기독자민주동지회 제공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68
1978년 9월22일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 열린 동일방직 해고노동자를 위한 금요기도회는 경찰 수백명의 폭력적 난입으로 유혈이 낭자한 채 끝이 나고 말았다.

이총각은 그의 얼굴을 알아본 경찰에게 잡혀 폭행을 당한 뒤 계단 아래로 내동댕이쳐졌다. 순간 ‘이제 죽는구나’ 싶은 마음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때 꼬리뼈를 다쳐 꼼짝도 할 수 없었던 그를 경찰은 다시 완력으로 끌고 가 동대문경찰서로 연행했다. 총각은 이날 꼬리뼈에 금이 가는 바람에 이후 수년 동안 고생해야 했다.

그날 밤 기독교회관은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폭력경찰들은 닥치는 대로 구둣발로 차고 목덜미를 쳐 쓰러뜨렸으며, 여자들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마구 구타했다. 남녀 할 것 없이 배를 발로 차거나 머리를 내려쳐 기절시키고, 여자들의 젖가슴에 주먹을 휘두르고 주무르는 등 무자비한 깡패집단이나 다름없는 난동을 부렸다. 뿐만 아니라 문익환·윤반웅 목사 등 원로들마저도 마구 때려 밖으로 끌어냈다. 특히 2층에서 바로 아래층으로 던지는 바람에 기절을 한 사람들은 부상이 심했다. 눈두덩이가 터져 부어오르고 피를 흘리는 사람, 입술이 터지고 이가 부러져 피를 흘리는 사람, 갈비뼈가 부러져 신음을 하는 사람 등등 성한 사람이 없었다. 이날 40여명의 지식인, 종교인, 학생, 노동자 등이 경찰에 연행돼 조사를 받거나 구류처분을 받았다. 이 사건은 민주노조운동이 학생, 종교계 등 범재야의 민주화운동과 연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조화순·이총각·이창식·권운상’은 치안본부에서 특별취조를 당했고, ‘석정남·김용자·최연봉·임선임·안동순·안순애·조효순·전창순·이향자·김영순’ 등은 성동경찰서로 끌려가 15~20일씩 구류처분을 받았다. ‘송재덕·유재남·정강자·황영환·장현성·전순옥·김봉준·정승남·박성인’ 등은 동대문경찰서에서 15~29일 구류를 살았다. ‘이소선·조정하·박종관·박용서·안광수·진석환 외 1명’은 2~3일 뒤 훈방됐다. 정명자·김명자·김인숙·안순옥·김종국·문형순·구덕순·손혜영·김현숙·신혜자·정만례·강경단 등은 그날 현장에서는 빠져나왔으나 며칠 뒤 모두 연행됐다.

연극이 끝나기도 전에 격앙된 분위기 속에서 펼침막을 들고 밖으로 나가다가, 그대로 연행된 출연 해고자들은 성동경찰서로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모두들 심한 폭행을 당해 온몸이 성한 곳이 없었다. 경찰에서는 ‘시나리오를 누가 썼냐’와 ‘조화순 목사가 주도해서 연극을 만들지 않았냐’는 점을 집중적으로 물었다. 그들은 이번 사건을 조 목사에게 전부 뒤집어씌울 속셈이었다. 사실 조 목사는 해고자들이 연극을 하겠다고 했을 때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니 더더욱 해고자들은 절대로 조 목사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굳게 다짐했고, 그래서 심한 구타를 당하면서도 견뎌야 했다.

동대문경찰서로 먼저 끌려간 이총각은 유치장에서 이소선 어머니와 전태일 열사의 동생인 전순옥을 만났다. 총각은 지난 1년 동안 감옥에 갇혔다가 얼마 전 풀려난 이소선을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에 눈물을 흘렸다. 동일 노조가 똥물 세례를 당하고 집단 해고를 당하는 등 혼란스런 와중이라 면회도 못 가고, 출소했다는 소문만 듣고 있었는데 유치장에서 갇힌 신세로 만나니 죄송하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여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경찰은 무자비한 폭행 사실이 드러날 것이 두려웠는지 연행자들에게 면회도 시켜주지 않았다.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총각은 꼬리뼈를 다쳐 움직이는 게 힘들었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매일 아침 그의 눈을 가린 채 차에 태워 어디론가 끌고 갔다. 눈을 가렸던 수건을 풀자 책상 하나를 놓아둔 조사실이었는데, 그곳이 치안본부였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총각을 신문한 형사는 “여기가 어딘 줄 알아? 네가 그동안 들어갔던 경찰서하고는 차원이 다른 곳이야. 묻는 대로 대답 안 하면 넌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어”라고 협박을 해댔다. 그리고 사진 몇 장을 내보이며 아는 사람이 있냐고 묻더니 “박정희는 빨갱이”라고 외친 사람이 누구냐고 다그쳤다. 물론 총각은 그런 소리를 들은 바가 없다고 했다. 그렇게 끝없이 반복되는 질문으로 괴롭힘을 당하던 그는 열흘이 지나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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