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탁(왼쪽)씨는 서울메트로의 정규직 노동자이고, 유성권씨는 용역업체 소속의 비정규직 노동자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외환위기 뒤 제대한 그에게
이미 좋은 일터는 없었다
1993년 입사한 정규직 김씨는
당시 비정규직이 뭔지도 몰랐다 그들의 일은 지하철 점검·수리
수당은 정규직만의 몫이다
35살 유씨에게 결혼은 꿈이고
매년 고용계약을 걱정한다 재입사를 포기하고 어렵사리 취직한 대기업 계열 자판기 판매 업체에서 유씨는 자괴감을 맛봐야 했다. 서울 마포구 재래시장 할머니에게 당시 최신식 자판기를 450만원에 팔았지만, 할머니는 열흘도 안 돼 되물려 달라 했다. 할머니가 통사정했지만 회사는 자금 압박을 들어 받아주지 않았다. 그는 ‘영업을 무리하게 한다’는 생각에 회사를 그만뒀다. 그 뒤론 경기 광주에 있는 식당에서 고기 손질을 하고, 피혁업체에서 지갑·벨트 만드는 일을 했다. 친구들과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장신구를 떼어다 인천에서 팔고, 자동차 도장, 판금 일도 했다. 그러다 만 30살 되던 2008년 서울지하철의 경정비 용역업체 ‘프로종합관리’에 입사했다. 정규직 김씨는 어렸을 적 경상도에서 이사와 줄곧 서울에서 자랐다. 당시 서울 외곽이던 성북구 장위동에서 살았다. 1986년 2년제 전문대에 들어가 졸업 직후인 93년 만 26살에 서울메트로의 전신인 서울지하철공사에 입사했다. 서울메트로에 입사한 나이로 치면 비정규직 유씨보다 4년이 일렀다. 김씨가 대학을 졸업할 때는 흔히 말하는 ‘삼저호황’의 끝자락이었다. 당시엔 사람을 뽑는 회사들이 많았다. 서울메트로에 입사하고도 몰래 이곳저곳 입사 시험을 보는 동기들도 있었다. 김씨는 줄곧 군자차량기지에서만 17년을 일하다 창동차량기지에서 3년 근무한 뒤 올해 초 노조 간부가 돼 다시 노조 사무실이 있는 군자차량기지로 돌아왔다. 현재 김씨는 서울지하철노동조합 차량지부장이다. 김씨가 창동차량기지에서 만난 비정규직 후배 유씨는 지난해 군자차량기지에 와 있었다. 유씨는 그새 공공운수노동조합 서울지하철 비정규지부 사무국장이 돼 있었다. 같은 직장에서 비정규직과 정규직으로 나뉘게 된 뚜렷한 이유를 두 사람에게서 찾기는 어려웠다. 둘에게 왜 정규직이 됐고 비정규직이 됐는지를 물었다. 정규직 김씨는 “내가 좀더 나이가 어렸다면 나도 비정규직이 됐을지 모르겠다. 우리 입사 땐 그런 말 자체가 없었다. 요즘 보면 젊은 친구들의 미래가 암울하단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유씨는 “우리를 비정규직으로 해놓으면 회사는 관리 책임도 없고 설사 다치거나 죽어도 용역사가 책임을 떠안게 된다. 비용을 아낀다는 차원이라지만, 비정규직은 결국 실패한 정책의 희생양”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가른 것은 개인의 능력과 자질이 아니라 ‘세월’이라는 대답이었다. 김씨가 입사한 1993년과 유씨가 입사한 2008년 사이에 우리 사회와 서울메트로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서울메트로 외주용역을 직접고용으로”
정규직 형님-비정규직 동생들의 연대 서울메트로 군자차량기지에서 차량 검수·경정비 직군의 정규직은 350명, 중정비 업무를 하는 정규직은 200여명이다. 이곳에선 유성권씨를 비롯해 검수·경정비를 하는 비정규직 36명이 함께 일한다. 비정규직은 경제위기 이후 이곳에 출현했다. 서울메트로는 1997년 외환위기 때 한 차례, 또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한 차례 구조조정을 했다. 금융위기 때 서울메트로는 정원을 1만128명에서 9150명으로 줄였다. 1000여명을 줄이는 상황에서 나온 방안이 용역업체에 외주를 맡기는 이른바 ‘외주용역’이었다. 서울메트로는 5개 차량기지 중 4개 기지의 경정비를 용역업체에 맡기기로 했다. 군자차량기지는 직원 일부를 용역업체 ‘프로종합관리’로 옮기는 방안을 택했다. 정년 58살을 앞둔 이들을 명예퇴직시킨 뒤 인건비를 70%로 줄이고, 정년을 61살로 늘려 다시 이 업체를 통해 간접고용하는 방식이다. 회사는 인건비를 줄이고, 노동자는 정년을 3년 늘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애초 회사의 계획은 프로종합 정원의 100%를 서울메트로에서 옮겨간 ‘전적자’로 채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정원 107명 가운데 전적자는 33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74명은 신입사원을 채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 보니 서울메트로가 30%의 인건비를 지급하고 나머지를 프로종합관리가 부담하기로 했던 애초 구상도 틀어져, 서울메트로가 인건비의 80%를 부담하고 나머지를 프로종합관리가 대는 구조가 됐다. 위기를 맞아 비용을 줄이려던 회사의 계획이 어긋난 것이다. 2011년 공기업 감사에서 감사원은 “전동차 경정비를 민간 위탁한 지난 3년 동안, 직영으로 했을 때보다 101억원의 비용이 더 들어갔다”며 서울메트로에 ‘기관 주의’ 조처했다. 이 과정에서 유씨 같은 비정규직 74명이 탄생한 것이다. 서울메트로 비정규직 노조는 지난해 2월17일 결성됐다. 현재 34명이 조합원이다. 프로종합관리가 출범한 2008년 12월에서 3년이 지난 2011년 말 전체 직원 107명 중 58명만 계약을 갱신했고, 나머지 49명은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유씨도 그때서야 자신이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비정규직임을 깨달았다. 정규직 노조의 대의원들과 활동가들이 도움말을 줬다. 노동법도 알려주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도 주선해줬다. 그렇게 노조를 모르던 이들이 노조를 조직했다. 회사 쪽의 계약 해지 방침도 끝내 철회시켰다. 정규직 노조인 서울지하철노동조합은 ‘사내 비정규직의 직접고용’을 올해 단체협약의 주요 의제로 꼽았다. 김종탁 서울지하철노동조합 차량지부장은 “서울메트로는 지금 비정규직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다. 비정규직의 직접고용은 2008년 인건비 절감 차원에서 실시한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개점휴업’ 해놓고… 월세받듯 활동비만 타간 민간인사찰 국조특위
■ 미국인처럼 살려면 지구 4개가 필요하다
■ 아내 몰래 비상금 넣어두려는데…‘비밀 계좌’ 은근한 인기
■ 100억 사기로 흥청망청…접대부에 팁 ‘5천만원’
■ [화보] 두 손 모아…천주교 국정원 규탄 첫 시국미사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