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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쌍용차 김정우 옥중 인터뷰 “24명 죽게 한 진실 밝혀라”

등록 2013-08-23 20:37수정 2013-08-25 17:47

김정우 쌍용차 지부장은 지난해 정치권에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41일 동안 단식을 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29일 단식 20일차를 맞은 김 지부장이 대한문 앞에서 열린 ‘해외지식인 지지선언’에 참여한 모습이다. 김태형 기자
김정우 쌍용차 지부장은 지난해 정치권에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41일 동안 단식을 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29일 단식 20일차를 맞은 김 지부장이 대한문 앞에서 열린 ‘해외지식인 지지선언’에 참여한 모습이다. 김태형 기자
[토요판] 커버스토리 옥중에서 만난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
▶ 하나부터 스물넷까지 세어봤습니다. 천천히 세어봐도 1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스물넷은 무거운 숫자입니다. 쌍용차 정리해고 이후 돌아가신 정리해고자와 가족들의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새누리당은 올해 2월25일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하며 ‘국민께 드린 약속을 성실히 실천해달라’고 덕담을 건넸습니다. 여기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약속의 실천을 요구하는 사람이 한명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서울구치소를 찾았습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린 8월17일 토요일 오전, 서울구치소에서 만난 김정우(53)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은 면회를 온 기자를 환한 얼굴로 맞았다. 특유의 낮은 목소리로 “어쩐 일이오?”라고 묻는 김 지부장에게 “어찌 지내시는지 궁금해서 왔다”고 인사를 건넸다. 김 지부장은 “8월이 원래 힘든 달이잖아요. 4년 전 기억이 떠올라서 밤에 잠들기가 어려워요”라고 입을 뗐다.

옥에서 얻어먹은 생일 미역국

1990년 쌍용차에 정비부문에 입사한 김 지부장은 파업 당시엔 쌍용차의 정비지회장이었다. 당시 노조를 이끌던 한상균 전 지부장은 2009년 8월 파업을 주동한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김 지부장은 쌍용차에서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던 2011년 8월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을 맡았다. 쌍용차가 2009년 9월 민주노총 소속의 금속노조를 탈퇴했으니, 해고자들로 구성된 노조를 맡은 셈이다. 그가 지부장이 되고서도 죽음의 행렬은 멈추지 않았다. 2011년 10월에만 2명이 자살했다. 이듬해 3월까지 모두 7명이 사망했다. 김 지부장은 빈소에 가는 일이 잦아졌다.

지난해 4월5일 김 지부장은 온몸을 던져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차렸다. 정식으로 집회 신고를 하고도 분향소를 차리기 위해 경찰과 부딪치기를 십수차례 반복했다. 그는 지난해 연말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40일 넘게 단식을 하면서도 분향소 근처에서 소동이 있으면 제일 먼저 맨발로 뛰어나갔다. 공무원이나 경찰이 철거를 하려고 오면, 불같이 화를 내며 달려들던 그였다. 그런 그가 올해 6월10일에 경찰에 연행됐다. 지난 4월에 분향소가 철거된 뒤 설치한 임시분향소마저 중구청과 경찰이 철거하려 하자, 김 지부장이 나무막대기를 휘두르며 저항했기 때문이다. 그는 6월12일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됐고,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분향소가 광장에 나오면서
골방에서 혼자 힘들어했던
해고자의 아픔도 광장에 나왔다
신기하게도 분향소 차린 뒤
죽음의 속도가 현저히 늦춰졌다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도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도
새누리당 환노위 소속 의원들도
대선 전후 국정조사 약속해놓고
올해 초부터 흐지부지됐다

17일 오전 서울구치소 면회실은 수감자들의 친지·지인들로 북적거렸다. 면회 신청서에 수감자 이름과 번호, 수감자와의 관계 등을 적어 내고서 차례를 기다렸다. 오전 11시10분, 면회실 9호로 배정됐다. 투명창과 쇠창살을 사이에 두고 김 지부장과 마주 앉았다. 스피커를 통해 목소리가 들렸다. 안부를 묻자, 김 지부장은 건강히 지낸다면서도 이따금 4년 전 악몽이 떠올라 괴롭다고 했다.

“그래도 예전엔 선풍기 바람 소리만 들어도 괴로웠는데 이젠 좀 나아졌어. 그때보단 건강해진 거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상당수 선풍기 바람 소리에도 괴로워한다. 헬기 소리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2009년 8월 쌍용차 공장 위에는 헬기들이 떠다녔다. 이 헬기들은 경찰특공대를 실은 컨테이너를 공장 지붕으로 투하했고, 최루액을 노동자들을 향해 뿌려댔다. 당시 공장에 있던 노동자들은 그 뒤 헬기와 비슷한 소리만 들어도 괴로워하는 심리적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겪었다. 김 지부장도 마찬가지였다.

일반면회는 10분이 허락된다. 짧은 면회에서 재판 일정과 근황을 물었다. 김 지부장은 얼마 전 생일에 미역국을 먹었다고 말했다.

“엊그제 8월15일이 음력으로 따지는 내 생일이었어요. 공휴일이라 누구와도 접견하지 못했는데 예기치 않게 미역국을 얻어먹었지. 광복절이라고 낮에 팥빙수를 하나 주고, 저녁 밥상에 미역국이 나오더라고. 생일밥 얻어먹은 셈이지. 허허.”

감옥에서 생일밥 얻어먹었다고 자랑하는 김 지부장에게 다음번 만남을 기약하며 서신을 요청했다. 김 지부장은 그간 하고 싶었던 얘기를 서신에 담아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쌍용차로 목숨 잃은 24명의 상주

김 지부장을 인터뷰하기 위해 8월20일 오전 11시 다시 서울구치소를 찾았다. 이날은 정의당 심상정 국회의원이 마련해준 특별면회였다. 국회의원이나 3급 이상의 고위공무원이 수감자와 칸막이가 없는 장소에서 만날 수 있는 특별면회는 30분까지 시간이 허용된다. 준비한 질문을 하기에는 30분이 짧았다. 초조한 마음을 안고 숨가쁘게 인터뷰를 진행했다.

-살이 좀 빠진 것 같다.

“하루에 30분간 죽기 살기로 뛰고 있다. 일부러 좀 뺐다.”

심상정 의원이 “이럴 때라도 좀 쉬라”고 권유했다.

“단식하랴, 맨날 끌려다니고 두들겨 맞으니까 몸이 남아나지 않지. 이렇게 할 말은 아닌데 이왕 들어간 김에 바깥 일은 동지들에게 맡기고, 건강 좀 회복해서 나와라.”

김 지부장은 “엎어진 김에 쉬어 가라고, 괜찮다. 잘 지내고 있다”고 답했다.

-대한문 앞에 있는 쌍용차 분향소 철거를 막다가 여기 수감됐다. 분향소가 지부장에게 어떤 의미인가?

“나는 쌍용차 사태로 자살하거나 스트레스성 질병으로 목숨을 잃은 24명의 상주다. 24명의 영정을 모신 분향소를 대한문 앞에 만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더 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다. 지난해 3월31일 22번째로 희생자가 나왔을 땐 정말 침울했다. 22번째 희생자는 무급휴직자, 희망퇴직자도 아닌 정리해고자였고, 우리와 함께 적극적으로 투쟁에 참여했던 동지였다. 그런 동지가 아파트 23층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보통 이 바닥에선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죽지 않는다고들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서로 연대하고 아픔을 껴안으며 살아갈 힘을 얻는다. 최소한 스스로 목숨을 끊진 않는다. 그런데도 그 동지가 죽은 것이다. 쌍용차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일반적인 패턴을 완전히 뭉개버리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그때부터 죽음이 누구에게나 가까이 왔다는 위기의식이 있었고, 어떻게든 이 죽음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차린 것이다.”

-실제로 분향소를 차리고 나서 죽음의 행렬이 멈췄나?

“쌍용차에서 단번에 내몰린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은 대부분 골방에서 혼자 힘들어했다. 누구도 자신들의 고통과 아픔을 공감해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혼자 힘들어하다 죽었고, 자살한 동지의 가족들은 또 자살을 시도했다. 그렇게 살아남은 자들도 계속 힘든 시간들을 보냈다. 그런 와중에 분향소가 서울시내 한복판, 대한문 앞에 차려졌다. 각자 골방에서 힘들어하고, 안 좋은 소식을 들을 때마다 더 절망했던 이들이 분향소를 새로운 눈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분향소가 광장에 나오고, 쌍용차 해고자들 아픔이 골방에서 광장으로 나온 것이다. 시민들이 도심 한복판에서 분향소에 헌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것에서 희망을 보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역설적인 말이지만, 상중(喪中)에 상이 없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차린 이후부턴 죽음의 속도가 현저하게 늦춰졌다. 우리도 정확하게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향소를 차리고서 죽음이 늦춰지고 잠시 멈춰진 것을 봤기 때문에 그곳을 지킬 수 밖에 없었다.”

-분향소가 현행법상 불법이라는 논란이 있다.

“분향소와 농성장은 모두 집회와 시위를 신고한 구역에 있고, 분향 물품 등도 집회 물품으로 합법적으로 신고를 마쳤다. 경찰과 보수언론은 무작정 불법이라고 규정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인도의 일부를 점유해 ‘도로법’상 위반 소지가 있을 뿐이다. 관할구청에서 허가를 해주면 위법 소지가 전혀 없어지지만, 우리의 시설물이 보행자들의 통행에 방해가 된다며 이를 거부한다. 왜 분향소를 철거하고 만든 화단에는 같은 논리를 적용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도로법을 이렇게 적용하면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지나치게 제한된다. 오히려 쌍용차 분향소를 지나는 시민들은 우리에게 ‘그동안의 무관심이 미안하다. 힘내라’는 응원의 말을 전한다.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설치한 것이 중대한 위법행위라면 왜 시민들이 쌍용차를 주목했고, 선거를 앞뒀던 지난해엔 철거하지 않았나. 대선 전 후보 시절엔 쌍용차 사태에 공감하고, 국정조사를 하겠다고 약속하던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왜 침묵하고 있나. 대선이 끝나고 상황이 바뀌었다고 생각하니까 평소 눈엣가시였던 분향소를 철거한 것이 아닌가.”

-그래도 분향소 철거를 물리적으로 막아야 하나?

“분향소가 죽음의 행렬을 잠시 막았지만, 이 행렬이 언제 다시 이어질지 모른다. 지금도 안 좋은 소식을 접하거나 어려운 국면에 접어들 때면 혹시 또 안 좋은 일이 있을까봐 엄청나게 두렵다. 대선이 끝나고 3일 만에 노동자 3명이 자살했다. 그때도 무서웠다. 그리고 올 초에 국정조사가 무산되던 시기에도 쌍용차 평택공장에서 자살을 기도한 노동자가 사망했다. 결국 24번째 희생자가 나온 것이다. 만약 분향소가 경찰에 의해 철거되면 그 소식에 또 얼마나 절망할 것인가. 그래서 대한문을 떠날 수 없었다. 골방에 갇혀 있는 동지들에게 희망을 줘야 했고, 더 이상의 죽음만은 막아야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선거 때 했던 ‘국정조사’ 약속만 지켰어도 대한문 앞에서 이런 일들이 없었을 것이다.”

2009년 8월5일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 투입된 경찰특공대가 옥상에서 달아나던 조합원들을 붙잡아 폭행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A href="mailto:wjryu@hani.co.kr">wjryu@hani.co.kr</A>
2009년 8월5일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 투입된 경찰특공대가 옥상에서 달아나던 조합원들을 붙잡아 폭행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3년 미룬 무급휴직자 복직은 회사의 물타기

-결국 대통령의 약속 불이행이 문제라는 건가?

“김성태, 김상민, 이종훈, 최봉홍 새누리당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지난해 기자회견을 열어 국정조사를 약속했다. 그간 새누리당의 행태를 볼 때 믿기 어려웠지만, 대선 캠프를 총괄하는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이 종교계 지도자 33인이 모인 자리에서 ‘대선 이후에 쌍용차 국정조사를 실시하겠다’고 재확인했다. 그래서 조금 믿었다. 대선이 끝난 다음엔 또 물타기를 하려나 걱정했는데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연말에 한 언론 인터뷰에서 ‘내년 임시국회에서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에 대한 국정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집권 여당과 대통령이 이렇게 여러차례 한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던질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이 진정 약속과 원칙, 신뢰를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쌍용차 국정조사’ 공약부터 지켜야 한다.”

-올해 초 이한구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국정조사가 쌍용차 사태에 바람직한 해법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이한구 당시 원내대표가 올 초 평택 송전탑에 가서 고공농성 중인 한상균 전 지부장을 향해 ‘거기 위험한데 왜 올라갔느냐’며 타박을 했다고 한다. 그러고선 이유일 쌍용차 사장을 만나 면담을 하고 돌아갔다. 며칠 뒤 쌍용차가 무급휴직자 복직을 발표했다. 보수언론은 회사의 복직 발표를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결국 이 발표로 국정조사가 동력을 잃었다. 하지만 ‘무급휴직자 복직’ 발표는 완전히 기만적인 것이다. 당초 2009년 8월6일 경찰특공대의 잔인한 진압이 진행되는 중에 노사간에 합의가 이뤄졌다. 경찰이 방패로 노동자들을 찍어댔고, 테이저건을 쏘아대며 진압하고 있었기에 노조는 협상력이 현저히 떨어진 상태에서 협상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뤄진 노사합의가 무급휴직자를 1년 뒤에 복직시킨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회사는 3년이 지나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결국 무급휴직자들이 체불임금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이 2012년 12월에 회사가 얼마를 줄 수 있는지 조정안을 내도록 권고했다. 조정안의 내용으로 볼 때 회사 쪽이 응하지 않으면 소송 결과가 예견된 상황이었다. 회사는 자신들이 유리한 상황에서 체결한 노사 합의조차 이행할 의사가 없었고, 재판에서도 끝까지 버텼다. 그러다가 정치권에서 국정조사를 안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니까, 물타기용으로 무급휴직자 복직 ‘카드’를 꺼낸 것이다. 그 물타기에 완전히 빨려들어갔고, 결국 지금까지도 헤매는 상황이 됐다. 국정원 사태에서도 보듯이 우리 사회에서 항상 물타기가 통한다는 게 안타깝지만, 이러려고 한상균 전 지부장과 문기주·복기성 동지가 170일 넘게 15만4000볼트의 전류가 흐르는 송전탑 위에서 농성을 하고, 내가 40일 넘게 곡기를 끊고 단식을 했는가 싶다. 참 허망하다.”

-국정조사를 왜 해야 하나?

“국정조사는 절대 과도한 요구가 아니다. 말 그대로 ‘조사’, 사실을 밝히자는 것이다. 그 사실이 누구에게 유리할지는 모른다. 해고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조사를 하자는 것이다. 지금은 서로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우리는 회계조작이 있다고 주장하고, 회사는 없다고 반박한다. 우리는 경찰이 과잉폭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하고, 경찰은 폭력이 없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인 합의와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사실들을 밝히자는 것이다. 난마처럼 얽혀 있는 상황을 풀기 위해 국정조사를 해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것이다.

국정조사는 과도한 요구 아니다
회사와 엇갈리는 주장들의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것이다
범국민대회로 약속이행 요구해
정기국회서 의제로 제기할거다

정리해고 제도는 남발되고
저항하면 공권력의 폭력과
손해배상 청구소송 쏟아진다
쌍용차 사태는 현재 진행형이다

국정조사를 제대로 하면 향후 여러 문제를 푸는 데 필요한 사회적인 기준도 마련할 수 있다. 정리해고 문제 자체에 대한 사회적인 경각심을 줄 수 있고, 노사 갈등이 있는 산업현장에서 공권력이 어느 정도까지 개입해야 하는지도 기준을 마련할 수 있다.”

-국정조사를 통해 더 밝혀내야 할 것도 있나?

“쌍용차 정리해고가 회계조작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을 얘기하는 데도 3년이 넘게 걸렸다. 우리 노동자들이 진실의 쪼가리들을 하나씩 모아서 퍼즐을 맞추며 지난한 과정을 겪었다. 이 땅에 노동자들을 위한 회계법인과 회계사, 아니 진정한 회계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지난해 9월 오랜 투쟁 끝에 만들어낸 청문회를 통해 여러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났다. 주중 한국대사관의 외교문건에서는 상하이차가 기술유출에 대한 검찰 수사에 압박을 느껴 철수했다는 내용이 나왔고, 구조조정의 근거로 삼은 생산성지수가 조작됐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청문회 이후에도 감사보고서가 숫자도 맞지 않는 감사조서에 근거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새로 밝혀지는 등 쌍용차 회계조작의 근거들은 지금도 계속 나오고 있다. 국정조사를 하게 되면, 회계조작의 정황을 금융당국과 법원,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등이 정말 몰랐는지 확인할 수 있고, 청문회에 불출석했던 핵심 증인들을 부를 수 있다. 요즘 국정원 사태를 보면서 국정조사가 사실을 밝히는 유용한 수단인지 불안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쌍용차의 정리해고가 회계조작을 통해 이뤄졌다는 것인가.

“쌍용차가 회생계획안을 법원에 제출하면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 자산규모가 크게 줄었다. 안진회계법인은 기업의 자산을 5000억원 이상 감액했고, 이로 인해 회사의 부채비율은 160%대에서 560%대로 증가했다. 회사는 당시 판매되던 차종을 1~2년 내로 단종하면서 해당 차종을 생산하는 기계·설비 등의 가치가 거의 없어진다고 봤다. 하지만 해당 차종은 모두 3~4년이 지난 뒤에도 멀쩡히 생산되고 있었다. 이 외에도 정리해고 2646명을 산출하기 위한 생산성 데이터도 보고서에 제시한 출처가 가짜인 것이 드러나는 등 회계조작의 정황은 상당수다. 여러 시민단체와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도 쌍용차의 회계조작의 근거들을 제시하고 있다.”

쌍용차 손해배상 청구금액은 430억원

-해고 무효소송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

“1심에선 우리가 패소했지만, 그 이후에(2012년 9월) 청문회가 열리고 회계조작의 근거들이 쏟아지면서 2심에선 다른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 지난 6월 재판부가 특수감정인으로 회계전문가인 최종학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를 선정했다. 특수감정인이 회계자료를 감정한 결과를 8월 말에 내기로 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쌍용차 사태를 계기로 정리해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1998년에 도입된 정리해고 제도에 대한 새로운 고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리해고가 기업의 이윤을 늘리기 위한 목적으로 남발되고 있고, 정리해고 요건인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는 악용되고 있다. 실제로 정리해고 사업장 중에서 기업이 위기에 직면했다고 볼 만한 곳은 많지 않다. 8년을 싸우고 있는 코오롱은 정리해고 당시 흑자를 기록했고, 콜트콜텍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정리해고가 남발되는 것도 문제다. 2011년에만 정리해고된 노동자가 10만명이 넘었다. 정리해고가 경제살리기를 빌미로 ‘전가의 보도’처럼 행사되고 있다. 우리 사회는 해고자에 대한 안전망이 취약하다. 정리해고가 이뤄진 한 사업장에서 24명이 죽을 줄 누가 알았겠나. 쌍용차 청문회 당시 정치권에선 정리해고의 요건을 강화하는 법안이 논의됐지만, 지금은 그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 정리해고의 요건을 강화하고, 이 제도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고찰이 필요하다는 것이 쌍용차 사태가 주는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조현오 전 경기지방경찰청장은 당시 경찰 수뇌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에 직보해 쌍용차 파업현장에 경찰특공대를 투입했다고 청문회에서 밝혔다. 당시 공권력의 투입이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

“한마디로 말해서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구호를 실감하게 해줬다. 아까도 말했지만, 매년 8월이 되면 악몽이 떠오른다. 헬리콥터에서 내려온 경찰특공대가 방패와 곤봉으로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했고, 5만볼트의 전류가 흐르는 대테러 무기 테이저건을 노동자들에게 쏘아댔다. 경찰과 회사는 물과 음식, 전기, 의료품마저 차단했고, 함께 일하던 선후배들을 이간시켜 쇠파이프와 새총을 들게 했다. 신체적 위협과 정신적 고통을 함께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조현오 전 경찰청장은 청문회에서 테이저건에 얼굴을 맞은 노조원의 사진을 보고서 ‘빗맞았다’고 주장하는 등 웃지 못할 모습을 보여줬다. 그해에 경찰은 쌍용차의 폭력진압을 수사 우수사례로 선정했다. 살이 떨리도록 분노할 수밖에 없다.

공권력은 산업현장에서 노사간의 갈등을 접할 때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해고에 맞서 파업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회사는 직장폐쇄로 맞설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서로가 각자의 권리를 행사하며 싸우고, 협상할 수 있다. 하지만 공권력이 한쪽 편을 일방적으로 들어서 한쪽을 두들기면, 그건 공권력을 빙자한 사설 경비업체에 불과하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 가족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가장 힘든 부분은 손해배상 청구소송이다. 쌍용차와 보험사, 국가가 해고노동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금액이 총 430여억원이다. 이미 생계가 어려워진 해고노동자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조처다. 일부 복직한 노동자들은 월급마저 가압류되고 있다. 애초에 이 돈은 해고노동자들에게 돌려받으려고 청구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정리해고에 대항하고,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저항한 사람에게 가하는 처벌의 성격이 크다. 앞으로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저항하지 말라는 신호인 셈이다. 회사와 국가가 진정 쌍용차 사태를 풀려면 손해배상 소송을 철회해야 한다.

해고노동자들과 가족들은 지난 1년여간 따뜻한 연대의 손길이 이어지며 고통의 시간을 견디고 있다. 비록 버틸 수 있는 힘은 커졌지만, 고통의 강도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쌍용차 사태의 본질이 아직도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4일 범국민대회를 통해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여야 정치권을 향해 약속 이행을 요구해 9월 정기국회에서 다시 국정조사를 정식 의제로 만들려고 한다. 지금은 시민들의 관심이 다소 줄어들었지만, 지금도 대한문 앞을 가보면 많은 연대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왜 쌍용차에서 24명이 죽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한 사업장에서 이런 이례적인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사회적·경제적인 분석이 이뤄져야 하고, 교훈을 얻어야 한다. 쌍용차 사태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의왕/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화보] 쌍용차 범대위 관계자들 면전에 최루액 쏘는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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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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