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총각을 비롯한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동지회는 1979년 2월25일 이른바 ‘똥물 투척 사건’ 1돌을 기념하는 행사를 열고자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했으나 번번이 경찰의 방해로 무산되고 말았다. 사진은 그때 발송까지 마친 ‘동일방직 사건 1주년’ 초청장. 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73
1979년 1월7일 동일방직 해고노동자들은 새해 첫 정기모임을 열고 이총각·정명자·전창순 등 3명을 상근자로 결정했다. 그리고 취직을 했거나 낙향을 하는 등 흩어진 해고자들과 유대를 더욱 돈독하게 하는 방향으로 활동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다음날 상근자들은 황영환 등 5명의 자문위원과 함께 몇가지 활동 계획을 정리했다.
“전임자 및 자문위원은 매주 목요일 모인다. ‘동일방직민주노동운동수호투쟁동지회’라는 지나치게 길고 거창한 이름을 ‘동지회’로 바꾼다. 2월21일 똥물사건 1돌을 맞아 기념행사를 연다. 매주 현장이나 해고 동료 최소 3명을 정기적으로 만난다. 해고자 다섯명씩 팀을 나누어 조직을 구성한다.”
우선 똥물사건 1돌 기념행사는 해고자들의 취미와 소질을 고려해 다양하게 준비하기로 했다. ‘노동자의 임금’과 ‘어용노조여 각성하라’를 주제로 웅변대회를 열고, 합창단을 꾸려 ‘세상아 너는 아는가’와 ‘선구자’를 부르기로 했다. 78년 9월22일 기독교회관에서 공연했던 연극 <동일방직 사건을 해결하라!>의 후편을 무대에 올리기로 하고 대본도 만들었다. 봉산탈춤과 양주탈춤 공연도 준비했다. 어느 정도 연습이 마무리되자 초청장을 발송했다.
‘초청장-동일방직 사건 1주년을 맞이하여-강연 탈춤 연극 시 수필 웅변 노래 등을 준비한 저희들의 모임에 초대합니다. 연사 이문영 선생(전 고대 교수), 일시 1979년 2월25일 오후 6시 인천 답동 가톨릭회관-동일방직 해고자 일동’
그러나 1돌 기념행사는 열리지 못했다. 2월25일 오후 5시부터 행사장인 가톨릭회관 주변에 기동경찰이 깔리기 시작하더니 아예 봉쇄를 해버렸다. 정작 주인공인 이총각을 비롯한 핵심 해고자들은 집 밖을 지키고 있는 형사들 때문에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행사장을 찾아온 수백명의 참가자들은 예정 시간이 지나도록 행사를 시작하지 않자 상황을 알아채고 침묵시위를 벌였다. 7시 반쯤 되자 해고노동자 정만례가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시작한 것이 거리시위로 번져 참가자들은 신포시장에서 동인천역과 지하상가를 오르내리며 행진해 나갔다.
결국 기념행사는 노동절 다음날인 3월11일로 연기되었다. 그러자 경찰은 해고자들 집 앞이나 직장까지 와서 지키며 일거수일투족 감시를 했다. 결혼한 해고자의 남편 직장에까지 형사가 찾아가 괴롭히고 외출을 막았다.
물론 형사들도 못할 짓이었을 것이다. 한번은 총각의 집 앞에 의자를 갖다 두고 죽치고 앉아 있던 형사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니가 뭔데 우리가 이렇게 시간 낭비를 하며 쌩고생을 해야 하냐?” “신경 쓰지 마세요.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러세요?” “니가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면서 말썽을 부리니까 우리가 감시하는 거지!” “그러니까 감시하지 마세요!”
그러더니 3월10일이 되자 경찰 8명이 총각의 대문 앞에서 아예 모닥불을 피워놓고 지키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러는 그들이 안쓰러웠는지 추운데 고생한다며 따뜻한 물이라도 좀 갖다 주라고 총각에게 쓴소리를 했다. 3월11일 아침이 되자 그들은 세단 승용차를 몰고 와서는 총각을 강제로 태우더니 밥도 사주고 구경도 시켜주며 양평으로, 이천으로 끌고 다녔다. 총각은 기념행사가 또 연기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지만 건장한 경찰들의 완력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총각을 1박2일 동안 끌고 다니던 형사는 “니가 잘못이 없다는 건 다 아는데 우리도 좀 살자. 도대체 워커화를 벗을 새가 없다”고 불평하며 총각을 달랬다. 하지만 설마 해고노동자를 죽이기야 할까 싶기도 했고, 잘못한 일이 없으니 당당했던 총각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끝내 그렇게 ‘똥물사건’ 1돌 기념행사는 무산돼 버렸다. 해고자들은 성명서를 내고 1돌 기념반지를 만들어 나눠 가지는 것으로 기념식을 대신했다.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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