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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길을 찾아서] 국제섬유노조 엉터리 조사에 분노 치밀어 / 이총각

등록 2013-08-27 19:40수정 2013-08-27 22:54

1978년 2월21일 이른바 ‘동일방직 똥물 투척 사건’은 박정희 독재정권의 통제로 국내 언론에는 전혀 보도되지 않았으나 일본·유럽 등 외국에 먼저 알려져 국제적인 인권문제로 떠올랐다. 사진은 79년 2월 성금과 격려편지를 보내준 일본가톨릭정의평화협의회에 동일방직문제대책위 이름으로 보낸 답례 편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1978년 2월21일 이른바 ‘동일방직 똥물 투척 사건’은 박정희 독재정권의 통제로 국내 언론에는 전혀 보도되지 않았으나 일본·유럽 등 외국에 먼저 알려져 국제적인 인권문제로 떠올랐다. 사진은 79년 2월 성금과 격려편지를 보내준 일본가톨릭정의평화협의회에 동일방직문제대책위 이름으로 보낸 답례 편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74
1978년 2월21일 동일방직노조에 대한 ‘똥물 투척 사건’은 당시 언론 통제로 국내 신문에는 한 줄의 기사도 실리지 않았다. 오히려 외국 언론인 일본 신문에서 먼저 3월10일 노동절 행사장 시위사건이 사진과 함께 보도되었다. 이후 동일방직 해고자들의 투쟁이 계속되자 한국노총이 가입한 국제자유노련 아시아지역기구(ICFTU ARO) 기관지인 <아시아 노동>(78년 8·9월호)에서도 ‘공격당한 여성노동자들’이라는 제목으로 동일방직 사건을 소개했다.

스웨덴 노동조합연맹 대표단은 79년 2월3일부터 한달 동안 동남아시아 순방에 나서 7~14일 한국에 머물며, 정부기구 대표들뿐 아니라 노동계 인사들을 만나고 보고서를 작성했다. 유럽의 노조에서 한국을 방문한 것은 그들이 처음이었다. 이총각과 안순애는 형사들의 감시망을 피해 그들을 만나 동일방직 사건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했다. 동남아시아의 사회경제적 발전과 노동조합 상황을 연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방한한 그들은 동일방직 사건에 관심을 기울이며 국제적으로 진상을 규명하도록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

그들의 한국 상황에 대한 보고서 내용 가운데 동일방직 부분만 발췌해 본다. ‘가장 잘 알려진 사건은 말할 것도 없이 동일방직 사건이다. 78년 2월21일 발생한 이 사건은 정부의 탄압과 섬유산업노조(섬유본조)의 비민주적 행태에 대한 항거였다. 동일방직 투쟁은 또한 동일 직종 동일 임금을 요구하는 투쟁이었다. 동일방직 노조위원장은 70년대 초반 이래로 줄곧 여성들이었다. 동일 사건은 중요하게 평가될 것이다. 이 사건은 한국에 저항이 존재한다는 것을 표출한 현저하고도 세계적으로 알려진 사건이다. 그러나 이 사건이 유일한 저항은 아니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들의 보고서로 국제적인 여론이 형성되었고, 스웨덴 섬유노조와 독일 섬유노조의 요구로 국제섬유의류피혁노련(ITGLWF)에서는 한국에 조사단을 파견하기에 이르렀다. 국제섬유의류피혁노련은 한국의 섬유본조도 가입한 국제조직이었다. 그들은 79년 5월31일 방한해 6월2일까지 머무르며 조사활동을 벌였다. 이들의 입국 소식이 알려지자 이총각을 비롯한 동일방직 해고자들은 또다시 외부 출입이 통제되었다. 하지만 조사단은 노총, 섬유본조 그리고 동일방직 회사 간부들과 박복례 등만 만나고 해고자들은 만날 계획이 없는 듯했다. 그러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가톨릭노동청년회(지오세) 등의 요청이 끈질기게 이어졌고, 해고노동자들이 경찰의 감시를 뚫고 나타나자 마지못해 면담을 했다.

6월2일 지오세 사무실에서 이뤄진 면담에는 이총각·김영순·안순애·최연봉·전창순·정명자 등이 참석했다. 외국 조사단이 오면 항상 출입을 통제하는 경찰들 등쌀에 얼굴조차 보기 쉽지 않았던 해고자들은 복직에 대한 희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해 동일방직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하지만 이것이 빌미가 되어 또다시 곤경에 처해질지도 모르는 일이라 얼굴 사진은 정면이 아닌 뒷모습만 찍게 했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국제섬유의류피혁노련 조사단은 완전히 섬유본조와 정부 쪽 주장만 수용한 채 해고자들의 주장을 확인하려는 어떠한 조사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섬유본조를 두둔하는 그들의 태도에 분노한 해고자들은 ‘김영태 물러가라, 해고된 124명을 즉각 복직시켜라, 노동3권 보장하라, 78년 2월21일 이전으로 동일방직지부를 환원시켜라’ 등을 요구하며 이를 관철시킬 때까지 투쟁할 것을 천명했다. 그러자 그들은 사건의 책임을 해고자에게 돌리더니 ‘아시아지역에서 동일방직 정도면 근로조건이 좋은 편’이라는 일방적인 결론을 내리고는 출국해버렸다. 그들은 6월26일 스페인에서 열린 집행위원회에서 같은 내용의 조사 결과를 보고했다.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이총각은 크게 실망한 나머지 분한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들 역시 노동자일 터인데 노동자의 처지를 대변할 생각은 하지 않고 권력에 편승하는 모습이 한국의 노동귀족들과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일본가톨릭정의평화협의회에서 보내온 격려 편지는 그에게 다시 힘을 북돋아 주었다. “경애하는 동일방직 노동자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에게 가해지고 있는 부당한 탄압에 대하여 끓어오르는 통분을 느끼고 있습니다.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힘을 주시고 빛과 용기를 내려주시도록 기구합니다.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강경히 버텨나가십시오.”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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