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17일 새벽 전두환 신군부가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민주인사들과 학생들을 무차별 체포하면서 ‘서울의 봄’은 막을 내렸다. 그때까지 한국노총회관에서 복직 요구 투쟁을 벌여온 이총각과 동일방직 해고노동자들도 군인들의 위협에 할 수 없이 농성을 풀었다. 사진은 5월15일 노총회관서 민주노조 노동자들이 농성 해산 여부를 두고 토론하는 모습.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84
1980년 5월17일 오후 서울에 있는 대학의 학생회장단이 모두 연행되었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자정을 기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한다는 발표가 방송을 통해 흘러나왔다. 그리고 권력형 부정축재 혐의자, 사회불안 조성자,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배후조종 혐의자 등을 잡아들이겠다며, 김대중을 비롯한 종교계, 학계, 언론계, 문인, 학생 등 수많은 민주 인사들을 정부 전복 기도죄로 체포·연행하였다. 동시에 광주에서는 조선대와 전남대에 공수특전단이 들이닥쳐 학생들을 체포 구금하며 극도의 긴장상태로 몰아가고 있었다.
한국노총에서 농성을 계속하고 있던 동일방직 해고노동자들에게도 다른 조합 사람들이 철수해버린 뒤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던 가톨릭노동청년회(지오세) 활동가 윤순녀는 군인들이 곧 쳐들어와 강제로 해산을 시킬 거라며 그 전에 거취를 결정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조언을 해왔다. 뭔가 전세가 역전되고 있다는 걸 깨달은 건 대번에 달라진 노총 간부들의 태도가 감지되면서부터였다. 얼마 전까지 굽실거리던 그들은 마치 자기네 세상이 온 듯 거만을 떨기 시작했다.
5월17일 새벽 6시 이총각은 노총위원장 대리로부터 보자는 전갈을 받고 김인숙과 함께 위원장실로 찾아갔다.
“이제 경찰이 아니라 군인들이 들어올 겁니다. 그 사람들은 완전히 ‘무데뽀’예요. 미리 나가는 게 좋을 것이오.”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우리는 무서울 게 없어요.”
이총각이 큰소리를 치자 밖에서 군화를 신은 사람들이 들어와 협박을 하기 시작했다.
“이총각이 누구야? 신상에 좋으려면 빨리 해산하는 게 좋을 거다!” “우리는 못 나갑니다. 동일방직 말고는 갈 데가 없어요.” “아직 결혼도 안 한 것 같은데 이대로 구속당하고 싶어?”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는 듯하자 노총위원장 대리는 자신이 설득해보겠다며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들은 낮 12시까지 해산하지 않으면 모두 구속시킬 거라며 엄포를 놓고 사라졌다.
농성장으로 돌아온 총각은 해고자들과 함께 논의를 했다. 하지만 더 버티다가는 희생만 커진다는 의견과 복직도 못하느니 차라리 여기서 죽자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었다. 총각은 결단을 내려야 했다.
“지난 23일간 모두들 열심히 잘 싸웠다. 이번 투쟁은 여기까지만 하자. 싸움을 오늘만 하고 끝낼 것이 아니니 앞날을 길게 보자. 끝까지 남아 같이 투쟁하느라 고생들 많았다.”
총각은 참담한 심정이었다.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77년 4월 지부장에 당선되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시련을 견뎌야 했던가. 그토록 소망했던 복직이 코앞까지 왔다고 확신을 했었는데 결국 그 문턱에서 좌절을 당해야 하는 현실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한 치도 다르지 않은 마음으로 좌절의 아픔을 견디고 있는 동료들에게 총각은 한없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부장 석방을 요구하며 옷까지 벗어던져가며 투쟁을 했고, 똥물을 뒤집어쓰면서까지 저항을 멈추지 않았으며, 수없이 연행되고 구속되고 구류를 밥 먹듯 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 자리를 같이 지킨 피붙이 같은 동지들이었다. 힘든 노동이지만 땀 흘려 일하고 온전히 노동자들의 공간인 노동조합을 열정적으로 지키고 키워내며, 예전처럼 살아가는 것이 이리도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총각은 적진에서 동료를 구해내지 못한 대장의 심정이 되어 평생을 두고 갚지 못할 빚을 진 느낌이었다.
저녁 6시 농성장을 정리하고 노총회관을 나오려는데 노총 관계자가 다가오더니 그동안 먹은 밥값을 내라고 했다. 여기저기서 밥과 먹을 것들을 가져와서 끼니 걱정은 안 했지만 노총 식당에서 콩나물밥도 꽤나 먹긴 했다. 좌절과 상심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밥값을 요구하고 있었다. 노총회관 문을 나서는데 여의도가 허허벌판처럼 느껴져 동일방직 해고자들의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떠한 절망도, 어떠한 슬픔도 그들에겐 낯선 게 아니었다. 동일방직 민주노조가 자리를 잡으면서 숱하게 겪은 좌절이고 아픔이었다. 이제 그 단련된 절망과 슬픔이 이들을 노동운동의 전선에서 투사로 우뚝 서게 할 것이었다.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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