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18일 광주민중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한 전두환 신군부는 5월31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라는 임시기구를 만들어 권력을 장악한 데 이어 사회정화위원회를 내세워 원풍모방·반도상사·청계피복노조 등 민주노조들을 줄줄이 파괴했다. 사진은 그해 9월1일 전두환 국보위원장의 11대 대통령 취임식 모습(왼쪽)과 81년 1월 끝내 강제 폐쇄당한 청계피복노조의 현판을 껴안고 울고 있는 이소선 어머니.(오
른쪽) <한겨레> 자료사진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87
1981년 4월5일 동일방직 해고노동자들은 인천 도시산업선교회에서 오랜만에 정기모임을 갖고 해고 3돌 기념행사를 치렀다. 강원도, 충청도 등 지방에서 살고 있던 동지들까지 합쳐 40명이 넘으니 모두의 마음이 그득해지는 느낌이었다. 햇수로 4년이 지나는 동안 서로 다른 곳에서 조금씩 다른 삶을 살고 있었지만 역시 무얼 하든 어디서 살든 힘겨운 시간을 함께했던 기억은 영원히 서로를 연결해주는 끈이 될 것임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결혼해서 아이를 데리고 온 동료도 있었고, 만삭의 몸을 이끌고 환한 미소로 뛰어들어오는 사람, 여전히 노동현장에서 노조 결성을 도모하며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동지 등이 한자리에 모인 소중한 시간이었다.
행사는 1·2부로 나뉘어 예배를 간단히 본 뒤 시작했다. 고은 시인이 동일방직 투쟁을 두고 쓴 ‘쪼깐이 딸들에게’를 낭독할 때면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떡과 음료를 나눠 먹으며 장기자랑도 하며 화기애애한 자리를 이어갔다.
특히 이총각에게는 10개월간의 수배생활을 정리하고 오랜만에 동지들을 만난 까닭에 남달리 즐겁고 뿌듯한 시간이었다. 이날 동일방직 해고자들은 가족이나 다름없이 살가운 동지들의 얼굴을 확인하며 매월 첫주 일요일 오후 2시 정기모임을 열어 지속적으로 만남을 이어가기로 다짐을 했다.
최연봉·석정남·정명자 등이 정리한 <동지회보>도 그해 4월과 7월에 발간되었다. 동지회보는 해고자들의 글과 소식뿐만 아니라 다른 사업장 노조들의 투쟁 상황도 담았다. 4월호에는 동일방직의 만행에 누구보다 분개했고 섬유노조를 상대로 함께 투쟁했던 원풍모방 노조의 방용석 지부장과 박순희 부지부장이 지명수배됐다는 소식과 함께, 반도상사 노조의 해체식과 청계피복 노조원들의 노동조합 해산명령 철회투쟁을 전했다.
80년 봄 반도상사 노조는 끈질긴 임금협상 끝에 30%의 임금인상을 달성했고, 이후 노조가 주도하여 생산성 증진 운동을 전개하자 회사는 그 노고를 치하하기도 했다. 그러나 5월17일 비상계엄령 확대를 계기로 회사의 태도가 돌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3개월 뒤 노조 지도위원인 장현자, 지부장 조금분, 부지부장 김분겸이 임금인상 투쟁과 관련해 포고령 위반으로 계엄사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는 일이 발생했다. 이때 장현자는 군법회의에 넘겨져 구속되었다가 기소유예로 석방되었다. 그에 맞춰 회사는 공장 문을 닫고 노동자들을 내몰기 위한 공작을 벌이기 시작했다.
한국노총과 섬유본조는 사회정화 대상자라는 이유로 장현자와 조금분의 조합원 자격을 박탈했고, 회사는 기다렸다는 듯 두 사람을 해고해버렸다. 사회정화위원회는 8월27일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해 대통령에 선출된 전두환이 제5공화국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만들어낸 정부기구였다. 이는 노동계 정화와 노동법 개악으로 이어져 민주노조를 와해시키고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된 것이었다.
이렇게 반도상사 노조를 깨기 위한 정부와 회사 쪽의 공작이 진행되는 동안 조합원들은 견디지 못하고 하나둘 퇴사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남은 35명의 조합원은 ‘휴업철회’와 ‘정상가동’을 외치며 끝까지 투쟁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81년 3월13일 반도상사 부평공장 노조는 해체식을 열고 새로운 각오로 노동운동을 전개할 것을 다짐했다.
어려운 시기마다 온몸을 던져 투쟁을 선도해가던 청계피복노조 역시 정화의 칼날을 피할 수는 없었다. 81년 1월6일 박영수 서울시장 명의로 노조 해산 명령서가 날아들었다. 앞서 80년 10월11일 이소선 어머니가 포고령 위반으로 구속(징역 1년 선고)되면서 탄압이 점점 노골화하고 있었다. 노조 간부들은 해산명령에 맞서 투쟁할 것을 결의하고 폐쇄된 노조 사무실과 노동교실 대신 ‘아세아 아메리카 자유노동기구’(아프리) 한국사무소를 점거하고 “청계노조 해산명령 즉각 철회하라”, “서울시장 퇴진하라”, “청계노조를 원상회복시켜라” 등을 외치며 농성을 벌였으나, 0시5분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에 강제해산되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11명이 구속되고 모두 최고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며, 결국 청계피복노조는 와해되었다. 이후 청계지역의 근로조건은 급격히 나빠져 70년 ‘전태일 분신’ 이전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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