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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길을 찾아서] 부천서 노동사목 활동을 시작하다 / 이총각

등록 2013-09-21 18:44수정 2013-09-22 18:45

1982년 말부터 이총각(뒷줄 맨 오른쪽)은 가톨릭노동청년회와의 인연으로 오기백 신부(앞줄 왼쪽 둘째)의 부천 노동사목에서 활동가로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사진은 노동사목에서 진행한, 노동자 스스로 노동인권을 자각하고 노동환경 개선에 나설 수 있도록 깨우치는 프로그램인 자기발견교육 수료생들과 함께한 모습.
1982년 말부터 이총각(뒷줄 맨 오른쪽)은 가톨릭노동청년회와의 인연으로 오기백 신부(앞줄 왼쪽 둘째)의 부천 노동사목에서 활동가로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사진은 노동사목에서 진행한, 노동자 스스로 노동인권을 자각하고 노동환경 개선에 나설 수 있도록 깨우치는 프로그램인 자기발견교육 수료생들과 함께한 모습.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90
1982년 11월 어느날 이총각은 청치마에 회색 스웨터를 입고 집을 나섰다. 뭔가 새로운 일이 시작될 것 같은 설렘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가톨릭노동청년회(지오세) 전국회장을 지낸 윤수산나 언니가 부천 노동사목에서 실무자를 구하고 있는데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했던 말을 떠올리며 오기백(도널 오키프) 신부가 있는 부천 삼정동성당에 가는 길이었다. 총각은 지금껏 자신이 노동사목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지만 그것이 어떤 일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동일방직 투쟁에 함께했던 이경심 세실리아와 이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철순 마리아 등이 노동사목 활동을 모범적으로 하는 걸 지켜봐왔다. 총각은 일단 지도사제인 오 신부를 만나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노동사목은 노동자가 스스로 자신들의 권익을 회복하고 일상의 어려움을 개선해 나가는 노력에 도움을 줄 목적으로 가톨릭 성직자와 신자들이 전개하고 있는 활동이었다. 처음 시작은 1977년 성베네딕도수녀회 소속 이영숙 소피아 수녀가 ‘성남 만남의 집’을 열고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자아발견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면서부터였다. 이어서 부평에서도 77년 메리놀 외방선교회 나마진 신부와 권조회 수녀, 그리고 이경심 세실리아 평신도 활동가가 한 팀이 되어 노동사목을 시작했다.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부천에서 노동사목을 시작한 오 신부는 78년부터 1년간 목포 연동성당에서 본당사목을 하면서 광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 회보와 주보인 <빛고을>을 통해 한국 사회의 정치사회적 문제를 알게 되었다. 특히 동일방직 노조 투쟁과 와이에이치(YH)무역 사건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는 80년 본국인 아일랜드로 휴가를 떠나면서 다녀오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사목을 하리라 다짐을 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선교회 본부와 목 브랜타노 신부의 요청으로 부천지역을 맡았는데, 본당 활동에 한계를 느끼며 독자적인 노동사목 공간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결국 81년 삼정동성당 근처에 지하방을 구하고 인천교구 지오세 회장을 지낸 박순애 아나스타시아와 함께 부천 노동사목을 시작했다.

총각은 오 신부를 만난 뒤 부천 노동사목 활동을 하기로 결정했다. 노동사목은 노동자를 찾아가서 함께 생활하며 문제를 공유하고 해결해 나가도록 돕는 일이므로 총각에게는 익숙한 일이었다. 그는 평생 처음 집을 떠나 부천 노동사목의 지하방에 보따리 짐을 풀고 박순애 대신 실무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총각은 영어를 배운 적이 없어서 오 신부가 불편해할까봐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오 신부는 자신도 한국어를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총각이 영어에 서툰 것을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지하방은 어두컴컴하고 음침한 분위기에 연탄가스 냄새까지 심해 처음으로 집이 아닌 곳에서 지내게 된 총각으로서는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오 신부와 거기서 만난 지오세 회원들은 총각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오 신부는 외국 사람이어서 그런지 나이를 초월해 총각을 ‘루시아 씨’라고 부르며 스스럼없이 대했고, 노동자들의 모임이 끝나고 뒷정리를 하는 것 등 허드렛일도 마다 않고 함께 했다.

총각은 우선 지역을 돌아다니며 조사하고 저녁엔 지오세 회원들을 만나 누가 어느 공장에 다니고 노동조합이 있는지의 여부 등을 물어 실태조사를 했다. 당시 부천은 적은 인구의 소도시로 중소 공장들이 밀집해 있었고 노동자들의 의식수준은 낮은 편이어서 노동사목의 할 일이 많았다. 오 신부는 먼저 시작한 부평 노동사목의 활동을 보고 배우며 도움을 많이 받았다.

원래 부평 노동사목에서 진행하고 있었던 노동자 대상의 자기발견 교육은 노동자들 스스로가 자신의 실체를 인정하고 인식하도록 하며, 나아가서는 왜 노동자들이 자기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지 깨닫게 하고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이었다. 매주 화·목요일 두 번씩 성당에서 진행했다. 총 10회의 프로그램은 노동자들에게 친구는 어떻게 대하며 내 마음은 어떻게 드러내고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를 깨우치는 내용이었다. 사람들 앞에 나서서 말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던 노동자들은 5회 정도가 넘어가면서 조금씩 말문이 트여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나게 변화해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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