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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비정규직 여성의 시선으로 나를 본다면…영화 ‘카트’의 부지영 감독

등록 2014-10-31 18:42수정 2015-12-22 15:08

2007년 이랜드 홈에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모티브로 한 영화 <카트>의 부지영 감독을 지난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찻집에서 만났다. 어린 시절 언니와 어머니, 친할머니, 외할머니와 함께 자란 부 감독은 여성들이 공동체를 이뤄 투쟁하고 연대하는 모습을 영화에 세밀하게 담았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2007년 이랜드 홈에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모티브로 한 영화 <카트>의 부지영 감독을 지난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찻집에서 만났다. 어린 시절 언니와 어머니, 친할머니, 외할머니와 함께 자란 부 감독은 여성들이 공동체를 이뤄 투쟁하고 연대하는 모습을 영화에 세밀하게 담았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이진순의 열림
▶ 이진순 언론학 박사. 희망제작소 부소장. 살림하고 애 키우는 오십대 아줌마이자 공부하고 글 쓰는 열혈시민이다. 미국 올드도미니언대학 조교수로 인터넷 기반의 시민운동을 강의하다가 사직하고 귀국해 시민운동 현장에 합류했다. 경험과 논리에 갇히지 않고 즐겁게 소통하고 진화하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며 ‘열린 사람들과의 어울림’(열림)을 격주로 전한다.

노동자들의 투쟁은 이제 뉴스거리도 안 된다. 서울역 혹은 청계광장의 노동자 집회 소식은, 교통체증을 예보하는 라디오방송을 통해서나 전해질 뿐이다.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치는 노동자 집회의 구호 소리도,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소리치는 교인들의 외침만큼이나 그저 심상(尋常)하고 익숙한 소음이 되었다. 스피커 볼륨을 아무리 높여도, 주먹을 쥐며 목 터지게 투쟁가를 불러도, 그들의 주장은 다른 이의 가슴에 온전히 가닿지 못한다.

“비정규직, 최저임금, 부당해고….” 그 모든 언어가 따분하고 진부한 남의 나라 얘기로 들리는 세상에서, 우리는 시간당 알바생에게 커피를 주문하고, 일당제 아줌마들이 차려주는 밥을 먹으며, 용역직 경비아저씨한테 택배를 맡긴다. 자본주의 먹이사슬의 최말단에 놓인 그들이 나와 내 가족, 내 아이의 현실이며 미래일지 모른다는 생각 따위는 접어둔다. 노동자의 이야기는 이 시대 가장 보편적인 현실이면서, 가장 외면하고 싶은 터부가 되었다.

영화 <카트>의 미덕은 여기에 있다. 강 건너 불구경으로 비쳐져온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부당해고 반대투쟁을, 어디서나 만날 법한 우리 동네 아줌마들의 이야기로 가져왔다. 염정아, 문정희, 김영애같이 잘나가는 여배우들에, 요즘 제일 “핫하다”는 기대주 도경수까지 가세한 상업영화다. 예상을 뒤집는 반전이나 화려한 스펙터클 같은 것도 없는데 시사회장에서 영화를 보는 동안 서서히 목이 메여오더니 나중엔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메모하려던 노트를 바닥에 내려놓고 휴지와 손수건을 꺼내들 정도로. 울고 나서도 후련하지 않았다. 카타르시스보다는 묵직한 한숨이 남았다. 이 “불편한” 영화를 만든 부지영 감독을 지난 24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우리는 항상 을입니다”라는 벽 문구

-난 영화를 보면서 펑펑 울었는데 시사회장에서 어떤 기자가 “절제된 연출을 했다”고 하는 얘길 듣고 좀 의외였다. 같이 영화를 본 여기자한테 그 얘길 했더니 “여성하고 남성하고 공명하는 주파수가 좀 달라 그런 것 같다”고 하더라.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여성들, 특히 결혼하고 애 키우면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더 많이 공감할 수 있었을 거라고 본다. 감독으로서, 사측의 태도나 고객들의 행위에 대해서는 담담하고 객관적으로 그려내고 싶었지만, 주인공들이 개인적으로 갈등하고 가족 간에 반목하는 부분은 감정이 깊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대목은 특별히 절제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이런 대목에서 여성이 남성에 비해 더 공분할 수 있었을 것 같다.”

-“노동영화이자 상업영화”라고 소개가 되는데, 사실 난 이 영화를 노동영화이기에 앞서 여성영화로 봤다. 마트를 점거한 여성 노동자들이 한 지붕 아래 살게 되면서 같이 장을 보고, 같이 밥을 해서 빙 둘러앉아 먹고, 싱글맘인 혜미(문정희 분)의 아이를 함께 보살피고…. 처음에는 서로를 “여사님”이라고 부르는 개별 노동자였다가 점차 한 식구(食口), 또 하나의 가족관계로 끈끈하게 이어져 가는 과정이 아주 사실적이었다. 새로운 형태의 가족과 자매 간의 유대를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부지영 감독의 전작인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2008, 공효진·신민아 주연)의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맞다. 여성공동체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가까이서 본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파업의 양태가 다를 것 같다. 남성 노동자들이 파업을 할 때는 가족인 아내들이 도시락을 싸오거나 지원을 해주는데, 여성 노동자들이 파업을 할 땐 가족들이 지원을 하기는커녕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다. 굉장히 외로운 싸움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파업을 지속할 수 있었던 건, 말씀하신 것처럼 언니-동생, 이모-조카, 혹은 엄마와 딸같이 마트 농성장 안에서 같이 부대끼는 생활 덕분이었다고 생각했다.”

영화 <카트>에 등장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파업은 이랜드 홈에버의 투쟁을 주된 모티브로 한다. 2007년 7월1일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을 앞두고 이랜드는 계열사인 뉴코아와 홈에버에서 계약기간이 끝나지 않은 비정규직 700여명을 무더기로 해고하고 외주용역으로 전환하겠다고 일방 선언했다. “2년을 초과해 근무한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전환”시킨다는 새 법률 적용을 피하기 위한 꼼수였다. 해고된 이들의 대부분은 매장 계산대와 식품코너에서 일하던 기혼여성들이었다. 영화에서 5년 동안 정규직 되기만을 소망해 온 선희(염정아 분)의 대사, “저, 생활비 벌러 나와요, 반찬값이 아니고요”라는 절규는, 기혼여성의 노동을 단순한 부업벌이로 취급하며 노동법의 변방으로 밀어내온 현실을 고발한다.

-시사회장에서 김영애씨가 “우리가 알게 모르게 누군가의 갑이 되어 ‘갑질’을 해온 건 아닌가 반성하게 된다”고 얘기하셨는데, 이런 메시지를 주려고 일부러 설정한 건가? 영화 중에 보면 마트 직원실 벽에 “우리는 항상 을입니다”라고 붙어 있다.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모든 것은 다 자료조사를 통해서 재현된 것이다. ‘우리는 항상 을입니다’는 어느 백화점 탈의실에 붙어 있는 실제 문구다. 계단 아래 비좁은 공간에서 청소노동자들이 밥을 먹는 장면도, 연세대 청소노동자들이 실제로 그렇게 한 데서 따온 거다. 이야기를 극화했을 뿐, 이 영화에서 리얼리티를 극화한 건 하나도 없다. 실제에 존재하는 걸 영화적인 공간으로 옮겨왔을 뿐이다.” 부지영의 말을 들으며 영화 <카트>가 던지는 불편함이 비로소 이해되기 시작했다. 카트는, 나와 함께 살고 있는, 내 자매 같고 이웃 같은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를 보여주면서, 한편으론 그런 노동자의 시선을 통해서 나와 같은 여성 고객을 보게 만든다. 나의 일부는, 출근하느라 동동거리며 밥상을 차리는 여성 노동자에게서도 발견되지만, 또다른 일부는 서푼짜리 소비자의 권력으로 “어쨌든 불편을 끼치면 안 되잖아요!”라고 내쏘는 여성 고객에게서도 발견된다. 내가 의식하지 못했던 나의 냉담하고 오만한 모습이 거기 있다.

남성 노동자들이 파업할 때는
아내가 도시락을 싸오지만
여성 노동자들이 파업할 땐
가족이 말리고 발목 잡기 일쑤
그 외로움 이겨낸 여성공동체

“출산이 장벽이 되진 않았다
오히려 결혼하고 애 낳으면서
실존에 대한 고민 깊어졌고
영화 찍겠다는 의지 강해졌다
더 좋은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제주의 여성성이 내 영화의 원천

-서로 다른 처지의 여성들이 나누는 “공감과 연대”는 부지영 감독 영화의 일관된 주제 같다. 2011년 국가인권위원회 옴니버스영화로 내놓은 <니마>도 몽골 이주여성과 한국인 여자 동료의 유대를 다뤘는데.

“아무래도 내 유년 시절부터, 남자 없이 여자로만 이루어진 가족에서 오래 살았던 경험이 있어서일까…. 고향이 제주도인데, 제주도 여자들이 워낙 일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어머니와 이모들, 할머니와 이모할머니들이 서로 어울려서 마음을 나누고 음식을 해먹던 모습이 워낙 익숙해서인지, 영화 속에서 그런 모습을 만들어 내는 게 좋다.”

직업군인이었던 아버지는 부지영이 세 살 때 강원도에서 순직하셨다. 이후 어머니는 두 딸을 데리고 고향인 제주로 내려와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생계를 책임진 어머니를 대신해서 자매를 돌보는 건 주로 외할머니 몫이었다. 젊어서 해녀였던 외할머니는 늘 씩씩하고 남에게 베푸는 걸 좋아해서 어딜 가나 친구를 몰고 다니셨고, 어머니도 바쁘고 고단한 일 틈틈이 동네 자원봉사를 오랫동안 할 만큼 오지랖 넓은 여인이었다.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의 한 장면 같다.(웃음)

“나도 아주 좋아하는 영화다. 근데 정작 나는 그런 여성적 유대 쌓기가 잘 안되는 사람이다.(웃음)”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의 신민아 같은 성격인가? 까칠한 도시녀? 그 영화도 제주도가 배경인데. 제주에 사는 언니 공효진의 둥글둥글한 성격과 상반되는 동생?

“맞다.(웃음) 직업은 다르지만 우리 언니와 나의 자매 관계가 거의 그런 편이다.”

-왜 할머니나 어머니, 언니처럼 느긋하게 다른 이들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걸까? 똑똑한 여자들의 특징인가?

“글쎄…. 20대엔 오로지 나 자신에게만 관심이 향해 있었다. 지식이든 경험이든 내 안에 뭔가를 쌓는 것에만 관심이 있어서. 내가 뭔가 성취하고 난 다음에 남들을 생각하려고 하면 연대나 공감은 어려워진다. 내가 혼자 큰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건 30대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20대에 서울로 유학 와서 적당히 외롭게, 적당히 독립적으로 살았고 평생 그렇게 나홀로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근데 결혼하고 애 낳으면서 다시 엄마 품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맞벌이로 살자면 친정엄마 없인 못 견디니까.(웃음) 큰애 낳고 작은애 임신했을 때 제주도에 내려가 몇 달 산 적이 있다. 다시 내 삶에 외할머니, 친할머니, 엄마, 언니가 들어왔다. 지지고 볶으며 내 아이를 돌보는 그분들 보면서, 옛날 내가 어떻게 커왔던가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혼자 큰 게 아니더라. 큰애를 엄마와 할머니한테 맡겨놓고 도서관 다니면서 시나리오를 썼는데, 늘 봐왔던 익숙한 제주 풍경이 얼마나 좋던지. 집들, 밭들, 돌담, 가로수들, 그 나지막한 풍광이 무한하게 편안했다.”

제주에서 여고를 졸업하고 1990년 이화여대 교육심리학과에 입학할 때까지도 부지영에게 고향은 얼른 탈출해 떠나고 싶은 공간이었다. 학생운동 “언저리에서 얼쩡대다가” 졸업 뒤 선배 소개로 우연히 영화사 마케팅 부서에 취직을 했는데, 기라성 같은 감독들을 보면 엄두가 안 났지만, 거기서 일하는 연출부의 젊은 스태프들을 보니 “나도 노력하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삼수 끝에 한국영화아카데미에 입학한 게 서른 살 때. 자신에게 제주가, 가족이, 여성성이 어떤 의미인지 깨닫게 된 건 그 이후의 일이다.

-영화 공부를 그렇게 늦게 시작해도 감독이 될 수 있단 건가? 원래 영화광이거나 그런 것도 아니었고?

“전혀 아니다. 대학 4년 다니면서 영화 딱 한 편 봤다. <시네마 천국>!(웃음)”

-그럴 리가!(웃음) 영화감독이라고 하면 대개 어려서부터 뭔가 ‘덕후’ 기질이 강하고 영화에 꽂혀 산 사람들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난 서른아홉에 장편 데뷔를 했다. 아, 대학 때 본 영화 한 편 더 있다. <파업전야>! 그건 극장에서 본 게 아니라 서강대 가서 전경들 쫙 깔린 데서 본 거지만.(웃음)”

-여성으로서 아이 낳고 살림하면서 영화감독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 않나? 한국 여성감독 중 아이엄마로 일을 겸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 걸로 안다.

“나는 그걸 특별히 핸디캡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남자 감독들도 작품 하나 끝나면 다음 작품을 위해서 휴지기를 가지니까. 내 경우엔 출산이 장벽이 되진 않았다. 오히려 결혼하고 애 낳으면서 실존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고, 영화를 꼭 찍어야 하겠단 열망과 의지가 더 강해졌다. 핸디캡이 아니라 더 좋은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파업전야>에서 <카트>까지 변하지 않은 것

-<파업전야>를 보셨다니까 묻고 싶은데, 영화 <카트>의 마지막 장면은 <파업전야> 엔딩 장면의 오마주같이 보인다. 1990년 <파업전야>에서 멍키스패너와 쇠파이프를 들고 나오던 남성 노동자들의 엔딩신이, 2014년 물대포를 맞으면서 카트를 밀어붙이는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1990년과 2014년 사이, 무엇이 달라진 걸까?

“(곰곰 생각)…. 그때 그분들은 잘 살고 계실까? 파업전야에 나왔던 정규직 노동자들.”

-글쎄, 파업전야에 나온 노동자의 자식세대가 지금 카트를 밀고 있는 것 아닐까.

“그럴 수도…. 노동시장은 더 넓어졌는데 고용은 더 불안해지고, 건강한 일자리는 더 줄어들었으니.(한숨)”

이랜드 홈에버 투쟁은 510일의 긴 싸움 끝에 2008년 11월13일, 노조 간부들의 복직 포기를 조건으로 타결이 되었다. 근로기준법을 껴안고 자기 몸을 불사른 전태일의 기일과 같은 날이었다. 비정규직보호법 시행 7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비정규직의 현실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올해 8월로 비정규직 노동자가 사상 처음 600만을 넘어섰다. 전체 노동자 셋 중 하나는 비정규직이란 얘기다. 정규직과의 임금격차는 10년 전의 두 배 가까이 벌어져서 정규직 월급의 56%인 월 145만3천원에 머물러 있다. 국민소득 2만불 시대에도 법정 최저임금도 못 받는 사람이 200여만명, 전체 노동자의 10%에 달한다. 전태일의 싸움도, 이랜드의 싸움도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영화에는 다양한 비정규직 인물이 등장한다. 20년째 청소 일을 해온 김영애부터, 대학 졸업 후 면접만 50번 넘게 본 88만원 세대 천우희(미진 역)까지. 특히 염정아의 아들, 도경수를 중심으로 10대 편의점 알바생들의 노동현장이 드러나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캐스팅도 절묘했고. 진짜 그 집 아들인 것처럼 딱!(웃음)

“그냥 사진으로만 볼 때는 아이돌그룹으로 찍힌 모습들이 다 방실방실 웃는 얼굴이어서 이 캐릭터에 맞을지 확신이 안 섰다. 근데 막상 만나 보니 의외의 측면이 있더라. 아이돌스럽지 않게 차분하고 말수도 적고. 그때 뭔가 ‘촉’이 왔다. 이 친구, 이 얘기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시사회장에서 도경수가 “10대들이 많이 보러 오면 좋겠다”고 말하는 걸 보고 크게 박수쳤다.(웃음)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10대 출연자에게 이 영화를 설명할 때 어려운 점은 없었나?

“처음 시나리오 주고 ‘어떤 거 같니?’ 하니까, ‘이해는 잘 안되는데 좋은 내용인 것 같아요’ 하더라. 본인도 과거에 보컬학원 등록을 위해서 고깃집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고 했다.”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염정아의 아들이 편의점에서 시급알바를 한다는 설정이 ‘빈곤의 세습’을 암시하는 것 같아 착잡했다.

“나는 좀 달리 생각한다. 어려서, 몰라서, 주장하지 못했던 자기 권리를 경험으로 학습해 가는 과정 아닌가. 이 친구가 앞으로 취업을 하든 대학을 가든, 사회에 나와 노동자로서의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할 거라고 믿는다. 나는 오히려 희망적인 암시라고 본다.”

-영화를 위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직접 만나고 자료조사도 충실히 했다고 들었다. 그 가운데 가장 강렬하게 남는 대목은 뭔가?

이진순 언론학 박사·희망제작소 부소장
이진순 언론학 박사·희망제작소 부소장
“사람들이 너~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법을 안 지킨다는 점이다. 최저임금이 5210원인데 편의점에서 그렇게 받는 분 별로 없을 거다. 그걸 왜 안 지킬까? 위반하면 벌금도 내야 하고 구속도 될 수 있는데. 그리고 파업하는데 대체인력 투입하는 것, 그것도 불법이다. 해고자 구제명령 내려도 회사가 안 지킨다. 그냥 이행강제금, 벌금 내고 만다. 나는 정말 이해가 안 된다. 법대로, 상식대로 살면 안 되는 건가? 그러면 이분들도 싸울 이유가 없지 않나.”

그저 법대로 상식대로 살게 해달라고 누군가는 온몸을 던지고 누군가는 노숙을 한다. 2007년도 2014년도 변한 건 없는데, 그래도 지치지 않고 우리를 대신해 싸우는 그들이 있다.

“시민 여러분, 길을 가다가 투쟁현장을 보시면 내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지 마시고 왜 무엇 때문에 투쟁을 하는가 관심있게 봐주시고, 희망의 한 말씀이라도 해주세요. 이것은 내가 아닌 우리 모두의 투쟁입니다.”(2007년 7월 이랜드 농성노동자의 편지 중에서)

녹취 김연지(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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