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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착한 아파트 주민 되기 어렵지 않아요

등록 2014-11-28 19:50수정 2014-11-28 21:09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고백하건대 저는 경비 아저씨를 피해 다녔습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술 냄새 풍기며 야심한 시각 귀가하는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며칠 전 새벽 2시 귀갓길에 경비 아저씨께 처음으로 말을 걸었습니다. “내년부터 최저임금 100% 적용되는데 아파트에서 뭐라고 하던가요?”

안녕하세요, 본업도 노동이고 현업도 노동인 노동 담당 언론노동자 김민경입니다. 오늘은 제가 사는 아파트 경비 아저씨 얘기를 해보려고요. 지난 24일 아파트 주민의 언어폭력에 분신한 서울 강남구 ㅅ아파트 경비 아저씨의 동료들이 12월31일자로 계약해지, 즉 해고 통보를 받았다는 기사를 썼습니다. 그런데 기사를 넘기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 아파트 경비 아저씨의 내년은 안녕한지. 서울 강남구 ㅅ아파트 경비노동자, 서울 중구 언론회관 옆 전광판 위에서 복직을 요구하며 고공농성 중인 씨앤앰 협력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지난 13일 대법원 판결로 복직 길이 막힌 쌍용차 해고노동자를 걱정하면서도 정작 내 옆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무심했다는 반성이 들었습니다.

우리 아파트 경비 아저씨들의 처지를 알아보는 건 ‘고도의 취재 기술’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먼저 관리비 영수증에 적혀 있는 관리사무소에 전화해 내년 최저임금 100% 적용 문제를 물어봤죠. 아직 결정된 바는 없다면서도, 관리사무소에서 일한 지 얼마 안 돼 잘 모른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결정 권한을 가진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대표의 휴대전화 번호를 얻어 전화를 걸었습니다. 주민이라니 매우 친절하게 답해주셨어요. 11월 입주자대표회의 때 논의를 못 했고, 조만간 설문조사를 하고 다음 입주자대표회의 때 결정하겠다고 했습니다.

경비 아저씨를 직접 고용하는 우리 아파트는 지난해 외주화 계획을 투표에 부쳤습니다. 주민 다수의 반대로 이 계획이 철회된 적이 있어 투표한다니 조금 안심이 됐어요. 하지만 대표는 “지난번에는 경비실에서 설문조사를 해서 경비 아저씨 눈치로 제대로 투표를 못 했다는 얘기가 나왔다”며 집집마다 따로 설문조사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외주화와 달리 돈을 더 내야 하는 이 문제에 주민들은 다른 판단을 내릴까요?

내년 최저임금 5580원을 전면 적용하면 대체 우리 집은 매달 얼마를 더 내게 될까요. 최저임금법에는 감시·단속 노동자는 최저임금액과 다른 액수로 최저임금을 정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007년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2015년 최저임금 100% 적용을 목표로 꾸준히 비율을 높여왔죠. 올해는 최저임금의 90% 적용을 받습니다. 688가구가 사는 우리 아파트 경비 아저씨 14명은 시급 4689원을 받습니다. 이 아저씨들이 내년 최저임금을 받을 경우 제가 매달 더 내야 하는 돈은, 아파트 관리비 내용 중 경비비에 0.2(최저임금 적용 인상률)를 곱하면 됩니다. 제 경우에 매달 경비비가 2만6870원이니, 내년부터 5374원을 더 내야 합니다. 제가 종종 기자실처럼 애용하는 스타벅스에서 아낌없이 사 먹는 아메리카노 한 잔이 4100원입니다. 커피 한 잔 값 아끼면 되는 액수죠. 저는 경비 아저씨 14명의 최저임금 100% 적용에 찬성할 겁니다.

다시 ‘그날’(사실 그 시간은 아저씨의 휴게시간이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휴게시간을 방해했네요) 만난 아저씨 얘길 해볼게요. ‘우리 아버지의 마지막 일자리’라는 말처럼, 60대 중반의 아저씨는 전자제품 대리점을 운영하다 하이마트에 밀려 문을 닫고 이 일을 시작한 지 6년째가 됐다고 합니다. 제가 들은 말과는 달리 “내년에 모두 최저임금을 줄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며 걱정을 했어요. 분신한 경비 아저씨 기사도 텔레비전에서 보셨대요. “주민이 사장인데 우리가 처분을 바랄 수밖에 없죠”라면서도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김민경 사회정책부 기자
김민경 사회정책부 기자
매일 밤늦은 귀갓길 안전에다 택배까지 맡아주는 아저씨를 위해 저는 오늘 아침 출근길에 민주노총 누리집(nodong.org)에서 아파트에 붙이라고 제작한 선전물을 내려받아 엘리베이터에 붙였습니다. 요즘 언론에선 너나 할 것 없이 경비 아저씨 기사를 쓰고, 인터넷에서도 많이 읽히고 있어요. 그만큼 사람들의 관심이 많다는 뜻이겠죠. 그 관심을 이제 ‘우리 아파트’로 돌릴 때인 것 같습니다. 전국 16만 경비 아저씨들의 고용이 사용자인 우리에게 달려 있으니까요.

덧. 취재하면서 우리 아파트 경비 아저씨 14명의 계약기간이 모두 내년 4월에 맞춰져 있다는 사실을 단독(?)으로 입수했습니다. 내년 4월에 무인경비시스템 도입 여부를 논의하기 위해서랍니다. 산 넘어 산이네요.

김민경 사회정책부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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