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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장그래는 과연 누구 편을 들까요

등록 2015-01-02 19:47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852만 비정규직 노동자와 1025만 정규직 노동자 여러분 새해 잘 맞으셨습니까. 정부 통계에 ‘협력업체 정규직 노동자’로 잘못 분류돼 정확한 통계도 없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분들도 안녕하신지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드리려니 고용노동부가 2015년을 사흘 앞두고 발표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이 마음에 걸려 ‘친절한 기자’로 찾아뵙게 된 노동담당 기자 김민경입니다.

고용부가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한 지난달 29일, <한겨레> 1면에는 비정규직 노동자 3400명이 돈을 모아 만든 광고가 실렸습니다. 웹툰 <미생>의 장그래가 나와 ‘내가 정규직 시켜달라고 했지, 비정규직 연장해 달라고 했냐고!!’라고 외치고 있죠. 참고로 광고 모델 장그래는 <미생> 작가 윤태호씨의 동의 덕분에 나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한겨레>가 2014년의 인물로 뽑기도 한 장그래는 고용된 지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기간제법’(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돼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잘린’ 기간제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장그래 살리기 법’이라며 비정규직 종합 대책을 환영하는 쪽도, ‘장그래 죽이기 법’이라며 비판하는 쪽도 모두 장그래를 불러냅니다. 장그래가 과연 누구 편을 들지 한번 따져보겠습니다.

이번 대책의 핵심은 ‘기간제 비정규직 노동자’ 고용 기간을 현재 ‘2년’에서 35살 이상 노동자가 동의할 경우 ‘4년’으로 늘릴 수 있다는 겁니다. 2년 넘게 고용한 뒤 정규직 전환이 안 되면 2년 이상 고용 기간 총임금의 10%를 이직수당으로 지급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습니다. 그 근거로 고용부는 “기간제 노동자의 82.3%가 고용 기간을 연장하되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을 때 금전 보상을 하는 데 찬성했다”는 설문조사를 내세우며 “당사자가 원한다”는 걸 내세우고 있죠.(이 설문조사는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싶냐’는 질문이 포함되지 않아 논란을 낳았습니다.)

고용부는 또 32개 업종으로 엄격히 제한된 ‘파견노동자’ 허용 업종도 55살 이상 고령자와 고소득 전문직의 경우 확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파견노동자는 근로계약을 맺은 ㄱ업체(파견업체)가 파견한 ㄴ업체(사용업체)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형태입니다. 사용업체가 직접 업무 지시를 내리고 임금 같은 노동조건을 사실상 결정하지만, 근로계약을 맺지 않고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지지 않아 가장 나쁜 고용 형태로 지적되지요. 이 때문에 파견법(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서 파견노동자를 채용할 수 있는 업종을 제한했는데, 이번에 그 대상을 대폭 늘려주겠다는 겁니다.

<한겨레>에 광고를 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용부의 대책을 “기업들에게 숙련된 비정규직 노동자를 마음대로 부려먹으라는 것”이라며 “재벌들은 더이상 정규직 신입사원을 뽑을 이유가 사라진다”고 비판했습니다. 지금도 기간제노동자가 2년 안에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율이 12%에 그치는데, 4년으로 기간을 늘려주면 기업은 정규직 전환은 생각도 않고 숙련된 비정규직을 계속 고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2년 이상 고용 땐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파견법 조항에서 제외된 55살 이상 고령자 파견을 확대하면 기업들은 저임금 숙련공에다 정규직 전환 부담도 없는 이들을 선호할 거라 전망합니다. 기간제노동자와 파견노동자 등 ‘나쁜 일자리’를 늘려 ‘고용률 70% 달성’이라는 정부 목표를 달성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되는 까닭입니다.

김민경 사회정책부 기자
김민경 사회정책부 기자
그럼 정규직인 ‘안영이’는 괜찮을까요? 고용부는 ‘해고 기준과 절차를 명확히 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도 밝혔습니다. 객관적·합리적 평가, 교정 기회 부여 등 해고 회피 노력, 공정한 절차를 분명히 규정하겠다고 합니다. 노동계는 지금은 부당해고로 분류되는 ‘저성과자 해고’가 남발될 수 있다고 걱정합니다. 현재 근로기준법상 정당한 해고는 징계해고, 정리해고, 통상해고뿐인데 여기다 새로운 조건을 법 개정도 없이 추가하는 효과를 낸다면 그 자체가 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셈이 되겠죠. 입사 초기, 여자라는 이유로 과장, 부장에게 찍힌 안영이의 인사평가는 과연 객관적일 수 있을까요?

이번 대책이 실현되면 장그래와 안영이의 일자리 모두 불안해질 거란 우려가 노동계에서 쏟아집니다. 아직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고용부의 비정규직 대책은 앞으로 ‘경제사회발전을 위한 노사정위원회’에서 노동계, 경제계 안과 함께 오는 3월까지 논의된 뒤 확정될 예정입니다.

김민경 사회정책부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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