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지난 2010년과 2012년 대법원에서 처음으로 ‘불법파견’을 인정받은 현대차 사내하청노동자 최병승씨가 말했습니다. “보통 저희 소송 관련 변호사님들은 거의 자동차 전문가들입니다. 저희 담당했던 기자님들은 반변호사 수준이 되시더라고요.” 그만큼 불법파견 관련 쟁점과 용어들이 많이 어렵다는 뜻이죠.
안녕하세요. 아직도 변호사의 반의 반의 반도 못 따라가 많은 변호사님을 괴롭히는 노동 담당 기자 김민경입니다. 지난 26일 대법원이 현대차 하청노동자들이 제기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현대차 하청노동자들은 현대차의 정규직”이라고 최종 확정했습니다. 재판부는 ‘사내협력업체가 사업주로서의 독자성이 없거나 독립성을 상실하였다고 볼 수 없어 현대차와의 사이에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성립하였다고 할 수 없다’면서도 ‘사내협력업체에 고용된 후 현대차로부터 직접 지휘·감독을 받는 파견관계에 있었고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업무는 파견 대상 업무에서 제외된다’며 불법파견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읽는 저도 괴롭습니다만, 무슨 말인지 어렵다는 독자들을 위해 ‘친절한 기자들’이 존재하는 것이니 조금만 더 읽어주세요.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은 주로 하청업체 노동자가 “내가 원청의 노동자임을 확인해달라”며 법원에 내는 민사소송입니다. 말은 어렵지만 결국은 “누가 내 사장이냐”는 겁니다. 사장 찾기가 뭐 그리 어려워 법원까지 가느냐고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 노동자가 늘어나면서 진짜 사장을 찾는 게 복잡해졌습니다.
비정규직은 크게 직접고용 비정규직과 간접고용 비정규직으로 나눠집니다. 직접고용 비정규직은 기간제 노동자인데요, 내가 출근해 일하는 회사의 사장과 2년 미만의 근로계약을 맺고 일하는 노동자죠. 2년 이상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내가 출근해 일하는 회사와 근로계약을 맺은 회사가 다른 경우입니다. 파견, 도급이 대표적이죠. 파견은 파견업체와 근로계약을 맺고, 파견업체가 파견한 다른 회사로 출퇴근하며 그곳에서 업무 지시를 받습니다. 사장이 자기 직원과 다를 바 없이 마음대로 일을 시키고도 고용이나 임금은 책임지지 않아도 돼 노동자에게 매우 불리합니다. 그래서 법은 파견 허용 업종을 32개로 제한하고 역시 2년 이상 일하면 정규직 고용을 의무화하는 등 여러 가지 규제를 두고 있습니다. 도급은 근로계약을 맺은 회사(하청업체)와 일하는 회사(원청)가 다른 점이 파견과 같습니다. 하청노동자는 독립된 하청업체 소속이기 때문에 원청의 업무지시를 받을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입니다. 용역, 위탁, 하청은 크게 보면 도급의 다른 이름입니다.
이런 간접고용에서는 월급을 제대로 못 받아도, 어느 날 갑자기 해고돼도 따질 곳이 없습니다. 근로계약을 맺은 하청업체 사장에게 따지면 “원청이 계약을 해지했다”거나 “원청이 돈을 제대로 주지 않았다”고 원청 탓을 합니다. 그 말을 듣고 원청 사장에게 따지면 “나는 네 사장이 아니”라며 하청업체에 떠넘깁니다. 혼자 말하니 들어주지 않는구나 싶어 노동조합을 만들어 교섭을 요구해도 같은 대답이 돌아옵니다. 나는 분명히 노동자인데 내 사장들은 서로 책임이 없다고 미룹니다. 그래서 진짜 사장을 찾겠다며 고공농성도 하고 원청 앞에서 노숙농성도 하다 법원의 문을 두드립니다.
더 큰 문제는 많은 간접고용이 불법일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기업이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이유는 정규직과 달리 해고가 쉽고 임금을 적게 줘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음대로 지시할 수 있는 파견노동자를 고용하려면 조건이 까다롭습니다. 그래서 법적 제한이 없는 도급으로 눈을 돌립니다. 하지만 도급을 주면 업무 과정에 개입할 수 없습니다. 졸지 않고 일은 잘하고 있는지, 일의 성과는 만족스러운지 알 수 없죠. 정규직 직원처럼 일을 시키고 싶지만 정규직으로 고용하긴 싫습니다. 그래서 ‘위장도급’이 생깁니다. 도급계약을 맺고 실제로는 파견처럼 회사가 마음껏 지시하는 거죠.
법원은 하청업체가 있으나 마나 한 회사라고 보면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아도 하청노동자가 원청의 정규직이라고 봅니다. 이게 묵시적 근로계약관계죠. 하청업체의 실체가 있는 경우는 원청의 지휘·명령 여부를 따집니다. 원청의 개입이 있으면 파견이죠. 파견법에 맞게 파견했으면 합법파견, 파견법을 어기고 파견했으면 불법파견이 됩니다.
법원이 현대차 하청노동자들의 사장을 찾는 데 10년이 걸렸습니다. 모두가 이런 긴 시간 동안 고통을 겪어야 하는 걸까요? 상시·지속업무의 직접고용 원칙과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내용이 담긴 법안은 3년째 국회에 잠들어 있습니다.
김민경 사회정책부 기자 salmat@hani.co.kr
김민경 사회정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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