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축 동화’를 아시나요? ‘사축(社畜)’은 ‘회사(會社)’와 ‘가축(家畜)’의 끝 글자를 합쳐서 만든 조어입니다. ‘회사에 길들여진 가축’이라는 의미로, 회사가 하라는 대로 어떤 일에도 불평하지 않고 일하는 직장인에 대한 자조적인 풍자가 담긴 말입니다. 일본의 소설가 아즈치 사토시가 최초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축동화는 고전 동화에 ‘사축’들이 회사에서 겪고 있는 현실을 잔혹하게 보여주는 패러디입니다. 일본의 트위터를 중심으로 지난해 가을부터 ‘#사축동화(#社畜童話)’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속속 패러디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의 익명 커뮤니티 사이트 ‘니찬네루(2ch)’에도 묶음 글이 올라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먼저 어떤 이야기들이 있는지 소개하겠습니다. 이 사축동화들은 일본의 뉴미디어 사이트인 ‘아이티미디어(ITmedia)’에 올라온 글(▶관련 링크 :
http://nlab.itmedia.co.jp/nl/articles/1503/24/news149.html)과 일본의 트위터 관련 부가서비스 사이트 ‘togetter’에 올라온 게시물(▶관련 링크 :
http://togetter.com/li/799126)에서 발췌해 번역했습니다.
‘성냥팔이 소녀’
소녀는 성냥을 팔았습니다. 월급은 세후 130만원.
월 200시간을 넘는 임금없는 추가근무.
영하를 넘나드는 가혹한 노동환경.
소녀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성냥을 피우자,
회사는 상품을 무단 사용한 소녀를 고소했습니다.
‘개미와 베짱이’
여름 동안 개미들은 겨울 식량을 채우기 위해 일을 계속했습니다.
한편, 베짱이는 바이올린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부르고, 가끔 온라인 거래를 했습니다.
곧 겨울이 왔습니다.
베짱이는 아베노믹스에 따른 시장에서 큰 부자가 되었고, 개미는 여름 동안 가혹한 노동의 결과로 과로사하고 말았습니다.
‘인어공주’
인어공주 “마녀님, 저 정직원이 되고 싶어요.”
마녀 “그러면 우리 회사로 이직해와. 대신 너의 목소리를 받아가마.”
인어공주는 정사원이 되었지만, 월급이 내려갔습니다. 야근수당은 나오지 않았고, 휴일도 사라졌습니다.
목소리를 잃어 노조에 호소할 수도 없고, 노동청에 신고하지도 못하게 된 인어공주는 사회의 거품이 되어 사라졌습니다.
‘금도끼 은도끼’
산신령 “네가 떨어뜨린 건 연봉 1억원의 힘든 일인가 아니면 연봉 3000만원의 편한 일인가.”
사원 “연봉 3000만원의 편한 일입니다.”
산신령 “정직한 자로군. 네게 두 가지 일을 모두 다 주도록 하겠다.”
사원 “두 가지 일을 다요?”
산신령 “두 가지 일을 이렇게 합치면, 연봉 3000만원의 힘든 일이 된단다.”
‘백설공주’
왕자는 죽은 백설공주가 누워있는 관을 찾아가 백설공주의 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납품, 내일까지다.”
백설공주는 갑자기 눈을 떴습니다. 왕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그리고 죽어있던 동안은 월급 안 나온다.”
그 말을 들은 백설공주는 정말로 죽어버렸습니다.
‘빨간모자’
빨간모자 ”할머니 귀는 왜 그렇게 큰 거야?“
할머니 ”그건 매일 고객들의 클레임을 듣기 위해서란다.“
빨간모자 ”할머니의 눈은 왜 그렇게 커다래?“
할머니 ”매일매일 13시간씩 컴퓨터를 보기 위해서란다.“
빨간모자 ”왜 일을 그만두지 않는 거야?“
할머니 ”그건 말이야. 65살이 넘지 않으면 연금이 안 나오기 때문이란다.“
‘신데렐라’
비정규직 신데렐라는 시급 5000원을 받으면서 매일 12시간 동안 정직원 아가씨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왕따가 심해졌고, 신데렐라는 결국 호박 마차가 보이는 중증의 정신 질환자가 되었습니다.
‘양치기 소년’
드디어 어느 날, 진짜 블랙기업이 나타났습니다.
소년 노동자는 ”블랙 기업이 나타났다고!“라고 소리쳤지만, 마을 사람들은 ”불평만 한다“, ”응석만 부린다“, ”노력이 부족하다“, ”자기 책임“이라며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블랙기업은 노동자를 모두 잡아먹고 일본을 멸망시켜버렸습니다.
마지막 ‘양치기 소년’에 등장하는 ‘블랙기업’은 역시 일본에서 만들어진 표현으로 청년 노동자들에게 비합리적인 노동을 강요하는 기업을 일컫습니다. 곤노 하루키가 자신의 책 <블랙기업>을 보면, “법에 어긋나는 비합리적인 노동을 젊은 직원한테 의도적·자의적으로 강요하는 기업, 곧 노동 착취가 일상적·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기업”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축동화, 어떤가요. 조금은 섬뜩하지 않은지요. 그런데 이 사축동화가 한국의 청년층에게도 빠르게 공감을 얻었습니다. 지난달 26일 ‘이수정’이라는 분이 페이스북에 올린 사축동화 게시물은 460개의 ‘좋아요’와 337개의 ‘공유’로 널리 퍼졌습니다. 한국의 고전 ‘춘향전’에 사축동화를 패러디한 댓글도 게재됐습니다. 사축동화를 만화로 재구성해 SNS를 통해 공유하는 이들도 생겨났습니다.
최근 한국에서 일본의 사토리족(悟り族) 담론이 회자됐습니다. 사토리족은 ‘도를 깨달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출세나 돈벌이에는 관심이 없고, 필요 이상의 돈을 벌려고도 하지 않으며, 소비를 극단적으로 줄이면서 안분지족하는 일본의 젊은 세대 중 일부를 일컫습니다. <조선일보>가 사토리족을 ‘달관세대’라고 번역해 보도하면서 “현실을 기묘한 방식으로 왜곡하고 있다”는 반론도 나왔지요. (▶참고 글 : ‘당신, 이래도 달관할 수 있는가?’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80373.html)
한국의 청년 실업률은 지난해 9%였습니다. 통계 기준을 변경한 1999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그나마 취업해 성공한 청년 취업자 5명 가운데 1명은 1년 이하 계약직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편법 계약직 사원들을 합치면 수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렵지만, 일자리를 구해도 상당수가 비정규직이라는 말입니다. (▶관련 기사 : 작년 청년 실업률 9%…외환위기 뒤 ‘최악’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673577.html)
일자리를 구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관행으로 치부되는 무임금 야근 노동, 정규직을 미끼로 한 노예 노동, 경력을 쌓는 것으로 만족하라며 강요되는 저임금 열정 노동, 뻑하면 발생하는 임금 체불, 층층이 상층부를 차지하고 있는 갑들의 횡포, 근로기준법따위는 외면하는 장시간 노동, 사원을 한 명의 노동자로 대하지 않고 하나의 부속품으로 대하는 인격 모독 등의 독소들이 곳곳에서 청년 노동자들을 옥죄고 있습니다. 이런 독소에 저항하는 연대를 구성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면, 노조를 만들거나 가입했다는 사실을 빌미로 해고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잔혹한 현실 때문에 일본에서 나온 ‘사토리족’ 이야기와 ‘사축동화’ 패러디가 한국에도 빠른 속도로 퍼질 수 있었을 겁니다. 관련 담론을 연구해온 박권일 칼럼니스트에게 이런 현상에 대한 설명을 요청해봤습니다.
“실제 현실 사회가 저렇게 잔혹하기 때문에 공감하는 것이겠지요. 한국은 일본처럼 국가복지보다 기업복지에 기대어온 고도성장사회입니다. 연공서열제와 서구인 기준에서 보면 이해가 안 가는 회사에 대한 기이할 정도의 충성도 사실은 나름 유물론적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이른바 신자유주의 개혁 이후 일본도 많이 변했고, 한국은 더 극단적으로 빨리 유동화했지요. 단단했던 지면이 와르르 내려앉으면서 사람들이 ‘사축’이나 ‘회사의 노예’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꺼내게 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뼈빠지게 일해봐야 40대에 잘리거나 그만두게 된, 이른바 고도성장기의 완전고용 신화가 이제는 추억담으로도 잘 나오지 않을 정도의 시대가 됐지요.”
하지만 박 칼럼니스트는 ‘사토리족’ 담론과 ‘사축동화’ 패러디는 맥락이 다른 측면도 있다고 지적합니다. “사토리족은 욕망 자체가 거세된 이들이지만, 사축동화를 패러디하며 자조하는 이들은 아직 욕망이 남아 있는 이들이지요. 물론 사토리족이나 사축동화를 패러디하는 이들이나 동일한 문제에서 나오는 다른 반응이긴 합니다.”
박 칼럼니스트가 말하는 ’욕망’은 무엇일까요. 이 욕망은 잔혹한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지의 다른 이름 아닐까요. 물론 이 변화 의지가 사회로 표출되지 못하고 자기계발이나 힐링·인문학 멘토링 등 잔혹한 사회를 견디지 못하는 ‘약한 자아’를 보완하는 방법으로 나아가기도 합니다. 어떤 이들은 그런 ‘자아성형’마저 포기하거나 체념하고 사토리족이 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사축동화 패러디는 상대적으로 사회의 부조리함에 대한 분노를 조금 더 담고 있습니다. 잔혹한 사회가 가하고 있는 모순에 대한 명징한 문제의식, 이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조금이라도 다른 사회로 바꿔보고자 하는 의지. 비록 패러디와 같은 ‘잉여’ 생산물로 구현되고 있지만, 어쨌든 그 의지를 현실 속 텍스트로 재현한 결과물이 바로 사축동화 패러디일 것입니다. 우리가 ‘사토리족’ 담론보다 ‘사축동화’ 패러디에서 조금이나마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저항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런 지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