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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취업규칙 변경 위한 ‘합리성 요건’ 인정한 판례 드물어

등록 2015-09-17 20:02수정 2015-09-18 10:27

노사정 합의 후폭풍
임금피크제 등 도입 때
‘사회통념상 합리성 요건’
인정한 판례 극히 드물어
“일반적 지침 못된다”

일본 외엔 채택한 나라 없어
“노사관계 질서 무너뜨릴 우려”
노사정 합의 내용 가운데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요건을 완화하는 정부의 지침이 일터의 노사관계 질서를 무너뜨릴 것이란 우려가 거세다. 정부는 기업이 호봉제 대신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로 개편하고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때 이른바 ‘사회통념상 합리성 요건’이란 법리를 적용할 방침이다. 하지만 일부 사례에 불과한 법리를 노동현장에 널리 적용되는 지침으로 일반화하려는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가 내세우는 ‘사회통념상 합리성 요건’이란 법원의 판례에 등장한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취업규칙을 노동자한테 불리하게 바꿀 때는 과반 노조나 노동자 과반의 동의를 반드시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회사가 취업규칙을 바꾼 전반적인 과정을 두루 톺아봤을 때 회사의 행위에 나름의 합리성이 있으면 노동자의 동의를 얻지 않았더라도 바뀐 취업규칙의 법률적 효력을 인정할 수 있다는 법리다.

이를테면, 대법원은 2001년 두 개의 회사가 합병할 때 취업규칙을 하나로 합치는 과정에서 노동자한테 일부 불이익한 내용이 포함돼 있는데도 회사가 동의없이 바꾼 취업규칙은 무효라며 노조가 제기한 소송에서 “정년 연장, 임금 인상 등이 함께 이뤄진 사정 등을 비춰볼 때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이를 판단할 때 대체로 6가지 요소를 고려했다. △취업규칙의 변경에 의해 노동자가 입게 되는 불이익의 정도 △사용자 쪽의 변경 필요성의 정도 △변경 뒤 취업규칙 내용의 상당성 △다른 노동조건의 개선 상황 △노동자와 교섭 경위 △국내의 일반적인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이런 법리를 채택한 나라는 일본뿐으로 알려졌다. 한국처럼 취업규칙 제도를 운영하는 일본은 2007년 ‘노동계약법’을 만들 때 사회통념상 합리성 요건을 법에 명문화했다.

문제는 국내 법원도 이 법리를 극히 제한적으로만 인정한다는 점이다. 지침 변경을 준비하는 고용노동부가 관련 판례를 모두 찾아보니, 사회통념상 합리성 요건 관련 대법원 판례는 50여개에 이르지만 이 법리를 들어 노동자의 동의도 없이 취업규칙을 바꾼 회사의 손을 들어준 사례는 예닐곱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노동시장 구조개편 과정에서 임금피크제와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를 밀어붙이는 고용부가 일반화했다고 보기 어려운 극히 일부의 사례에서만 인정된 법리를 근거로 ‘사회통념상 합리성 요건’을 전국 일선 노동청의 ‘근로감독관 업무지침’에 넣겠다는 것이다.

노동계가 “지침이 현실화하면 전체의 90%에 이르는 노동조합이 없는 노동자한테 사실상 유일하게 적용되는 일터의 규범인 취업규칙을 사용자가 멋대로 바꾸려 달려들 것”이라고 우려하는 배경이다. 이에 대해 권창준 고용부 근로기준정책과장은 “기본적으로는 불이익 변경 때 사용자는 반드시 노동자 동의를 받아야 하는 것이고, 사회통념상 합리성 요건은 판례에 따라 적용될 것”이라며 “기존 현장 질서를 허문다는 노동계 비판은 온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일반적이지도 않은 사회통념상 합리성 요건을 굳이 지침에 담아 유포하게 되면, 임금체계 개편은 물론 회사 쪽이 일반해고 조항을 취업규칙에 신설할 때 등 광범위하게 오용될 소지가 크다”며 “벌써부터 현장에선 ‘노사정 합의가 됐다’는 명목으로 회사가 취업규칙을 흔들 조짐이 보인다”고 짚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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