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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반드시 한 놈은 뚫고 나온다

등록 2015-12-09 15:10

이영숙씨가 지난 11월26일 서울 강남 ㅅ제약 본사 앞에서 ‘파견노동자’라고 쓰인 팻말을 들었다. 영숙씨는 ‘불법파견’으로 자신을 고용했다가 해고한 ㅅ제약을 상대로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다. 류우종 한겨레21 기자 wjryu@hani.co.kr
이영숙씨가 지난 11월26일 서울 강남 ㅅ제약 본사 앞에서 ‘파견노동자’라고 쓰인 팻말을 들었다. 영숙씨는 ‘불법파견’으로 자신을 고용했다가 해고한 ㅅ제약을 상대로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다. 류우종 한겨레21 기자 wjryu@hani.co.kr
이영숙(29)씨는 지난 8월 <한겨레21> 기획연재 ‘잿빛 청춘’ 시리즈 ‘그해 여름, 청년의 나날은 푸르지 않았다’(▶그해 여름, 청년의 나날은 푸르지 않았다)는 기사에 ‘이아라’라는 가명으로 등장했다. 경기도 안산시 반월공단의 한 제약회사 공장에서 월 130만원을 받는 파견직으로 일하는 영숙씨는 당시 기사에서 정규직만을 위한 통근 버스와 파견업체 통근버스가 따로 있다는 사연을 전했다. 불법파견인데, 회사는 노동부 근로감독관이 단속을 오던 날 영숙씨에게 사흘 휴가를 줬다.

그런 영숙씨가 보도가 나간 직후 해고됐다. 고민 끝에 영숙씨는 지난한 싸움을 시작했다.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 출석해 이런 사실을 폭로하기도 했다. 싸움 끝에 회사는 영숙씨를 제외한 불법 파견노동자 50여명을 직접 고용했다. 하지만 영숙씨에겐 “경상남도 진주에 있는 영업소에 가라”고 제안했다. 영숙씨는 현재 이 회사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그해 겨울 청년의 나날은 시리다) 언론사 입사가 꿈이던 영숙씨는 자신의 사연을 글로 썼다. 이 글이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주최한 ‘2015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에 당선됐고, 10일 오후 상을 받는다. 아래는 영숙씨가 쓴 글 ‘반드시 한 놈은 뚫고 나온다’ 전문이다.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8월 25일 새벽 5시 45분. 안 감은 머리를 스윽스윽 어루만지며 부랴부랴 집을 나선다. 어느덧 가을이 온 듯 새벽공기는 제법 차다. 집 앞 한적한 길을 건너면 어김없이 빨간 관광버스 하나가 마주 달려온다. 우리 회사 버스지만 유유히 못 본 척 지나친다. 바로 집 앞에 서는 그 버스는 오로지 정규직을 위한 버스기 때문이다. 그렇게 10분 남짓 걸어 나를 위한 통근버스를 타러 간다. 매일 아침, 마주 오는 빨간 버스를 지나치는 기분은 꽤나 초라하다. 특히 오늘은 더욱 그렇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저 내일부터 통근 안타요. 앞으로 여기는 안 서셔도 돼요. 그동안 감사했어요.”

통근버스에 오르자마자 기사님께 인사를 전했다. 무슨 일이냐며 놀라시는 아저씨의 말투에 놀람과 섭섭함이 베어 나온다. 오늘로서 여기에서 일한 지 6개월하고도 3일이 되는 날이다. 그리고 오늘 나는 해고 됐다.

[한겨레TV 영상] 반월공단 불법파견 해고자, 영숙씨의 편지

전화 한 통으로 해고통보…이대로는 억울했다

ㅅ 제약회사에 다니던 나는 며칠 전 파견업체 담당자인 송부장에게 해고를 통보받았다. 해고사유는 ‘ㅅ 제약의 경영상 어려움’. 해고통보는 전화 한 통이면 충분했다. ‘더 열심히 하겠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 ‘왜 하필 나냐’고 이야기 한 번 해볼 기회조차 없다. 누구에게 이야기하는 게 맞는 건지도 전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난 이제껏 어디에 속해 일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대로는 억울했다. 구걸이라도, 하소연이라도 해보고 싶었다. 맞다! 우리 회사는 한국노총 사업장이 아니던가. 해고통보를 받은 다음날 퇴근하고 한국노총에 전화를 걸었다. 혹시 도와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신분이 노출되는 것은 괜찮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무래도 회사를 다시 다녀야 하는데 괜히 불편할 것 같아 싫다고 했다. 그럼 한 번 알아보고 다시 알려주겠다고 했다. 한 가닥 희망이 생겼다.

그리고 다음날 오후 1시에 점심을 먹고 나른해지는 몸을 바로 세우며 일에 열중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갑자기 주임이 다가와 1층 총무과를 가보라고 전했다. 해고와 관련해서 서류작성이 있는 건가 추측하며 총무과로 급히 내려갔다. 똑똑. 총무과를 두드리니 한 여직원이 나왔다. 그런데 나를 이사실로 안내하는 것이 아닌가. 어라.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침을 꼴깍 삼키고 이사실로 들어섰다. 안에는 3명의 아저씨가 앉아있었다. 2명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고, 1명은 6개월 전 내가 여기 입사할 때 봤던 송부장이었다. 오늘로 두 번째 보는 얼굴이다. 송부장은 한껏 긴장한 듯한 표정이 역력했다. 이사가 나에게 앉으라며 손을 뻗고 나는 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자리에 놓인 시원한 음료를 한 모금 크게 마셨다.

“상황이 이렇게 돼서 참 미안합니다. 우리가 IMF 때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참. 경기가 좋아지고 회사 사정이 나아지면 바로 부를 거에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여기 송부장이 여기보다 좋은 조건에 일 알아봐 주세요. 다음에 우리가 부르면 바로 일하실 수 있게 잘 모시고 계셔 주세요. 우리의 만남도 소중하듯이 헤어짐도 소중하지요.”

주저리주저리 이사의 말이 이어진다. 무슨 이야기인지 한참을 듣고 있었다. 나는 아무 대꾸없이 고개만 연신 끄덕였다.

그러다 짧은 침묵이 흐르고 이사가 나에게 한마디 물었다.

“혹시 어디서 상담받으셨어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반사적으로 “아니요.” 대답하고 어색한 침묵이 다시 흘렀다. 그렇게 그 자리에서 일어나 나는 다시 일하던 곳으로 갔다.

분하고 화가 났다. 일이 당최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얼른 일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어떻게 시간이 흐른 건지도 모르겠다. 퇴근하자마자 한국노총에 전화를 걸었다. 혹시 내 이야기를 회사에 한 것 아니냐고 쏘아붙였다. 그러자 자신들이 알아보는 과정에서 유출이 된 것 같다며 미안하단다. 덧붙여 한국노총은 조합원을 위한 곳이라 파견직에게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전했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이게 뭔가.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정신은 더 또렷했다. 안산역 앞에서 파견직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했던 기억이 났다. 언제든 연락하라던 한 노무사의 얼굴이 불현듯 떠오른 것이다. 그때 받았던 볼펜이 어디 있을 것이다. 가방을 뒤져 밑바닥에 깔린 삼색볼펜을 꺼내들었다. 볼펜에 적힌 전화번호를 꾹꾹 눌러 전화를 건다. 수화기 너머 조금은 어눌하지만 침착한 목소리가 들린다. 자초지종 억울한 사연을 말하자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나선다. 그래도 털어놓고 나니 기분은 한층 홀가분했다.

5년·10년 파견직으로 일한 언니들…나라도 꿈틀거려보자

다음날 노무사를 직접 만났다. ㅅ 제약회사가 불법파견을 쓰고 있다는 것과 내가 다시 복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다만, 해고 이후 불법파견 진정서를 넣고 직접 회사와 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머리가 복잡했다. ‘진정서를 넣고 다시 복직이 된다고 쳐도 과연 그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 ‘회사에선 어떤 반응일까’, ‘파견업체 송부장이 날 해코지하진 않을까’ 수없이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 중 날 괴롭히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 다음 해고는 우리 언니들 차례’라는 것과 ‘어쩌면 언니들의 해고를 앞당기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의 충돌이다. 나로 인해 해고된다면 언니들이 얼마나 원망할까 두렵다. 그렇지만 엄연히 불법이 아닌가. 미래를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해 볼 수 있는 데까지는 해봐야 후회가 없지 않을까. 어떤 결과이든 지금의 파견직보다는 낫지 않을까. 불편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생각이 이어지다보니 나는 어쩌다 불법파견직으로 오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까지 이어졌다. 나를 얹혀살게 해준 제일 친한 친구가 계기였다. 조건 좋은 제약회사에서 파견직으로 일하다 정규직으로 가게 되면서 나도 희망을 품게 된 것이다. 지금 안산은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노동재난구역’이라 불릴만하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자면 안산에서 제조업 취업은 파견직이 아니면 안 될 정도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안산에서 이름 한번 들어봤다거나 평판 괜찮은 회사들이라면 파견직이 아니고서는 발을 들일 방법이 없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 나 하나 꿈틀거린다고 눈썹 하나 흔들릴 사람이 없다. 힘이 없는 내가 초라하고 화도 난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틀거려보기로 마음먹는다. 1년, 3년, 5년, 무려 10년이 넘게 파견직으로 일한 언니들이 있다. 그 언니들이 해고를 당할 때 당하더라도 그들이 최소한의 예우를 갖출 수 있도록.

8월 26일. 아침은 별다를 것 없이 찾아왔지만 그 어느 때보다 새로운 아침이다. 유난히 햇살도 좋다. 새벽, 언니들의 메시지들이 핸드폰을 많이도 울렸다. 나는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저 난 괜찮다고, 언니들이 걱정이라는 안부만 전했다. 마음을 굳게 다지고 집을 나섰다.

안산노동지청은 인적 드문 곳에 자리하고 있어 꽤 한적하다. 괜히 긴장된다. 서류봉투 하나 내는 것뿐인데. 노무사님과 정문을 지나 유리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서니 창구들이 주욱 늘어서 있다. 창구마다 업무에 열중하는 근로감독관들은 누구 하나 아랑곳 하지 않는다. 맞은편에는 창구 하나가 따로 떨어져 있고 젊은 공익 청년이 한 명 앉아있다. 서류를 제출하자 잠시만 기다리라는 말을 하고 몇 분 후 프린터를 가리킨다. 프린터에서 갓나온 따끈한 접수 서류 한 장을 들고 나왔다. 불법파견 진정은 간단히 끝이 났다.

다음날. 어색한 여유에 몸이 간지럽다. 집에만 있으면 없던 울적함도 찾아오기 마련. 집을 나서 화랑유원지로 향한다. 가는 길이 꽤나 길지만 혼자 생각하며 걷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듬성듬성 노란빛을 품은 풍성한 나무들이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마음을 토닥인다. 화랑유원지 중앙에는 인라인스케이트장이 있다. 그곳에 지하가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 지하에는 도자기를 만드는 공방이 있다. 내 아지트다. 취미 삼아 만들려고 시작했으나 일을 마치면 피곤해서 미뤄두기 일쑤였다. 조물조물 흙을 만지다 보면 시간이 금방 흐른다. 핸드폰에서 흐르는 한 인디가수의 노래 가사가 참 좋다.

‘우훗훗 아름답게 빛나라 청춘아/ 우훗훗 신나게 넘어져 본 그만큼/ 우훗훗 눈물일랑 거둬라 청춘아/ 우훗훗 그대로 그냥 폼이난단다’

파견업체의 간곡한 부탁 그리고 거절한 돈 봉투

해가 꼬물꼬물 기울어갈 때쯤 전화가 울렸다. 송부장이다. 심장이 콩닥인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밀어 전화를 받자마자 녹음버튼을 눌렀다. 노무사님이 꼭 녹음을 해두라고 했기 때문이다. ‘여보세요’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어떻게 된 일이냐며 묻는다. 머쓱하게 웃기만 하니 화난 건 알겠지만 만나서 이야기를 하잔다. 만나서 할 말이 없다고 거절해도 제발 만나만 달라고 통사정이다. 그러면 노무사님과 함께 나가겠다고 딱 잘라 전달하고 전화를 끊었다. 휴우하는 한숨이 나도 모르게 쏟아져 나왔다.

8월 31일. 한 커피숍에 미리 자리하고 있는 송부장을 노무사님과 함께 만나러 갔다. 어색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커피만 홀짝였다. 송부장이 먼저 입을 뗐다.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제가 더 좋은 자리 소개시켜 드릴게요. 어차피 채용해도 다시 다니기 힘드실 거 아니에요. 제가 너무 난처합니다.”

“아뇨. 다시 들어갈 수 있다면 얼마든지 일할 수 있어요. 저는 부장님이랑 할 말이 없어요. ㅅ 제약이랑 이야기 할게요. 할 말 없으시면 일어나겠습니다.”

거듭되는 살려달라는 말과 다시 생각해보라는 말에 말없이 고개만 내저었다. 잠깐의 침묵 뒤 송부장이 노무사에게 자리를 비켜줄 것을 요청했다. 잠시 담배를 태우겠다며 자리를 비켜주자 송부장의 다이어리에서 하얀 봉투가 나온다.

“제발, 이거 받으세요. 제가 준비한 거예요.”

다급하게 두 손을 뻗어 내저으며 이보다 더 강한 거절이 없을 정도로 손사래를 치며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 후 두 차례 송부장의 전화에 단호한 거절을 해야 했고, 며칠 뒤 송부장은 잠수를 탔다. 안산노동지청에 조사를 받으러 참석해보니 ㅅ 제약의 총무과장, 파견업체 사장이라는 사람이 나와 있었다. 껄끄럽지만 누구보다 당당하고 성실하게 조사를 받았다. 이틀에 걸친 긴 시간의 조사에 조금은 지쳤다. 조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친했던 회사 언니의 전화를 받았다. 회사 언니들이 내가 저지른 일들을 이미 다 알았다고 했다. 언니들은 조용히 더 다닐 수 있었는데 시끄러워지고 불안해졌다며 욕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그럼에도 언니는 내 뜻을 이해하고 응원한다는 전화였다. 속상하지만 이해되고, 서운하지만 납득이 갔다.

언니들은 계약직 전환…나는 1인 시위 중

조사 후 ㅅ 제약은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다. 내가 노동부에 진정을 넣고 1달쯤 지났을 무렵이다. 회사 언니들 50여 명은 직접고용 1년 계약직으로 전환됐다. 그러자 언니들의 반응도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이러다 정직원 되는 거 아니냐, 상여금 더 받을 수 있게 되는 거 아니냐 등. 물론 나를 욕하는 사람들도 줄었다는 것.

어느덧 11월이다. 나 역시 직접고용 판결을 받고 ㅅ 제약에서는 이력서를 제출하라고 통보했다. 이력서와 각종 서류들을 제출하고 두 번의 면접을 봤다. 헌데, 각종 이유를 대며 전에 일하던 곳으로는 다시 갈 수 없다며 진주영업소로 갈 것을 제안했다. 거절하자 내가 취업의 의사는 없는 것으로 판단한다며 회사는 노동부에 보고했다. 그 보고를 받은 노동부는 회사가 직접고용의 의무를 다했다고 본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난 해고 이후와 같은 상태다. 다만, 한 가지 얻은 것은 내가 꿈틀거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회사 이사의 작별인사, 파견업체의 간곡한 부탁과 거절했던 돈 봉투, 회사 언니들의 계약직 전환들 모두. 내 꿈틀거림에 대한 대가다. 드라마 ‘송곳’의 대사가 잘 설명해준다. “인간에 대한 존중은 두려움에서부터 나온다.”

그리고 지금 나는 안산노동지청과 ㅅ 제약 본사에서 1인 시위 중이다.

이영숙/파견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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