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서 조선 노동자 증언대회
“돈 안되면 살아남을 수 없어
표준·절차 무시하고 일 강요”
조선업종 노조연대 상경투쟁
“경영진·정부·금융이 조선 망쳐”
“돈 안되면 살아남을 수 없어
표준·절차 무시하고 일 강요”
조선업종 노조연대 상경투쟁
“경영진·정부·금융이 조선 망쳐”
“…2014년 7월4일 금요일
용접사라는 직업으로 12번째 회사로의 첫 출근이다. 8년간 12곳의 직장을 옮겼으니 모르는 사람이 보면 얼마나 나를 한심한 놈이라 할까? 그런데 12번 중 스스로 회사를 옮긴 것은 단 한번밖에 없다. (하청)업체 평균 수명이 2년도 안 된다. 잦은 파산으로 인한 피해는 모두 노동자의 몫이다. 그런데도 원청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다른 업체, 다른 사람으로 다시 채우면 그만이다. …”(조선업 물량팀 노동자 최아무개(43)씨의 일기장 중)
구조조정 위기에 내몰린 조선 노동자들이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암울한 현실을 증언했다. 민주노총, 한국노총, 조선업종 노조연대(조선노연)가 주최한 ‘위기의 조선산업, 벼랑 끝 조선노동자, 당사자가 말한다’에서 이들은 고용불안과 임금체불, 열악한 환경을 털어놨다.
이날 자신의 일기장 일부를 공개한 최씨는 2008년 11월 ‘물량팀’으로 처음 용접 일을 시작했다. 원청과 하청, 하청과 물량팀(재하청 계약직)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구조는 그를 불안한 삶으로 몰아넣었다. 잦은 이직에 임금이 체불되고 4대 사회보험이 없는 불합리한 상황을 그는 체념하면서 살았다. 2012년 8월 통영 성동조선소에서 친하게 지내던 ‘형님’이 무면허 운전기사가 몰던 지게차에 부딪혀 사망했다. 하청업체 사장은 물량팀이라는 이유로 보상금으로 최소한의 금액인 2억원을 제시했다. 유가족이 합의하지 않아 소송까지 갔지만 원청인 성동조선소는 한 푼의 보상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망사고로 원·하청 업체가 손해를 입었다며 최씨가 속한 물량팀을 쫓아냈다. 산업재해와 임금체불 처리 과정을 경험한 뒤 최씨는 조선소의 문제점을 기록하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최씨는 “조선업이 위기라고 말하지만 왜 아무도 잘못된 시스템을 위기의 원인으로 이야기하지 않느냐”며 “하도급 구조는 돈이 안 되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표준, 절차, 법을 무시하고 노동자에게 무리하게 일을 강요한다”고 지적했다.
전남 지역에서 물량팀으로 일하는 윤아무개씨는 “다단계 하도급으로 조선 부품을 생산하면서 품질과 생산력이 떨어지고 숙련 노동자는 안정된 일자리를 찾아 전국을 떠돌고 있다”며 “물량팀은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해 산업재해를 당해도 개인적으로 치료하고 임금 체불이 발생하면 포기한다”고 말했다.
하청업체 노동자 여건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15년간 현대중공업에서 일해온 하청업체 노동자 이아무개(40)씨는 지난 3월 갑자기 일자리를 잃었다. 오전 8시 출근해 자정까지 일하며 월 400만원씩 벌었지만 하루아침에 회사가 문을 닫고 퇴직금 900만원도 주지 않았다. 동료 150명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는 다른 하청업체에 들어갔지만 임금은 반토막이 났다.
한편, 조선노연은 ‘릴레이 상경 투쟁’을 시작했다. 노동자 250여명은 이날 서울 종로구 청운동 새마을금고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진정한 구조조정은 노동자를 자르는 것이 아니라 조선산업을 망친 정부 정책입안자와 부실경영 책임자, 그 뒤에 숨은 대주주에게 책임을 묻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날부터 1박2일간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국회,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집회와 기자회견 등을 이어간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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