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장하나 전 의원이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옆에 마련된 한광호 열사의 분향소에 분향 후 절을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농성장에 도착하자마자 익숙한 얼굴들이 내 옷차림새를 보고 말을 건넸다.
“그러고 다니니까 국회의원인지도 모르지요.” “이제 의원도 아닌데요, 뭐.” “아기는 잘 크죠? 이제 몇 살입니까?” “17개월이요. 경찰은 어디 있어요?”
지난 8일 현대자동차 본사(서울 서초구 헌릉로) 옆에 마련된 한광호 열사(2011년 직장폐쇄 이후 부당징계 등 사쪽의 노조 탄압으로 고통을 겪다 지난 3월17일 목숨을 끊은 유성기업 노동자)의 분향소를 찾았다. 오전부터 숨이 턱 막히는 더위였다.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이하 유성노조)와 인연을 맺은 지 벌써 5년째, 그 더위에 길바닥에서 여름을 나야 할 노동자들을 보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시시한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경찰이 눈에 안 띈다고 버릇처럼 물어보고는 이내 머쓱해졌다. 나는 이제 국회의원이 아니라 연대하러 온 시민인 것을. 나도 아직은 적응중이다. 의원일 때는 농성장이나 분쟁 현장을 방문하는 것이 늘 긴장되는 일이었다. 단순한 지지방문이라고 해도 현장에선 늘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특히 경찰을 비롯한 공권력은 헌법상 보장된 집회·시위의 자유를 일상적으로 침해해왔다.
한광호 열사 분향소는 현대차 본사가 아닌 바로 옆의 하나로마트 양재점 후문에 있었다. 서초경찰서가 노조의 집회신고는 받아주지 않고 현대차 쪽의 집회신고만 받아준 까닭이다. 예전 같으면 당장 서초서 책임자를 부르고, 사전신고가 된 집회 물품을 강제 수거해 간 서초구청 책임자도 부르고, (거부하지 않는다면) 현대차 관계자도 만났겠지만, 한가해진 나의 처지가 아직은 낯설었다.
“현대차가 세긴 세네요.” 괜히 말을 돌렸다. 사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은 강남역 삼성 본사 앞에서 노숙농성을 했었고, 여의도 엘지(LG) 본사 앞에서는 희망연대노조 엘지유플러스 비정규직지부 조합원들이 노숙농성을 했었다. 청와대 앞에서도 1인시위는 하지 않는가. 공권력이 유독 현대차 본사를 성역처럼 지키는 광경은 여간 불쾌한 게 아니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한광호 열사의 영정 앞에 무릎을 꿇었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을 처음 만난 것은 2012년 9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개최한 ‘산업현장 폭력용역 관련 청문회’에서였다. 당시 은수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유성기업의 노조 탄압을 구체적으로 조언한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의 내부 문건을 폭로했다. 현대차의 지시로 유성기업을 비롯해 상신브레이크, 발레오만도, 만도, 보쉬전장, 콘티넨탈 오토모티브, 에스제이엠(SJM) 등 자동차 부품 제조사들이 일제히 노동조합을 탄압한 사실이 드러났다. 창조컨설팅이 유성기업에 전달한 ‘유관기관 대응전략 수립’ 문건을 보면, 창조컨설팅이 접촉한 유관기관 명단에 청와대 류경의 국장, 국정원 정주진 처장, 경찰청 김정환 경정, 노동부 정병진 사무관, 아산시경 김병수, 경총 이동응 전무 등 실명이 열거되어 있었다. 같은 날 한명숙 전 의원은 현대차가 작성하여 유성기업에 전달한 문서를 폭로했는데, 노동조합과의 주간연속 2교대제 협의시간을 지연시키면서 창조컨설팅을 통해 대응(노조파괴)하라는 지시사항이 명시되어 있었다.
이렇듯 19대 국회 초반에 이미 유성기업의 부당노동행위(어용노조 설립에 대한 지배개입 등)와 현대차-창조컨설팅-유성기업의 커넥션이 드러났음에도, 왜 유성 사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것일까. 왜 2012년 이후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삶은 오히려 피폐해지고 있는 것일까. 나는 왜 한광호 열사의 죽음을 막아내지 못했을까(‘노조파괴’ 공작을 주도한 창조컨설팅의 심종두 대표는 2012년 10월 징계를 받아 노무사 자격이 정지됐다가 지난달 22일 ‘글로벌 원’이란 이름의 새로운 노무법인 설립 신고).
국회에 있을 때는 이런 의문에 사로잡혀 있을 시간조차 없었다. 매일같이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고 또 다른 현장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대면해야만 했으니. 지난 4년간 나는 답을 구하기는커녕 점점 깊은 자괴감에 빠져들 뿐이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국회의원으로 산다는 것은 나에게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착한 정치인이긴 했지만 또한 무능한 정치인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었다.
노동부도 경찰도 야당 국회의원의 지적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물론 검찰은 말할 것도 없다. 노동자와 서민은 법의 보호를 받지도 못하고, 국가로부터 외면받는 상황에서 힘없는 야당 국회의원이라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다. 정치적인 쇼맨십도 부족하고, 말이나 글도 세련되지 못하고, 당내 비주류이기에 정치력도 시시한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러나 그 모든 걸 갖춘 정치인들은 내가 다루는 노동 사안에 관심이 없었다.
한국이 미국과 일본과 다른 것
농성장에서 홍종인 전 지회장을 만났다. 유성 사태가 시작된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유성노조의 투쟁을 이끌어온 분이었다. 홍 전 지회장은 2012년 10월부터 유성기업 아산공장 앞 굴다리에 매달려 151일의 고공농성을 했고, 이듬해 10월에는 영동공장 인근 광고탑에 올라가 295일간 고공농성을 했다. 그리고 지난 3월17일 한광호 열사의 죽음 이후 서울에 올라와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는 허탈한 이야기를 나눴다.
“전에는 국가로부터 보호받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봤는데, 이런 문제가 터지니까 나는 왜 보호받지 못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대한민국은 국민이 아니라 무엇을 보호하고 있는 걸까요?” “돈을 보호하지. 돈 있는 사람.”
유성 사태는 행정·사법기관이 노골적으로 현대차와 유성기업 사쪽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았다면 벌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현대차 본사 앞에서 집회조차 할 수 없는 것처럼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기본권을 박탈당하고 국가로부터 버림받았다.
2012년 9월의 청문회와 10월의 국정감사를 통해 유성 사태도 해결 국면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했지만, 복병은 검찰이었다. 같은 해 11월 노동부와 검찰은 유성기업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국회에서 밝혀진 자료만 해도 유성기업과 현대차를 기소할 만한 혐의는 충분했지만, 압수수색 후 검찰은 오히려 불기소 처분을 내리고 유성기업에 면죄부를 줬다. 사쪽이 용역경비업체에 폭력을 사주한 혐의에 대해서도 경찰이 기소의견으로 송치했지만 검찰은 불기소 처분했다. 압수수색 당시 공장 안에서 용역업체가 사용했던 불법 무기들이 무더기로 나왔는데도 검찰은 ‘혐의 없음’과 ‘증거 불충분’으로 결론 내렸다. 이후 유성기업의 노조탄압은 극에 달했다. 사쪽이 2노조 설립에 직접 개입한 증거를 바탕으로 유성노조는 어용노조 설립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하고 승소했으나, 노동부는 어용노조 집행부가 제출한 3노조 설립신고증을 교부함으로써 유성 사태의 적극적인 공모자임을 자인했다.
유성 노동자들과 맺은 인연 5년 한광호 영정 앞에서 무릎 꿇었다현대차-창조컨설팅-유성 커넥션드러났는데 왜 해결되지 않을까 무능한 정치인 자괴감으로 고통
행정·사법기관이 사쪽 일방 대변4년간 국감·상임위서 수없이 질의 검찰은 면죄부 주고 노동부는 방치 왜 국민은 기업 횡포 무관심하고
지난 4년간의 국회 회의록을 뒤져봤다. 나는 매년 국정감사에서 유성기업에 대해 질의했다. 4차례의 국감에서 총 12차례의 질의를 했고, 청문회를 포함한 상임위에서는 모두 16차례 질의했다. 따라서 제2노조(어용노조) 조합원들이 ‘시비조’ ‘채증조’ ‘몸빵조’로 역할을 나누어 제1노조 조합원들을 자극하고→ 폭력적인 상황을 유발해→ 이를 채증해서 고소·고발한 뒤→ 사쪽이 1노조 조합원을 징계 또는 해고하는 노조 탄압 수법에 대해 노동부는 잘 알고 있었다. 유성기업 공장 곳곳에, 심지어 화장실까지 불법 몰래카메라가 달려 있다는 사실도 알려주었고, 1노조 조합원들의 정신건강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도 반복적으로 전달했다. 4년 내내 노동부에 끊임없이 근로감독을 요구했지만 노동부는 유성기업에서 벌어지는 가학적인 노무관리를 방치했다.
유성노조 조합원들은 ‘출근할 때마다 마치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같다고, 이제 차라리 죽고 싶다’고 말해왔다. 전체 조합원 중 주요 우울장애 고위험군이 43.3%(한국 성인 평균 6.7%)다. 외상 후 스트레스 고위험군이 53.6%, 사회심리 스트레스 고위험군은 64.5%다. 이미 조합원들의 정신건강은 극도로 황폐해져 있다.
사람들은 한광호 열사의 죽음이 이미 예견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유성 사태를 끝내지 못한 19대 국회 환노위 소속 의원이었기에 아마 평생 한광호 열사의 죽음에 책임을 느끼며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한광호 열사를 죽음으로 내몬 검찰과 노동부, 경찰 등 공권력이 반드시 죄책감을 느끼도록 만들고 싶다.
노동자가 헌법상의 권리인 노동 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행사할 때 사용자가 방해하는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라고 한다. 현대차의 지시로 유성기업이 노조를 탄압하고 어용노조 설립에 직접 개입한 것은 명백한 부당노동행위다. 미국은 노동조합 활동 방해에 업무방해를 적용해서 민사소송을 통해 막대한 손해배상액을 부과한다. 일본의 경우는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르면 우리의 고용노동부에 해당하는 후생노동청 관보에 해당 기업의 이름을 고시하는데, 부당노동행위의 죄질을 아주 무겁게 보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그 자체로 회사를 폐업하고 재개업해야 할 정도의 영향력이 있다고 한다.
반면 한국의 경우는 부당노동행위를 노동자나 노조가 직접 입증해야 한다. 관련 사건을 검찰 공안부가 담당하기 때문에 노동 감수성과 전문성을 기대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유성기업의 경우처럼 노동부, 노동위원회, 검찰 등 법 집행기관은 처벌할 의지가 없고 부당노동행위가 인정된 경우에도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불과해 기업에 부담을 주지도 못한다. 형량을 대폭 늘리고 법인 대표나 책임자에게 실형을 선고하는 등 처벌을 강화하거나, 노동검찰 또는 노동법원을 두는 방안, 노동위원회에 노쪽과 사쪽 대리인을 참가시켜서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장하나 전 의원이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앞 유성기업 천막농성장을 찾아가 한광호 열사의 분향소 앞에서 홍종인 전 지회장(오른쪽)과 현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유성 사태의 근본 원인은 무관심
그러나 지난 4년간 환노위에서 일하면서 부딪힌 가장 높은 장벽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거대 자본도 아니고, 자본을 비호하는 공권력도 아니었다. 왜 사람들은 노동자들의 투쟁에 무관심한가, 왜 노동자를 탄압한 기업과 공권력에 분노하지 않는가, 이런 의문들이 나를 괴롭혔다. 왜 우리는 기업 또는 자본의 탐욕과 횡포, 횡령이나 탈세 같은 경제 범죄에는 관대하지만, 기업이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일한 만큼의 대가를 주지 않거나, 함부로 해고하는 일들엔 무관심한지 알고 싶었다. 나는 그것이 유성 사태의 근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작년 9월 미국 노동절 기념 연설 중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좋은 직업을 원하는가, 누군가 내 뒤를 든든하게 봐주기를 바라는가, 나라면 노조에 가입하겠다”고 말한 것이 국내에서도 화제가 됐다. 반면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가 “노동조합이 쇠파이프를 휘두르지 않았다면 국민소득이 3만불이 됐을 것”이라고 한 것이나, 최근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에게 도심에서 집회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징역 5년의 중형을 선고한 것을 보면 대한민국 집권세력이 노동조합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는 분명하다. 문제는 대중들이 여기에 동조한다는 사실이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쟁의행위를 통해 노동조건을 향상시키는 것이 헌법에 명시된 권리라는 사실을 대다수 국민들은 인식하지 못하거나 외면하고 있다.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노점상단체, 상인단체와 같은 이익집단, 당사자 조직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단체행동을 하는 것에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전경련이나 경총과 같은 사용자 단체들보다 더 탐욕적이라고 느끼는 것 같다. 기업을 살리는 것이 나라를 살리는 것이고,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노동자는 희생하고 양보해야 된다는 생각이 여전히 통용된다. ‘기업 하기 좋은 여건’은 노동자를 인간이 아닌 생산수단으로 취급하는 상태다. 한국 사회가 직면한 비정규직 문제, 청년 일자리 문제는 기업 하기 좋은 나라로만 만들다가 발생한 일들이다. 이제는 일하기 좋은 나라, 노동자가 행복한 나라를 만들자고 주장해야 하지 않을까.
“정권이 바뀐다고 해결될지 모르겠습니다.” 홍종인 전 지회장과 긴 대화를 나누고 자리를 막 나서려는데 그가 던진 한마디가 내내 가슴에 남았다. 맞다. 단지 야당 의원이 힘이 없어서 유성 사태가 제자리걸음은 아닌 것이다. 정권이 바뀐다고 노동조합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쉽게 변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갑자기 유성노조의 투쟁을 지지해 주지도 않을 것이다.
결국은 민주주의의 문제다. 노동권도 집회·결사의 자유도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민주주의 국가는 가진 자의 재산권이 아니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권을 우선 보장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시작은 국민 각자가 자신의 권리를 인식하는 것이고, 민주주의의 실현은 국민 각자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이제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은 20대 국회에 맡기고, 나는 국회의원이 할 수 없는 일을 꿈꿔야겠다. 거리에서 사람들과 함께 헌법을 다시 읽는 일. 영정 속의 한광호 열사도 엷은 미소로 답해주는 것 같다.
장하나 전 국회의원 ▶ 눈물 깃든 현장이 도처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성과 합리가 아닌 힘의 논리가 작동하는 갈등 공간이 전국에서 부스럼처럼 솟아 가라앉지 않습니다. 해법을 찾지 못한 갈등이 오래 묵어 삶을 곪게 하는 사태는 정치가 제 기능을 못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제19대 국회의원 장하나·김광진씨가 갈등의 현장을 찾아갑니다. 청년 비례대표로 정치를 경험한 두 전직 의원이 현장 속에서 정치를 성찰하며 현직 국회의 역할을 고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