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주최로 교육공무직(학교비정규직) 노동자 증언대회가 열리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국회에서 4년을 보내면서 얻은 지혜가 하나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건 앞에서 크게 외치는 사람의 입이 아니라 조용히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의 귀에 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건 참 중요한 일입니다.
국회 의원회관의 회의실은 하루에도 일주일에 수십 건의 토론회와 간담회가 열리고, 대한민국 곳곳의 아픔들과 문제를 가진 분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찾아옵니다. 그런데 또 하나 깨달은 지혜가 있습니다. 지혜라기보다는 슬픈 현실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일 것 같지만, 정말 들어야 할 사람들은 오지 않고, 그 자리에 시간 내서 오지 않아도 이미 그 내용에 충분히 공감할 사람들만 모인다는 것입니다.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끼리 마음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나름의 의미는 있겠지만, 귀는 없고 입만 있는 현실에 안타까움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 대신 ‘아주머니’ ‘저기요’
지난 17일 국회 세미나실에서 ‘교육공무직노동자’ 현실에 대한 증언대회가 열린다기에 찾아갔었습니다. 평일 낮 시간이라 월차를 내고 전국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모였습니다. 여전히 들어야 할 사람보다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이 참석한 행사였습니다. 사회자께서 저를 소개하시며 ‘한겨레신문 칼럼니스트’라고 하셔서 조금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이 지면을 통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삶을 알려달라는 호소였다고 생각합니다.
‘교육공무직노동자’라는 단어만 들으면 어떤 직군을 말하는지 잘 모르시는 분들도 많으실 겁니다. 쉽게 표현하면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입니다. 회계 담당 직원 14만1965명, 비정규직 강사 15만3015명, 파견·용역근로자 2만7266명, 기간제 교사 4만3033명을 합쳐 약 40만명에 이릅니다. 영양사, 조리사, 영어강사 등 50여개 분야에서 학교 운영에 필수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분들입니다. ‘선생님’이라 불리는 분들도 있지만 ‘여사님’ ‘아주머니’ ‘저기요’라고 호칭되며 분명 학교의 일원인데도 졸업 앨범에는 등장하지 않는 ‘학교의 유령’처럼 대우받고 있는 분들이지요.
이날 행사를 주최한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안명자 본부장의 인사말 중에 2시간 동안 이어진 ‘학교비정규직 증언: 차별과 고용불안 12고개’의 핵심이 모두 들어 있었습니다.
“학교 현장에 이미 차별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차별의 벽을 넘어서기 위해서 이 자리에 함께 있습니다. 학교는 아이들이 자라나는 곳입니다. 교육은 말이나 글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학교 안에서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정상적인 사회를 보여주는 것으로부터 교육은 시작되어야 합니다.”
복도에서도, 운동장에서도, 급식실에서도 교육은 이루어집니다. 학교 안의 권력관계 역시 학생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학교라는 공간에서조차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노동자들을 대수롭지 않게 해고하고 차별하는 것을 보면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게 될까요? 언제나 그렇듯 대한민국의 약자들은 거창한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바꿀 혁명을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것, 상식의 수준에서 땀 흘려 일하며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뿐입니다.
정부는 공공부문의 비정규직을 2015년까지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대통령의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2013년 ‘학교회계직원 처우개선 및 고용안정 대책’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약속했던 2015년도 지났고 3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2년 이상 근무자의 무기계약 전환 비율은 61%에 불과합니다. 여전히 계약만료 뒤 기간제로 교체 채용하는 경우가 많고, 무기계약 전환 대상자에서 제외된 학교 회계직원만 1만8천여명에 달합니다. 지난해 말 국회는 학교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위해 2016년 예산 부대의견으로 학교 회계직원의 명절 상여금, 영양사 면허가산수당 인상을 채택했지만 이마저도 학교 현장에서는 잘 이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지키지 않아도 처벌받지 않고, 지켜주지 않아도 될 만한 대상이라 여기는 풍토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지요.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33% 차지
세월호 사망 기간제 교사 2명
공무상 순직 아닌 산재 처리
“학교에서 배구시합을 할 때도
비정규직은 뒤에서 수비만”
학교의 필수 업무 수행하지만
졸업앨범에도 빠진 사람들
차별 보며 학생들 뭘 배울까
교육주체로 신분 명확히 하고
공적 역할 존중 법 제정 필요
김광진 전 의원(맨 오른쪽)이 17일 교육공무직 노동자 증언대회에서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 현실에 대해 듣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지켜주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야당 간사를 맡고 있는 도종환 의원은 백무산 시인의 <노동의 추억>이라는 시를 낭송하는 것으로 연대사를 대신했습니다.
“군대 삼 년 마치면/ 십 년은 군대시절 애기를 한다/ 몇 달 외국 여행이라도 다녀왔다면/ 허구헌 날 입만 열었다 하면 그놈의 얘기다/ 생각해보라 그런데/ 우리에게 노동의 추억이 있는가/ 십 년 아니 삼십 년 노동을 해도/ 누가 그것을 그리운 추억이라 하는가….”
우리에게 노동은 추억의 누더기도 되지 못하는 비굴한 치부이며 묻어버리고 싶은 아픔입니다. 하지만 그 땀방울 속에 우리의 삶이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인천의 한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는 이윤희씨의 말입니다.
“누구는 여자가 반찬값이나 벌려고 나왔냐고 하지만 그곳은 나와 우리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는 소중한 일터입니다. 40도가 넘는 급식실에서 하루 평균 8t 가까운 식재료를 나르고 불과 칼 등에 노출된 채 땀 흘려 일하지만 기본 시급은 6360원. 그나마 방학엔 기본급, 교통비, 급식비 등이 나오지 않아 8월과 1월에는 0원이고, 사회보험료와 세금을 떼고 나면 월급은 마이너스가 되기도 합니다. 언론에서는 우리나라 사용노동자의 평균임금이 330만원이라는데 우리는 그 반토막도 되지 않습니다. 내년에 최저임금이 6470원으로 오르면 1월부터 학교는 최저임금도 못 받는 사업장이 됩니다.”
학교는 전체 공공기관의 비정규직 중 33%를 차지하고 있고, 우리가 학교에서 마주치는 교직원 중 43%가 비정규직입니다. 게다가 학교 비정규직의 95%는 여성입니다. 그러나 임금은 정규직 대비 60% 수준에 머물러 있고, 인상률 역시 매년 정규직의 기본급 인상률에 비해서 현저히 낮습니다. 지역별 격차뿐 아니라 사립학교에는 지급되는 휴가비나 상여금 등이 국립학교 비정규직 근로자에게는 지급되지 않는 문제도 심각합니다. 현재의 격차 외에도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막막함이 더 큰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그분들 또한 대한민국의 평균적인 국민이고, 평균적인 노동자들의 임금을 받고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상식적 요구입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아홉 분의 교사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중 정규직인 일곱 분은 순직 처리되었고, 기간제 교사였던 두 분은 기간제라는 이유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순직 심사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분명히 아이들을 지도하는 선생님이었고, 담임이었고, 학교 행사의 인솔자였으며, 책임자였지만 사고가 났을 때는 법적으로 공무원이 아닌 ‘산업근로자’로 구별되어 공무상 순직이 아닌 산재로 처리되었습니다. 황당한 건, 최근 이슈가 되는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기간제 교사 또한 교사라는 이유로 법의 적용을 받게 됩니다. 권리에선 배제되면서 의무는 이행해야 하는 슬픈 ‘을’의 삶입니다. “학교에서 배구 시합을 할 때도 비정규직은 정규직 뒤에서 수비만 해야 한다”는 성지현 전국사무직대책위원회 위원장의 토로가 현실인 사회라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이겠지요.
사실 이와 같은 행사가 19대 국회에서도 한 번 있었습니다. 그때 행사 펼침막에 ‘토로대회’라고 쓰인 글귀를 보았습니다. 정책간담회나 토론회가 아닌 ‘토로대회’라는 게 무엇일까 한참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토로’의 시간이 중반을 넘어가자 말을 하는 사람도 눈물을 흘리고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들도 같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학교가 노동 가치 부정하는 사태 막아야
하지만 이날의 증언대회는 좀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대구에서 온 이선영 대구 과학분과장이 마이크를 잡고서는 “우리 투쟁도 즐기면서 합시다! 웃으면서 멋지게!”라며 포문을 열자 다들 웃음으로 화답했습니다. 그들의 눈물도 웃음도 한마음의 표현일 것입니다. 행사 때 억지로 웃는 웃음이 아닌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웃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정치의 역할일 것이고, 그래서 그분들도 대한민국의 많은 공간 중 국회를 찾아와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겠지요.
해결책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정부는 애초 약속했던 일들을 잘 수행하고 국회는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지켜내기 위한 법률을 제정하면 됩니다. 말로는 참 쉬운 이 일이 언제나 디테일로 들어가면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사회의 고질적 병폐들이 존속되는 이유겠지요. 지난 19대 국회는 여대야소라는 상황, 그것도 여당이 과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이유로 변명해왔지만 20대 국회의 상황은 그런 변명이 통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론 정치라는 것이 상대가 있는 싸움이고 나의 주장만이 절대선은 아니므로 한 번에 모든 것을 얻어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내야 정치와 정치인도 국민에게 믿음을 줄 수 있습니다.
19대 국회에서 유기홍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대표발의했던 ‘교육공무직원의 채용 및 처우에 관한 법률안’은 2012년 10월25일에 상정되어 2013년 3월 상임위원회 차원의 공청회가 열렸습니다. 모두 8차례의 법안심의 등을 거쳤지만 결국 논의만 거듭하다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임기만료로 폐기되었습니다. 매번 회의가 열릴 때마다 ‘이제는 달라지지 않을까, 이번에는 결론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전국의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다시 ‘20대 국회에서는 달라지지 않을까, 여소야대의 국회에서는 결론이 나지 않을까’ 마음 졸이고 있을 것입니다. 국민의 민의를 받아서 구성된 20대 국회가 이제는 국민의 목소리에 응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해봅니다.
법안엔 크게 제정법과 수정법이 있습니다. 기존의 법안을 조금 수정하거나 일회적이고 단편적인 처우개선 대책만을 남발하는 땜질 처방으로는 차별적 처우와 고용불안이라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근원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공교육의 발전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학교비정규직을 학교 교육현장의 주체인 교직원으로 명확히 하고, 교육적 역할과 공공적 역할을 존중하는 ‘교육공무직’이라는 명칭을 새로 신설하는 제정법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개별 기업에 요구하기 앞서 정부부터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학교비정규직의 문제 해결이 가장 좋은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 아이들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노동의 가치는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 가치는 ‘소중하다’는 말만으론 만들어갈 수 없습니다. 적어도 학생들이 보고 배우는 교육의 공간에서 노동권의 정당성이 부정당하는 사태만큼은 막아야 합니다.
▶ 눈물 깃든 현장이 도처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성과 합리가 아닌 힘의 논리가 작동하는 갈등 공간이 전국에서 부스럼처럼 솟아 가라앉지 않습니다. 해법을 찾지 못한 갈등이 오래 묵어 삶을 곪게 하는 사태는 정치가 제 기능을 못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제19대 국회의원 장하나·김광진씨가 갈등의 현장을 찾아갑니다. 청년 비례대표로 정치를 경험한 두 전직 의원이 현장 속에서 정치를 성찰하며 현직 국회의 역할을 고민합니다.
김광진 전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