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사회에디터석 사회정책팀 기자 ejung@hani.co.kr 새벽 1시40분께 회사에서 야근을 하다가 항의전화를 받았습니다. 술 취한 독자는 “염병”을 연발하며 화를 쏟아내더군요. 날이 밝으면 다시 통화하자는데도 지금 당장 자신의 집 앞으로 달려오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10분 넘게 실랑이를 벌인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한숨처럼 혼잣말을 내뱉었습니다. “아, 때려치우고 싶다.” 누구에게나 노동은 버겁고, 밥벌이는 지겹습니다. 언론노동자도 예외가 아닙니다. 안녕하세요, 사회부에서 노동하는 기자 정은주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이던 지난달 1일, “새로운 정부의 핵심 국정기조를 ‘노동 존중’으로 정하고 노동의 존엄, 노동의 가치를 세우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노동이 존중받는 나라’ ‘노동이 행복한 나라’로 만들겠다는 포부입니다. 첫 실행과제로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인 ‘모든 노동자가 차별 없이 자주적으로 노조를 설립할 수 있는 권리’와 ‘노조활동에 따른 차별 금지, 자발적 단체교섭 보장’ 비준을 꼽았습니다. 문 대통령은 “우리 노동권도 이제 선진국에 진입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국제노동기구란 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과 지위 향상을 위해 설치된 유엔기구를 말합니다. 우리나라는 1991년 12월9일 국제노동기준을 준수하겠다고 약속하며 153번째 회원국이 됐습니다. 그러나 가입 30년 가까이 지난 현재도 189개 협약 중 비준한 건 29개에 그쳐 ‘노동 후진국’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특히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2006년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진출, 2010년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때 비준을 약속했던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87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의 적용에 관한 협약(98호)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29호) △강제노동의 폐지에 관한 협약(105호) 등 핵심 협약조차 ‘미완의 과제’로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 협약은 국제노동기구 회원국의 80%가 비준한 기본협약입니다. 그래서 국제사회는 이 핵심 협약을 비준하라고 수없이 권고했지만, 한국 정부는 묵살했습니다.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뒤 대통령이 재가하면 되는 비준 절차를 십수년 동안 밟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달 30일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샤런 버로 국제노동조합총연맹 사무총장의 말을 들어보면, 문 대통령은 다른 길을 선택할 듯합니다. “문 대통령이 국제노동기구의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 협약을 비준할 계획이며, 한국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최저임금을 인상하겠다고 공약했음을 강조했다. 또 비정규직 일자리는 좋은 일자리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이로써 한국의 일하는 사람들이 희망을 갖게 될 것이다.” 국제사회의 압력도 점점 거세집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행정부)는 한국 정부에 노동권 협의를 요청했습니다. 2010년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할 때 한국 정부가 국제노동기구 협약 비준을 약속했는데,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유럽의회는 지난 18일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 보고서를 의결하며 “한국 정부에는 여전히 노조 지도자(한상균) 구속 문제나 결사의 자유 침해 사례가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한국 정부와 공식 협의를 시작해 위반 사례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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