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없는 성장’, ‘노동 없는 미래’에 대한 대안으로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의가 확산하고 있다. 스위스, 핀란드, 인도 등에서 기본소득을 국가 정책으로 실현하려는 제안과 실험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11일에는 국제통화기금(IMF)이 복지가 빈약한 국가들에 적합한 제도라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기본소득은 과연 21세기의 새로운 상식이 될 수 있을까?
가이 스탠딩(사진) ‘기본소득 지구네트워크’ 공동대표는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기본소득은 ‘하고 싶은 일’, ‘의미 있는 일’을 하라는 것”이라며 “이제는 ‘일’의 의미를 재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이란 월급을 받는 노동, 즉 ‘임금노동’이란 의미를 넘어 우리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런 인식은 “더는 경제성장이나 기술혁신을 통해 실질임금을 상승시키기 어려울 것이며, 무엇보다 20세기 분배 시스템이 실패했다”는 진단을 배경으로 한다. 기본소득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가이 스탠딩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연구대학(SOAS) 교수는 오는 11월15일 ‘일의 미래: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향하여’란 주제로 개막되는 제8회 아시아미래포럼에서 이런 내용의 특별강연을 할 예정이다.
불안정한 삶에 놓인 사람들을 일컫는 ‘프레카리아트’(Precariat) 계급의 급증에 주목해온 그는 불안정 노동자의 경제·사회적 불안정 해소를 위해 기본소득을 도입할 것을 일찍이 주창한 바 있다. 노동시장의 급속한 유연화가 프레카리아트 계급을 양산했으며 이는 “전지구적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가지고 있는 체제적 문제로 인한 결과”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결정할 수 있으려면, 즉 미래를 설계할 수 있으려면 최소한의 소득이 있어야 한다”며, 필요한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과 정당한 권리를 주는 것이 ‘기본소득’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사람들이 스스로 삶을 통제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장치가 기본소득이며, “기본소득이 보장되면 개인의 생활과 시간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고, 기본소득을 받는 사람들은 더 이타적이 되고, 사회적 책임감도 증진될 것”이란 설명이다.
기본소득이 우파와 좌파의 스펙트럼 중 어디에 위치하느냐는 물음을 두고서는 “우파도 좌파도 아닌 ‘상식’으로 간주하여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낮은 기본소득으로 복지지출을 대체하려는 움직임은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본소득이 근로의욕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도 일축했다. 그는 “여러 (실험적) 사례에서 사람들이 근로의욕을 잃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근로의욕이 증진됐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인도 마디아프라데시의 마을 9곳에서 기본소득 실험을 진행한 바 있다. 그 결과 아이들의 학교 출석률이 높아졌으며, 마을의 경제활동이 증가하고, 부채가 감소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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