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사정 대표자 6자 회의 모습.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쉽지 않은 길이었고 넘어온 산과 건너온 강이 높고 깊었습니다.”
지난달 31일 문성현 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원장이 노사정 6자(한국노총·민주노총·한국경영자총협회·대한상공회의소·고용노동부·노사정위원회)가 모두 참여한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한 말입니다. 사실상 양대 노총이 모두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는 19년 만입니다. 언론의 카메라 플래시 세례 속에 발언을 시작하는 문 위원장의 표정엔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습니다. 원탁에 앉기까지 아주 지난한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앞으로 넘어야 할 산과 건너야 할 강은 더 높고 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웃으며 만난 이들은 “머리를 맞대고 어깨를 같이 겯고” 나아갈 수 있을까요? 끝에는 뭐가 있을까요? 중간에 낙오되는 이는 없을까요?
안녕하세요. 사회에디터석에서 노동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박태우입니다. ‘노동 존중 사회’를 표방하는 정부가 출범한 이후 노동 강도가 무척 세졌습니다. 오늘은 요즘 노동계 핫이슈인 사회적 대화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대선 때부터 사회적 대화의 중요성을 누차 강조해왔습니다. 고용 형태 다양화와 4차 산업혁명, 저출산 고령화 대응과 노동시장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는 논리였죠. 그러나 이게 그리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닙니다. 1999년 정리해고·파견법 도입에 반발해 민주노총이 노사정위를 탈퇴했고, 2016년엔 박근혜 정부의 일방적인 ‘노동개혁’ 추진에 반대해 한국노총이 노사정위를 탈퇴했습니다. 양대 노총이 모두 노사정위에 복귀하지 못하겠다는 뜻을 보이자, 노사정위는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던 ‘사회적 대화기구 재편’을 목표로 한 노사정대표자회의를 제안하게 된 것입니다.
자, 그러면, 앞으로 사회적 대화는 어떻게 될까요. 긍정적인 대목은 여럿 있습니다. 먼저 양대 노총이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적극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는 것입니다. ‘끌려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한국노총은 밀도 있는 논의를 하자며 시한을 정하자고 하기도 했고, 민주노총은 책임성을 위해 6자가 돌아가며 회의를 주관하자는 얘기도 했습니다.
또 하나 긍정적인 것은 정부가 ‘심부름꾼’ 역할만 하겠다고 한 점입니다. 기존의 사회적 대화는 정부가 주도하는 의제와 결론에 다른 주체들이 ‘동원’되는 형국이었습니다. ‘대타협’엔 노동계의 ‘일방적인 양보’가 수반됐고, 결국 노동계가 자리를 박차게 될 수밖에 없었죠. 그런 상황에서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정부가 어떤 합의를 내달라고 안건을 내놓지 않겠다”고 한 점은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지만, 사회적 대화의 성공을 위해선 꼭 필요한 말이기도 하죠.
그러나 암초도 있습니다. 양대 노총이 국회의 근로기준법 개정과 정부의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편 결과에 따라 참여 여부를 재검토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열린 그날, 최저임금위원회에선 산입범위 개편에 반대해왔던 노동자위원들이 어수봉 위원장의 ‘사용자 편향성’을 문제삼아 사퇴를 요구해 파행으로 끝났습니다. 2월 정국 상황이 어떻게 되느냐, 양대 노총이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사회적 대화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닙니다.
그동안의 사회적 대화 관련 보도를 보면 노동계 또는 민주노총 참여 여부에만 집중됐던 모양새입니다. 물론 양대 노총이 모두 참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긴 하나 정작 사회적 대화가 왜 중요한지, 어떤 의제를 삼아야 하는지에 대해선 논의가 부족한 것도 사실입니다. 실제로 노사정대표자회의를 다룬 언론 보도를 보면 ‘이벤트성’으로 다뤄진 보도도 많더군요.
사회적 대화가 뜬구름 잡는 얘기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회적 대화의 목표로 하고 있는 대·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임금격차 해소, 일자리 창출 문제 등은 우리 삶에 밀접한 얘기가 될 것입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이후 많은 노동자들을 울린 정리해고·파견법이 도입된 것도 평가야 어찌 됐든 사회적 대화(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를 통해 나온 결과물입니다. 사회적 대화를 성공해본 적 없는 한국이 과연 잘해낼 수 있을지, 또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을지 우리 모두가 지켜봐야 할 때입니다. 앞으로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기사로 인사드릴게요 여러분~.
박태우 사회에디터석 사회정책팀 기자 eh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