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심포지엄’ 사전간담회에서 요르고스 알틴지스 한국-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 시민사회포럼 자문위원이 발언하고 있다. 한국노총 제공
“한국 경영계는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
12일 요르고스 알틴지스 한국-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자문위원이 내놓은 발언이다. 그는 “11일 양쪽 자유무역협정의 노동조항 이행을 검토하는 시민사회포럼에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와 대한상의가 일방적으로 퇴장하는 등 자문 과정을 사실상 방해하며 어리광을 부렸다(spoiled child)”며 한국 경영계를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유럽연합이 한국에 ‘정부간 협의’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2010년 한국과 유럽연합이 맺은 자유무역협정 ‘제13장 무역과 지속가능한 발전’에는 노동과 환경 관련 조항이 담겨있다. 양쪽이 꾸린 ‘지속가능발전위원회’는 13장 조항의 상호 이행여부를 점검하고, 한국과 유럽연합의 노사 및 엔지오로 구성된 ‘시민사회포럼’을 별도로 꾸려 협정 이행에 관한 자문을 받고 있다. 어느 한쪽이 이를 지키지 않을 때, 다른 한쪽에서는 ‘정부간 협의’를 요구할 수도 있다.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11일 오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제6차 시민사회포럼에서 한국 경영계를 대표해 참석한 경총·대한상의는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의 석방을 촉구하는 자문 내용에 반대하며 퇴장해 결론을 채택하는데 실패했다. 한국 경영계는 “이미 법원 판결이 나온 사안인데 한상균 석방을 논하는 것은 사법체계에 대한 무시”라는 태도다. 이 포럼에 참석했던 류미경 민주노총 국제국장은 “이미 국제적으로 한국 정부가 수차례 권고를 받은 바 있는 한상균 석방 문제를 다시 한번 권고할 뿐인데 왜 퇴장까지 하며 반대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지난해 4월25일 유엔(UN) 자의적 구금에 관한 실무그룹은 한 전 위원장 구속이 국제인권법에 어긋나는 ‘자의적 구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국제노동기구(ILO) 이사회는 지난해 11월 “2015년 민중총궐기를 조직했거나 평화롭게 참여했다는 이유로 구속된 한상균과 모든 노조 간부를 석방하라”고 한국 정부에 권고하기도 했다.
유럽연합 쪽 관계자는 한국 경영계의 행태가 한 위원장 석방뿐 아니라 자유무역협정 노동조항에 반대하는 움직임이라고 보고 있다. 알틴지스 자문위원은 “한국 경영계는 사실상 국제적 노동 제도 자체를 거부하는 것으로 보였고 결론 도출 실패를 의도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자유무역협정 노동권 부분을 개정해 상대국이 노동법을 준수하지 않을 때 조처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다른 국제노총 관계자도 한국 노동기본권에 큰 우려를 나타냈다. 막불리 사한 국제노총 법률국장은 “한국에서는 간접고용노동자·특수고용노동자·실업자 등 다양한 이들의 결사의 자유와 여러 권리가 심각하게 제약되고 있다. 노조법상 단체교섭에서 창구단일화를 강제하는 점이나 노조 설립신고가 사실상 사전 허가제로 전락했다는 점이 가장 문제적”이라고 말했다. 루완 수바싱게 국제운수노련 법률담당은 “한국은 형법 314조 업무방해죄에 근거한 파업한 노동자에 대한 처벌이나 과도한 손배가압류를 통한 보복조치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국제노총은 2014년부터 매년 약 140개국 대상으로 법률적·실질적 노동권 보장 정도를 평가해 세계노동권리지수(GRI)를 발표하고 있는데, 한국은 2015년 이후 계속 최하위 5등급으로 분류되고 있다. 5등급에는 필리핀·이집트·방글라데시·파키스탄·캄보디아 등이 속한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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