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관성대로, 성과를 보이려고 선거 앞두고 밀어붙이는 행태를 정치권이 이번에 또 답습한 겁니다. ‘지난 정부와 뭐가 다르냐’, 이 말에 제대로 답할 수 있을까요?”
지난 7일(현지시각) 오전 스위스 제네바에서 <한겨레>와 만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최저임금법 개정 과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 참석 중인 김 위원장은 산입범위 확대, 고용 영향 등 얽히고설킨 국내 최저임금 논란과 관련해 “논의 없이 밀어붙인 국회의 의사결정 과정이 가장 큰 문제다. 여당은 이제와서 통상임금도 논의하겠다지만 이달부터 원구성도 바뀐다. 최저임금법을 개정한 뒤 국회가 한 게 뭐가 있느냐”라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특히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태도를 강하게 문제삼았다. 김 위원장은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있는데, 정부·여당이 자신의 생각만으로 복잡하게 얽힌 현안을 정리할 수 있다고 판단한 건 지지율만 믿는 오만한 태도”라며 “특히 여당의 원내대표가 수차례 ‘노동계는 억지 부리는 집단’이라며 충돌을 만든 부분이 더 문제다. 이런 태도로 촛불 시민이 쥐어준 사회 대개혁 과제를 받아안을 수 있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 대표가 지난달 21일 국회 고용노동소위에 참석한 민주노총 관계자한테 “민주노총이 너무 고집불통이라 양보할 줄 모른다. 산입범위 논의를 맡길 수 없다”고 한 것을 이른 말이다.
최저임금법 개정 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최저임금위원회를 비롯한 사회적 대화 기구 불참과 대정부 투쟁 등을 선언하자, 정부는 보완책 마련을 약속했다. 김 위원장은 이에 대해서도 “정부가 얘기하는 건 문제가 되는 이들에 대한 재정지원 정도”라며 “이번 개정은 최저임금 제도 자체에 근본적인 문제를 야기한 것이다. 더 큰 차원의 전환이 없다면 국면 전환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4월말 활동을 끝낸 제10대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산입범위 논의를 매듭짓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최저임금의 수준과 산입범위, 통상임금은 모두 연동된 주제다. 이걸 각기 따로 이야기하면 우리로선 당장 눈에 뻔히 보이는 개악에 반대하고 나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번에 노동계가 한국경영자총협회를 설득해 임금체계 전반을 논의하려 했는데 국회가 ‘어차피 노동계는 합의 안 할 것이다. 대안도 없다’며 무산시킨 것”이라고 했다. 최저임금 수준과 임금체계 개편을 동시에 조율해야 저임금 노동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데도, 정치권이 이를 그르쳤다는 주장이다.
김 위원장은 당분간 노동계가 할 일을 ‘꾸준한 대응’이라 봤다. 그는 “한번의 투쟁으로 모든 걸 바꿀 수는 없다. 최저임금 노동자의 상황이 악화되는 것에 대응해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등 필요한 제도개선 요구를 꾸준히 해나가겠다. 조직화 사업에도 박차를 가해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비빌 언덕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내년도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해야 하는 법정시한인 오는 28일 이전 노동계의 최저임금위원회 복귀에 대해선 “지금은 셈법이 복잡해 구체적으로 말할 상황이 아니다”라며 말을 아꼈다.
제네바/글·사진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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