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저녁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 본관 앞에서 삼성 엘시디(LCD)공장에서 일하다 뇌종양에 걸린 한혜경씨와 어머니 김시녀씨가 손을 잡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삼성그룹 전자계열사의 ‘작업환경측정 결과보고서’(작업환경보고서)에 대해 “핵심기술을 제외하고 공개해야 한다”는 정부 결정이 나왔다. 올해 초 고용노동부의 공개 결정을 뒤집는 것이어서, 앞으로 이어질 행정소송 과정에 관심이 모인다.
국민권익위원회 소속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작업환경보고서 공개 여부에 관한 행정심판 본회의를 열어 ‘삼성 계열사 공장의 작업환경보고서를 공개하라는 고용부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삼성 쪽 주장을 일부 받아들였다고 지난 27일 밝혔다.
행정심판위원회는 비공개 대상 정보에 대해 “‘국가핵심기술’로 인정된 내용과 그에 준하는 것으로, 법인의 경영·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공개·비공개 범위와 판단 근거는 ‘재결서’에 적어 당사자에게 보내는데, 재결서 작성과 송달에는 3주 남짓 걸릴 전망이다.
작업환경보고서는 노동자가 벤젠 등 작업장 내 유해물질(총 190종)에 노출된 정도를 사업주가 평가해 그 결과를 기재한 문서다. 삼성 계열사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이나 림프암 등에 걸린 노동자와 유족들은 산업재해 입증에 필요하다며 보고서 공개를 요구해왔지만, 삼성 쪽은 “영업비밀”이라며 맞섰다. 이에 고용부 중부지방고용노동청은 지난 2~3월 3차례에 걸쳐 2010~2015년 삼성전자의 기흥·화성·평택공장 작업환경보고서 공개를 결정했지만, 삼성 쪽은 이에 불복해 지난 3월 이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행정소송과 함께 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행정소송에 앞서 이뤄진 이번 심판에서 고용부 결정이 뒤집히면서 앞으로 이어질 소송 결과에도 관심이 모인다. 최근 삼성 쪽이 백혈병 분쟁 조정위원회의 중재안을 무조건 수용하기로 하면서 작업환경보고서 공개 명분이 약해졌다는 지적이 있지만,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쪽은 “작업환경보고서 공개와 중재 합의는 별개”라며 선을 그었다.
이종란(노무사) 반올림 상임활동가는 29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국가핵심기술 제도는 기술의 국외 유출을 막기 위한 것인데 해당 공장의 기술은 이미 특허로도 공개돼 있고, 그보다 더 최신 기술이 중국에 수출돼 있다. 우리가 청구한 고용부 보관 자료엔 그나마 ‘핵심기술’과 관련된 측정위치도도 없다. 노동자의 작업환경에 대한 알권리를 제약하는 근거라고 하기엔 말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