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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최저임금 1만원 집착보다 ‘을들의 연대’ 틀 만들 때”

등록 2018-09-17 18:16수정 2018-09-17 21:19

【여성·청년·비정규직 대표 활동가 집담회】
“주휴수당, 산입범위 확대는 곁가지
복잡한 현행 임금체계 뜯어고쳐야”

노동계 최저임금위 불참, 이해 못해
산입범위 일방개편, 국회도 반성해야

‘최저임금 1만원’ 구호는 마중물 구실
“임금인상 선순환 구조에 집중할 때”
2019년 최저임금이 8350원으로 결정된 뒤 두 달여가 지났다. ‘최저임금이 우리 사회에서 이렇게나 주목받아본 적이 있을까’ 싶을 만큼 격렬한 갈등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 속에서도 최저임금을 받는 ‘당사자’의 목소리는 듣기 어려웠다.

지난 6일 <한겨레>는 나지현 전국여성노동조합 위원장, 김병철 청년유니온 위원장,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와 만나 지난 최저임금 결정과정을 복기해봤다. 이들 세 사람이 속한 단체는 저임금 노동자를 대변하며 최저임금 인상에 가장 적극적으로 앞장서왔다. 최저임금 영향권에 있는 노동자의 대부분은 여성이거나 청년이며 비정규직이기 때문이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왼쪽부터), 나지현 전국여성노조 위원장, 김병철 청년유니온 위원장이 지난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최저임금 1만원’ 구호의 한계와 앞으로의 최저임금 논의의 방향성에 대한 좌담회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왼쪽부터), 나지현 전국여성노조 위원장, 김병철 청년유니온 위원장이 지난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최저임금 1만원’ 구호의 한계와 앞으로의 최저임금 논의의 방향성에 대한 좌담회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논란의 발단, 최저임금 산입범위

2019년 최저임금이 유례없는 갈등 속에서 8350원으로 결정됐다. 최저임금 결정 이후에도 영세자영업자의 반발은 여전히 거세다. 이런 갈등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이남신 내년 인상률(10.9%)이 2년 연속 두자릿수를 유지한 점은 다행스럽지만 과정은 안타깝다. 논란의 시작은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편이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들이 산입범위 문제를 상당히 거칠게 다뤘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을 견인해야할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갈등을 일으켰다. 집권여당 원내대표라면 좀더 품격있는 조정자 역할을 해야 했다. 홍 원내대표는 노동조합 활동을 해서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다 안다. 그런데도 정치적 대립 공방처럼 감정적인 도발을 많이 했다. 그게 양대노총이 최저임금위원회 불참 카드를 쉽게 던진 상황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홍 원내대표를 비롯해서 정책 의사결정을 주도했던 국회의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김병철 미성숙한 한국의 사회적 합의 수준이 이번에 여실히 드러났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문제를 국회가 일방적으로 결정했기 때문에 논란이 시작됐다. 하지만 조금만 시기를 앞당겨보면 국회로 넘어가기 전에 노사가 합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사실 최저임금이 인상될수록 정기상여금의 최저임금 산입 문제는 터져나올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일정 정도 합의를 했다면 이렇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거다. 그렇지만 노사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국회에서 저임금 노동자에게 더 피해를 주는 방식으로 결정된 점이 논란의 단초가 된 것 같다.

나지현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결정권을 가지면서 한계가 나타난게 아닌가 생각한다. 최저임금 산입범위도, 최저임금위원회 참불참 여부를 결정할 때도 다 최저임금 당사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결정됐다. 당사자에게는 10원, 20원 차이가 굉장히 중요한데 결정에 힘을 보탤 방법이 없다. 사용자 쪽도 마찬가지다. 사실 산입범위 확대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영세자영업자하고는 무관하지 않나. 최저임금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발언권이나 결정권이 없는 방식으로 최저임금이 결정되고 있고, 이 문제가 터진 거다.

‘최저임금법개악안 대통령 거부권 행사 촉구 및 최저임금 위원 사퇴 기자회견’이 지난 5월29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려,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들이 위촉장을 든 채로 참석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최저임금법개악안 대통령 거부권 행사 촉구 및 최저임금 위원 사퇴 기자회견’이 지난 5월29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려,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들이 위촉장을 든 채로 참석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이번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은 반쪽만 참가했다. 이남신 활동가는 최저임금 최종 심의 열흘 전 한국노총과 함께 최저임금위원회에 복귀했고, 청년유니온은 민주노총과 함께 끝까지 불참했다. 당시 상황은 어땠나?

이남신 처음부터 나는 최저임금위원회 사퇴 계획에 반대했다. 최저임금은 미조직 노동자·사회적 약자·취약계층의 임금이기 때문에 진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산입범위 논란도 문제가 있지만 최저임금위원회 사퇴 카드는 가장 마지막에 써야 했다. 그저 위촉장 들고 사진 찍고 반납하는거 보여주고, 그런 정치적 행위에 대해 문제의식이 있었다. 난 그거 싫었다(웃음). 정부 위원회의 위원으로서 책임있는 행태는 아니었다. 산입범위 투쟁은 그거대로 하더라도 더 취약한 노동자를 위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인상률을 최대한 끌어올렸어야 했는데 아쉬웠다.

김병철 김영민 청년유니온 사무처장이 민주노총의 추천으로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으로 위촉됐으나 사실 거의 들어가지 못했다. 최저임금 논의 막바지에 청년유니온 내부에서는 최저임금위원회에 참여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최저임금 당사자에게 결과를 설득하기 위해서라도 참여가 중요하다는 주장이었다. 민주노총 위원들과 논의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불참하는 것으로 결정나서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한다. 이런 식의 강경 투쟁 방식은 반성이 필요하다. 한 푼이라도 더 올리는 게 절박한 최저임금 당사자가 그런 방식을 용납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저희 스스로 최저임금위원회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이런 식의 모습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지현 양대노총이 산입범위가 확대되자마자 최저임금위원회 사퇴한다, 사회적 대화 불참한다 이런 식으로 나와서 저희는 ‘이 사람들이 이렇게 무책임할 수가 있나’ 그런 생각을 했다. 저임금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싸워야 할 사람이 거기에 안끼겠다니. 그럴거면 우리를 보내주던가 그것도 아니고(웃음). 마지막에 들어가서 어떻게 해서든 최저임금 수준을 더 올리자고 얘기했는데 듣지 않았다. 분명 사퇴 카드가 필요한 시점도 있을 거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산입범위 확대가 사실상의 임금삭감이라면 최저임금을 더 올리러 가야했다.

여성·청년·비정규직…최저임금 민주주의

이번 최저임금위원회에는 여성 몫의 노동자위원이 아예 없었고 청년 몫의 노동자위원은 심의에 불참했다. 청년·여성·비정규직 등 최저임금 당사자의 의견이 크게 반영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는데.

나지현 최저임금 결정할 때 여성 노동자위원이 꼭 들어가야 한다고 항상 주장해왔다. 그래서 보통 1명씩은 여성이 있었는데, 올해는 그 요구가 아예 묵살됐다. 우리는 참여 요구를 전달할 통로도 없었다. 노동자위원은 양대노총이 추천하는데 그게 어떻게 결정되는지 밖에선 전혀 알 수 없다. 누가 추천되는지, 여성이 들어가는지 안들어가는지도 모른다. 이번에도 결정되기까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최저임금위원 추천권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다. 최저임금 당사자의 관심을 끌고 총의를 모을 책임을 준거다. 실제로 최저임금을 받는 여성·청년·노인·미조직 비정규 노동자들, 이들을 어떻게 대변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 노동계나 경영계나 그걸 단순히 권리로 이해하기 때문에 그때그때 정치적 판단에 따라 자유롭게 나가고 들어오는 거다.

김병철 상식적으로 최저임금 당사자의 대부분이 여성이면, 노동자위원의 과반 이상이 여성이어야 한다. 여성이 하나도 없었다는 건 큰 비난을 받아 마땅한 문제다.

이남신 공익위원도 9명 가운데 5명이 여성이고 사용자위원도 2명이 여성이었다. 노동자위원 가운데 한명도 없었다는 점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최저임금 적용 당사자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도 않는데도 그들을 대변해야 하는 굉장히 어려운 구조다. 일종의 딜레마다. 애초에 노조 조직률이 높으면 노동조합에서 임금 교섭을 하면 되니까 최저임금이 필요가 없다. 미조직 노동자의 조직률을 올리는 것이 관건인데 그건 워낙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 과도기에 최저임금위원회가 임금교섭 대리기구 역할을 한시적으로 하고 있는 거다. 아마도 조직률이 30%대까지 오르기 전까진 최저임금위원회는 지금과 같은 사회적인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동안에 어떻게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당사자 중심 논의를 만들지 고민해야 한다.

지난 5월17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11대 최저임금위원회 위원 위촉장 전수식’에 참석한 노동자위원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지난 5월17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11대 최저임금위원회 위원 위촉장 전수식’에 참석한 노동자위원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최저임금 결정과정에 당사자가 더 많이 참여하면 무엇이 바뀔까?

이남신 양대노총 소속 조합원이 아닌 최저임금 당사자가 들어간게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청년유니온이 처음이다. 그러자 균열이 생겼다. 처음으로 최저임금위원회에 대한 ‘알 권리 투쟁’을 시작했다. 임금교섭은 원래 시차없이 바로 적용 당사자에게 공개되어야 한다. 사용자 쪽 발언까지 공개해서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다 알 수 있도록 하는게 일반적인 노사 임금교섭의 원리다. 그런데 최저임금의 경우는 밀실에서 하다보니 정치적 교섭이 되어버린다. 그나마 정규직 노동자는 노동조합 안에서 정보 공유가 좀 되는데 비정규직 노동자는 대부분 노동조합 밖에 있다. 심지어 최저임금위원회가 있는 줄도 모른다. 언론에서 중계하듯 공개되어야 하는데 기자들도 심의에 못들어 간다. 그래서 우리는 ‘속기록 작성하고 공개해라’ 주장하며 싸우기 시작했다. 양대노총은 최저임금 당사자가 아니라서 알 권리가 필요한 걸 알아도 그걸 위해 싸울 생각까지는 못한다. 당사자가 들어가면 그동안 주목하지 못했던 실질적인 과제를 부각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최저임금 극한 갈등…주인공은 자영업자?

최저임금 심의 과정만큼이나 그 이후의 갈등도 깊다. 노동계와 경영계의 다툼을 넘어서 정치 공방으로까지 이어지는 모양새다.

김병철 지난 2년 동안 최저임금이 30% 가까이 올랐으니 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 논란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최저임금 제도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핵심을 잊은 채 공론장이 어그러진 것이 문제다. 고용률 높이려고 최저임금이 존재하는 건 아니잖나. 모든 것을 최저임금 탓으로 돌리고, 최저임금 노동자가 임금 올라서 기분이 좋다는 얘기조차 하기 어렵게 몰아가는 정치적 공세가 심각하다.

나지현 ‘최저임금 1만원’이 주요 대선주자의 공통 공약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지금처럼 놔둬서는 이 나라에 더이상 희망이 없다는 것에 모두 공감했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생활도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들의 임금을 올려 우리 사회의 격차를 해소하기에 최저임금은 여전히 유효한 방식이다. 하지만 정책이 이거 하나면 안되지 않나. 일자리, 산업, 복지 등 전체 정책 가운데 최저임금은 극히 일부분인데 마치 전부인 것처럼 공격받았다. 최저임금이 집중 공격 받으면서 방어에 급급한 나머지 말려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다. 최저임금 당사자에게 최저임금은 수입의 전부인데 최저임금 자체를 흔드는 이런 논란 때문에 불안하다. 그 당사자들은 반론을 제기할 기회도 없다.

이남신 ‘최저임금 1만원’은 아마 우리 사회의 진보-보수가 정치적으로 합의한 최초의 노동 정책일거다. 그런데 불과 1년만에 최저임금은 죄인이 됐다. 우리는 그 과정을 잘 살펴봐야 한다. 최저임금 제도가 30년동안 이어온 기본 취지는 소득격차 해소인데 최저임금 이야기를 할 때 영세자영업자의 고충, 경영계의 문제만 부각되고있다. 영세자영업자의 문제는 경제민주화나 재벌개혁 등 다른 프레임을 만들어 풀어야지, 이걸 다 최저임금에 넣으니 엉망이 됐다. 최저임금으로 인해 나타난 후속 문제에 있어서 노사정 모두가 아마추어였다고 본다. 저는 이게 오히려 ‘최저임금은 최저임금의 역할을 해야한다’는 교훈을 준 과정이었다고 생각하고, 지난해와 올해 드러난 후폭풍을 사회적으로 해결해가면서 최저임금 논란을 성과로 만들어내면 좋겠다.

지난 8월2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소상공인 궐기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지난 8월2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소상공인 궐기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영세자영업자의 반발이 여전한데, 이들과 저임금 노동자와 연대는 불가능할까?

나지현 임대료나 수수료나 고치자고 말은 하는데 잘 고쳐지지 않고, 이 상황에서 자영업자들은 가장 만만한게 임금이라서 임금에 손 대려고 한다. 하지만 영세자영업자와 최저임금 노동자는 같은 편이다. 자영업은 노동자가 회사를 나와서 하는 일이기도 하다. 사회안전망이 없으니 퇴직금으로 충분한 준비도 없이 하는 게 자영업이다. 그래서 노동조합은 집회할 때 임대료 낮춰라, 수수료 낮춰라, 이런 구호를 외친다. 이게 모순되는 장면이 아니다.

김병철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등 최저임금 인상을 지지하는 영세자영업자 단체도 있다. 이런 단체와 함께 노동계는 ‘함께 살자’라는 구호를 외쳐왔고 대기업 갑질을 막자는 연대를 수년 전부터 이어왔다. 그런 연대가 있었기에 내년 최저임금 8350원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올해처럼 이렇게 논란이 증폭된 상황에서는 구호를 넘어서 실제 논란을 해결할 정책적 협의가 필요했다.

이남신 영세자영업자의 집단화에는 동의하지만 최저임금 불복종 운동은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저임금 노동자와 손 맞잡고 재벌에 맞서고 최저임금 운동의 성과를 같이 확인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최저임금 불복종은 을들 다 죽이는 거다. 영세자영업자들이 표적으로 삼아야 할 대상은 최저임금, 저임금 노동자, 양대노총이 아니다. 슈퍼갑 기득권자인 재벌 사업주에게 정당한 생존권 투쟁을 벌이고 을들의 연대 만들어가면 좋겠다. 돈을 벌어야 돈을 쓸 것 아닌가.

최저임금의 미래…차등적용? 주휴수당 폐지?

2년 연속 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최저임금 흔들기’가 심각하다. 특히 경영계를 중심으로 한 최저임금 차등적용 주장이 거세다.

이남신 매년 사용자위원들이 가장 먼저 주장해온 과제가 차등적용이다. 한국의 최저임금 제도는 세계에서도 예외적으로 강력한 연대임금 제도이기 때문에 사용자위원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요구라고 생각한다. 직접 만나서 얘기해보면 그쪽도 사정이 절절하다. 다만 이런 요구는 임금수준하고 연동해서 가야한다. 지금처럼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 수준이 너무 낮은 상황에서 차등적용이 이루어지면 저임금 직업군은 고착화된다. 생활임금 정도로 임금 수준이 올라왔을 때 업종별 차등적용에 대해 합리적으로 논의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병철 기본적으로 차등적용의 의미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유럽에서의 차등적용은 고용안정성이 떨어지는 비정규직에게 더 많은 임금을 주는 걸 뜻한다. 한국은 거꾸로 더 불안정하고 더 저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임금을 더 깎기 위해서 차등적용을 들고 나온다.

주휴수당 폐지 주장은 어떤가.

김병철 주휴수당이 존재하는 나라는 한국과 터키 정도다. 특이한 제도인 것은 틀림없다. 주휴수당을 없애자는 이야기가 이상한 주장은 아니다. 게다가 그게 노동계에 유리할 수도 있다. 주 15시간 이하로 일하면 주휴수당이 적용되지 않아서 초단시간 노동자가 늘어나는 부작용이 있는데, 이런 문제가 사라진다. 또 주휴수당이 사라지면 시간당 통상임금을 계산할 때 쓰는 노동시간이 209시간에서 174시간으로 줄어든다. 그러면 야간수당이나 연장수당 등을 계산하는 통상임금이 커지는 효과가 있다. 게다가 주휴수당은 임금 계산을 어렵게 하는 주범이기도 하다. 주휴수당 때문에 임금 계산에 어려움을 겪는 노동자도 많다. 자신이 임금을 다 못받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경우가 왕왕 생긴다. 노동자는 자기 임금을 명확히 알고 주장할 수 있어야 권력을 가지는 거다. 임금체계 단순화가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주휴수당 폐지는 충분히 논의해볼 수 있다. 문제는 주휴수당을 없앨 때 그만큼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이 줄어들기 때문에 그 상쇄분만큼의 최저임금 인상을 얻어내야 한다는 점이다. 사실 지난 산입범위 개편 때와 비슷한데, 그런 상황이 반복될까 우려된다. 우리 사회에서 성숙한 교섭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나지현 지금 우리나라는 기본급이 적고 이런저런 수당을 많이 붙는 기형적인 임금체계를 가지고 있다. 복잡한 임금체계 전체를 이야기하지 않고 주휴수당 같은 특정 제도만 가지고 논의하면 산입범위 개편 당시의 고통을 똑같이 겪을 수 있다. 저임금 노동자를 더 저임금으로 만드는 상황만 올거다. 경영계가 이런 제도를 임금 깎는 수단으로 사용해왔기 때문에 논의의 진전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이남신 주휴수당이나 산입범위, 차등적용은 곁가지다. 최저임금 문제에서 드러난 문제, 노동시간 단축에서 드러난 문제, 비정규직 정규직화에서 드러난 문제 등등을 모아보면 핵심은 임금체계 개편이다. 결국 노사는 임금총액을 두고 갈등하는 건데 원래 가진 것 나누는게 쉽지가 않다. 기본급 중심으로 가는 방향에 노사 모두 공감은 하는데 그걸 어떻게 만들거냐고 하면 답이 없다. 이해관계가 서로 첨예하다보니 모두 말을 아끼고 있는데, 책임있게 구체적으로 대화해야 한다. 이 문제는 임계치에 왔다고 본다. 차등적용이든 주휴수당 문제든 영세자영업자 대책이든 따로 논의하면 아무것도 안된다. 딱 싸우기 좋은 판만 만들어진다. 그러면 기득권 재벌만 좋은 일 시키는 거다. 사회적 대화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협상 테이블에 다 올려놓고 우선순위를 이야기하고 하나하나 합의해야한다.

지난 1월30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최저임금 인상 무력화 규탄, 최저임금제도 개악 저지 민주노총 결의대회'가 열려, 한 참가자가 최저임금 인상을 무력화려는 시도를 풍자하며 분장을 하고 앉아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지난 1월30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최저임금 인상 무력화 규탄, 최저임금제도 개악 저지 민주노총 결의대회'가 열려, 한 참가자가 최저임금 인상을 무력화려는 시도를 풍자하며 분장을 하고 앉아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정부가 약속한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은 지키기 어렵게 됐다.

나지현 2013년에 처음 알바노조가 ‘최저임금 1만원’ 운동을 시작할 때는 사실 저는 ‘너무 비현실적인 것 아니냐’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데 우리 조합원들이 너무 좋아하셨다. ‘그렇지, 일을 했으면 한달에 200만원은 받아야지’ 그러시더라. 실제로 그 구호로 인해서 지금 당장 1만원이 안되더라도 우리 노동자들이 ‘최소한 이 정도는 받아야하지 않나?’라는 기준을 처음 고민하게 됐다. 1만원에 도달하는 시간에 대한 지지 정도만 약간 달랐을 뿐이지 다들 동의했다고 본다.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을 견인해왔고 불과 4년만에 대선 공약으로 선택될 만큼 사회적 합의를 얻었다. 최저임금이 지금 이만큼 오르는데 상당히 역할을 했다고 본다.

김병철 운동적 구호와 교섭 전략은 구분해야 한다. 최저임금 1만원은 일단 운동적 구호다. 워낙 최저임금이 낮았을 때는 1만원이 운동의 구호이자 동시에 교섭장에서 노동계 최초 요구안이 되기도 했다. ‘1만원 대 동결’로 계속 싸웠고 여태까지 그게 통했다. 이제 비교적 1만원에 가까워졌고 조만간 1만원을 달성할거라면, 앞으로는 교섭다운 교섭이 필요하다. 이제 요구안에 대한 기준을 정립하고 근거값을 제시하지 않으면 교섭이 무의미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남신 저도 처음에 최저임금 1만원이라길래 ‘장난치나?’ 그랬다. 원래 교섭에서는 임금처럼 민감한 주제가 없고 직군마다 직종마다 다 생각이 다르다. 뜬금없이 1만원이 나올 수가 없다. 노동조합 해본 활동가들은 임금교섭 그렇게 하면 절대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1만원이면 생활임금 정도는 되겠다 싶었다. 최저임금 1만원은 기존 노동조합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나온 요구였다. 그게 청년들이 모인 ‘알바노조’여서 가능했다고 본다. 최저임금 1만원이 좋은 마중물 역할도 했지만 가장 큰 성과는 최저임금 인상만으로는 해결 안되는 문제가 있다는 게 드러났다는 거다. 임대료, 가맹비, 카드수수료, 원하청 불공정 거래, 이런 게 다 해결되지 않으면 최저임금은 부메랑이 된다는 걸 우리가 배웠다. 사회적 합의 역량이 중요한 때가 된 거다. 그런 점에서 최저임금 1만원 운동은 이제 끝났다고 본다. 중요한 건 1만원이라는 인상 수준이 아니라 임금 인상의 선순환이다. 지금 자칫 잘못하면 실패할 가능성도 크다. 단순히 공약대로 3년 안에 1만원 달성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최저임금 후폭풍으로 인해서 임금 인상 자체가 가지는 부정적 효과만 부각되고 있다. 임금 인상의 프레임이 뒤바뀐 거라 굉장히 우려스럽다. 최저임금 1만원의 성과에 매달려서 또 1만원을 외치는 건 시대착오적이고 도리어 운동의 성과를 지우는 거다. 성공했으면 버려야 한다. 빨리 을들의 연대가 선순환 효과를 만들 수 있도록 사회경제 구조 개혁 운동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금은 그 연결고리를 고민해야할 때라고 생각한다.

진행·정리/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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