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2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서울지방병무청 제1병역판정검사장에서 입영대상자가 검사를 받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새끼, 군대 보내버린다.”
지난 5월 정부 연구기관에서 병역 대체복무를 하던 전문연구요원 ㄱ씨가 연차휴가를 요구했다가 담당 사무관에게서 들은 말이다. ㄱ씨는 사무관의 폭언과 해고 협박으로 수면장애를 겪었지만, 해고되거나 퇴직하면 현역병으로 입대해야 하는 처지라 문제제기도 하지 못했다.
30일 노동사회단체 ‘직장갑질119’는 국군의 날을 맞아 병역 대체복무요원의 갑질 피해사례 15건을 공개하며 정부에 이들에 대한 인권 실태조사를 요구했다. 병무청 설명을 들으면 지난 6월 기준 방위산업체 혹은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산업기능요원은 1만5천명, 연구기관에서 일하는 전문연구요원은 2500명, 해운·수산업체에서 일하는 승선근무예비역은 1천명 규모다.
구체적인 제보 내용을 보면 병역 대체복무요원에게 임금체불·언어폭력은 예삿일이다. 민간기업의 연구기관에서 전문연구요원으로 일하는 ㄴ씨는 일상적으로 야근을 하지만 연장노동수당은 한 번도 받지 못했고 임원진의 지속적인 언어폭력에 고통받고 있다고 밝혔다. ㄴ씨는 “한번도 해보지 않은 업무를 시키면서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면 공개적으로 모욕을 줬다. 입사 이후 가슴 통증과 우울증이 생겼다”고 말했다.
지난 3월에는 승선근무예비역으로 부산의 한 선박회사에서 일하던 구아무개(26)씨가 함께 배에 타고 있던 상급자의 괴롭힘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도 있었다. 제보 내용 중에는 병역법에 정해진 업무 외의 행정업무나 잔업을 강요받거나 기숙사비·업무과실 등을 이유로 임금을 일방적으로 공제 당한 사례도 있었다.
노동관계법 위반이 비일비재한데도 문제제기가 어려운 이유는 이들에게 ‘해고는 곧 입대’이기 때문이다. 병역 대체복무요원은 복무 중인 지정업체에서 해고되거나 퇴직하면 병역 의무가 생겨 현역병으로 입대해야 한다. 근로감독관이 근로기준법 위반 사실을 확인하는 등 일정한 조건이 갖춰지고 병무청의 승인을 받으면 이직도 가능하지만 절차가 까다로운 탓에 쉬운 선택지는 아니다.
전남 나주의 한 기업에서 일하는 산업기능요원 ㄷ씨는 인권침해를 겪다가 이직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그는 임금체불과 직장 내 괴롭힘 등 피해 사실을 고용노동청에 신고했지만 이직 승인은 어렵다는 답을 들었다. ㄷ씨는 “고용노동청이 임금체불만 진정 처리해주고 폭언 문제는 사건 직후에 신고하지 않았다며 고소를 통해 혼자 싸우라고 했다. 군 복무를 대체해야 하고 가족을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참고 버텼는데 너무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직장갑질119는 “병역 대체복무요원은 국가의 필요에 의해 일하고 있는 ‘사복 입은 군인’인데 사용자는 이들을 노비 취급하고 있다. 정부는 병역 대체복무요원이 인권 침해의 피해자가 되기 쉽다는 점을 명심하고 노동관계법·병역법 등 위반을 철저히 단속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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