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미국 뉴욕의 금융 중심지 월스트리트에서 극단적인 빈부격차와 금융자본의 탐욕에 항의해 벌어진 ‘오큐파이(점령하라) 운동’에 참가한 한 시민이 “우리가 99%다”라는 구호를 적은 종이를 들어 보이고 있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기자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정부의 실천 노력을 측정하는 국제 지표가 처음으로 개발되어 전세계 순위를 공개했다. 한국은 56위로 다소 낮은 순위를 기록했지만, 최저임금을 큰 폭으로 올리고 아동수당을 지급한 점을 높이 평가받아 ‘가장 긍정적인 사례’로 꼽혔다.
9일 국제구호기구 옥스팜이 발표한 ‘2018년 불평등 해소 실천(CRI) 지표’ 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157개국 가운데 56위를 기록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6개국 가운데 끝에서 두번째다. 옥스팜이 비영리 연구단체인 국제개발금융(DFI)과 함께 개발한 ‘불평등 해소 실천 지표’는 △건강·교육·사회보장 등에 대한 재정 지출 △법인세율 등 세금 정책 △최저임금·일터에서의 성차별과 같은 노동권 보장 등 3개 부문에서 정부가 빈부 격차를 줄이기 위해 어떤 정책적인 노력을 했는지를 측정해 나온다. 한국은 총점에서는 56위였지만, 세금 정책 분야에서는 81위로 하위권이었다. 재정 지출에서는 60위, 노동권 보장에서는 61위였다. 1위는 덴마크가 차지했고, 독일-핀란드-호주-노르웨이가 그 뒤를 이었다.
정책 실천을 측정하는 지표이기 때문에, 다른 불평등 지표들과는 다소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매튜 마틴 국제개발금융 대표는 “불평등과의 싸움은 빈부 격차를 좁히는 정책을 통과시키고 실천할 정치적 의지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선택에 따라 불평등이 심해질 수도, 나아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 지표는 올해를 시작으로, 해마다 발표될 예정이다.
옥스팜은 이번 보고서에서 한국의 사례에 주목했다. “지난 20년동안 저소득층의 소득이 정체되고 상위 10%의 소득이 해마다 6%씩 증가한” 불평등 국가이지만, CRI 지표를 구성하는 3개 부문 전반에서 “빈부 격차를 줄이기 위해 진정한 실천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옥스팜은 △최저임금 큰 폭 인상 △법인세 최고세율 25%로 인상 △아동수당 추진 등을 예시로 들었다. 인도네시아는 한국과 함께 긍정적인 사례로 언급됐다. 90위의 인도네시아는 지난해 최저임금을 9% 인상했고 건강 분야에서 지출을 크게 늘렸다.
전병유 한신대 교수(경제학)는 “소득주도성장을 내걸고 분배 개선으로 정책 방향을 틀었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노력은 평가받을만하다”면서도 “워낙 불평등이 심각한 상황이기에 노력을 넘어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더 과감하고 집중적인 재정 지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지표는 국제통화기금(IMF), 국제노동기구(ILO), 세계은행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됐으며, 세금 정책과 노동권 보장 부문은 2017년, 재정 지출 부문은 2015∼2016년 기준이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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