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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반도체 노동자 아픔 여전한데 큰상 받으니 만감교차해요”

등록 2018-11-18 19:50수정 2018-11-30 14:13

[짬] 반올림 상임활동가 이종란 노무사

올해 ‘리영희상’에 선정된 노동인권단체 ‘반올림' 활동가들이 지난 15일 오후 서울 사당동 반올림 사무실에서 고 황유미씨를 모델로 한 ‘백혈병 소녀상'을 두고 앉아 있다. 왼쪽부터 전성호, 이상수, 조승규, 이종란 활동가.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올해 ‘리영희상’에 선정된 노동인권단체 ‘반올림' 활동가들이 지난 15일 오후 서울 사당동 반올림 사무실에서 고 황유미씨를 모델로 한 ‘백혈병 소녀상'을 두고 앉아 있다. 왼쪽부터 전성호, 이상수, 조승규, 이종란 활동가.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리영희재단은 최근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노동자의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해 힘써온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대표 황상기)을 ‘제6회 리영희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리영희상 심사위원회는 “보건·노무·법률 등 여러 분야 전문가와 피해자가 힘을 합쳐 결성한 반올림은 반도체 공장에서 발생한 노동자의 직업병 원인을 규명하고 정의를 구하기 위해 끈질기게 투쟁함으로써 리영희 선생의 정신을 실천했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반올림 상임활동가 이종란 노무사는 지난 15일 <한겨레>와 만나 “반도체 노동자의 죽음과 직업병 피해의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리영희상을 수여하려니 만감이 교차한다. 우리 사회가 첨단 전자사회로 접어들고 신종 직업병이 발생하는 가운데 직업병의 아픔이 개인의 몫이 아닌 국가와 기업, 우리 사회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반올림 투쟁이 보여줬다는 것을 평가받은 것 같다”며 수상 소감을 밝혔다.

2007년 삼성전자 황유미씨 백혈병 사망
부친 황창기씨 ‘첫 노무 상담’으로 인연
‘직업병 노동자 산재 인정’ 투쟁 10여년
오는 23일 삼성전자 공식사과·합의식

반올림 29일 ‘올해의 리영희상’ 시상식
“피해자·가족들이 앞장서 설득한 공로”

지난 7월 24일 서울 서대문구 법무법인 지평에서 열린 ‘삼성전자-반올림-조정위원회 3자간 제2차 조정재개 및 중재방식 합의서명식' 기념사진. 왼쪽부터 이종란 노무사, 백도명 조정위원, 황상기 반올림 대표, 김지형 조정위원장, 김선식 삼성전자 전무, 공유정옥 반올림 활동가 등이다. 반올림 제공
지난 7월 24일 서울 서대문구 법무법인 지평에서 열린 ‘삼성전자-반올림-조정위원회 3자간 제2차 조정재개 및 중재방식 합의서명식' 기념사진. 왼쪽부터 이종란 노무사, 백도명 조정위원, 황상기 반올림 대표, 김지형 조정위원장, 김선식 삼성전자 전무, 공유정옥 반올림 활동가 등이다. 반올림 제공
반올림은 2007년 3월 백혈병으로 숨진 삼성전자 기흥공장 노동자 황유미(당시 23살)씨의 산업재해 인정을 요구하면서 2008년 3월 공식 결성됐다. 그로부터 10년여 만인 오는 23일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의 중재안에 따라 반도체 직업병 문제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공익법인을 세워 보상하기로 했다. 황씨가 발병한 2005년 6월부터 따지면 13년만에 매듭된 셈이다. 이 중재안은 반도체 공장과 관련해 논란이 됐던 암과 희귀질환을 대부분인 51종을 포함시켜 보상범위를 넓혔으나 보상액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기준보다 낮췄다. 보상기간은 삼성전자의 첫 반도체 양산라인인 기흥사업장 제1라인이 준공된 1984년 5월17일부터, 앞으로 10년 뒤인 2028년 10월 31일까지다.

애초, 원인 규명이 이뤄지지 않은 직업병 문제를 가지고 삼성과 싸우겠다는 반올림에게 많은 이들은 “그게 되겠냐”고 물었다. 누가 보더라도 ‘바위에 계란 치기’였기 때문이다. 다산인권센터에서 일하던 2007년 7월 민주노총 경기법률원의 요청으로 고 황유미씨의 부친이자 반올림 대표인 황상기씨를 맨처음 상담했던 이 노무사는 “한 반도체 공장에서 2인1조로 일하던 노동자들이 똑같이 백혈병으로 숨졌다는 게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는 강력한 의혹이 들었지만 이걸 과연 밝힐 수 있을지 두려웠다. 앞이 깜깜했지만 두드리는 만큼 반도체 공장 작업환경 개선이라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반올림의 특징은 피해자와 활동가의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점이다. 첨단산업에서 나타난 직업병 문제인만큼 상당히 전문적인 영역이었지만 피해자들은 스스로 앞장서 규명에 나섰다. 이 노무사는 “황상기씨, 한혜경씨, 김시녀씨 등은 피해자거나 피해자 가족이지만 다른 피해자를 설득하고 사회에 호소하기도 하면서 주도적으로 싸움을 이끌어 왔다. 이들은 그 과정에서 반도체 노동자 건강권에 관해서는 전문가 수준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반올림은 업무상 질병에 대한 노동자의 입증 책임을 크게 줄이는 대법원 판례를 끌어내기도 했다. 지난해 8월 대법원은 삼성전자 엘시디(LCD) 공장 노동자에게 발생한 다발성경화증을 산업재해로 판단하면서 “(업무와 질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는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증명될 필요는 없고, 취업 당시 건강상태·작업장의 유해요인 유무·근무 기간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해 합리적 추론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반올림은 지금까지 첨단전자산업 분야에서 일하다가 백혈병·뇌종양·다발성경화증 등에 걸렸다고 제보한 피해자 320명 가운데 96명의 산업재해 신청을 도왔다. 이 가운데 34명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았다.

반올림에게 남은 과제는 여전히 만만치 않다. 삼성은 노동자가 작업장 내에서 유해물질(총 190종)에 노출된 정도를 기재한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를 공개하지 않겠다며 각종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 노무사는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노동자의 건강권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삼성이 가장 못 하는 것이기도 하다”면서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에는 그리 정교하지 않은 기초적인 유해인자 정보가 들어있는데, 삼성은 여전히 이 보고서에 영업비밀이 담겼다며 감추고 있다. 삼성의 조직문화가 폐쇄주의를 벗어날 때까지 반올림의 정보공개 청구소송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상식은 오는 29일 저녁 6시30분 서울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리영희 선생 8주기 추모행사’와 함께 열린다.

이지혜 기자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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