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노동

단결권만 인정인데…소방관 파업땐 누가 불 끄냐니요? [더(The)친절한 기자들]

등록 2018-11-25 18:49수정 2022-08-19 10:59

[더(the) 친절한 기자들]
보수언론, ‘ILO 핵심협약’ 과제 관련
‘경사노위 공익위원안’에 우려 쏟아내

생명과 직결땐 파업권 제한되는데
국제노동기준 왜곡하며 과장 보도

일 특수고용직 단결권 보장하는데
“미·일도 핵심협약 다 비준 안했다”
경영계의 ‘어불성설’ 주장도 대변

지난 20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공익위원안을 발표했습니다. 공익위원안은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최소’의 입법 과제를 담았고 노사가 각각 추천한 공익위원의 만장일치 합의를 끌어냈습니다. 사쪽이 추천한 공익위원도 합의할 만큼 ‘보편적’ 과제를 담았단 뜻이겠지요.

만장일치에 경영계 생각은 달랐습니다. 발표 이튿날 보수언론은 재계의 말을 인용해 핵심협약을 비준하면 한국은 “노조 천국”이 되고, 기업에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 된다고 했습니다. 이후 입법 논의를 이끌 김학용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자유한국당)도 “공익위원 안대로라면 법 위에 군림하는 노조 세상이 된다”며 난색을 표했습니다. 과연 공익위원 안은 정말 ‘천지개벽’할 미래를 불러올까요? ‘더친기’가 차근차근 짚어봤습니다.

우선 과장된 보도가 많았습니다. “소방관 파업 중 불나면 누가 끄느냐”는 반발이 대표적인데요. 이는 국제노동기준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슬쩍 왜곡하는 주장입니다. 국제노동기구는 생명·신체의 안전에 직접 결부된 업무의 경우 국가가 쟁의 행위를 제한할 수 있도록 허용합니다. 현행 노동조합법도 ‘필수유지업무 제도’를 둬서 철도·수도·전기사업 등에선 파업 중에도 일정 인원이 일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때 사용자는 대체인력도 쓸 수 있습니다. 더구나 공익위원 안은 소방공무원 등의 노조 만들 권리인 단결권을 인정하는 것이지, 파업권까지 인정하는 내용도 아닙니다.

“해고자와 실직자가 산별노조 조합원 자격을 얻게 되면 외부인이 경영에 간섭할 수 있다”는 경영계 우려도 과장이 큽니다. 이미 한국은 대법원 판례를 통해 해고자의 산별노조 조합원 자격을 인정하고 노동조합 간부로 활동할 권리도 보장하고 있습니다. 공익위원 안은 핵심협약에 맞게 노동조합법 문구를 정비하는 취지로 큰 변화를 불러오기 어렵습니다. 매번 노사관계에 변화가 있을 때마다 일어나지 않을 일까지 걱정하는 경영계에 걱정을 덜어주는 ‘걱정 인형’이라도 사다줘야 할까요?

“미국과 일본도 핵심협약을 다 비준하지 않았다”는 걱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핵심협약을 달랑 2개만 비준한 미국은 패권국가에 걸맞지 않게 여러모로 국제기준을 무시하는 행태를 보여왔습니다. 지난 6월 유엔 인권이사회를 탈퇴해 ‘불량’ 국가 면모를 뽐내기도 했지요. 일본도 그들의 방패가 되긴 힘듭니다. 일본이 비준한 핵심협약은 총 4개로 한국과 같습니다. 문제는 내용이죠. 지금 쟁점인 ‘결사의 자유’ 핵심협약(87·98호)을 일본은 모두 비준했습니다. 이에 따라 일본은 특수고용노동자의 단결권과 교섭권도 보장합니다. 결사의 자유로 따지면 한국보다 훨씬 앞선 셈이지요. 공익위원 안이 오히려 부족하다는 전문가도 있습니다. 윤애림 서울대학교 고용복지법센터 연구위원은 “공익위원 안에는 그동안 국제노동기구가 한국 정부에 권고한 내용이 다 담기지 않았다”며 “특수고용노동자 단결권 문제는 공익위원 안에서 최소 입법 과제에 들어가지도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역시나 경영계는 핵심협약 비준을 지렛대 삼아 ‘기울어진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부당노동행위 폐지 △사업장 점거 금지 등이 뼈대입니다. 경영계는 이것이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주장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윤 연구위원은 “나라마다 노동권 보장 제도가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노동3권 보호’라는 결론은 같은데, 경영계는 아전인수 격 주장을 하고 있다”며 “실제 노동권 수준을 보면 한국은 오이시디(OECD) 국가 중 꼴찌”라고 말했습니다.

“노동권은 거래 대상이 아니다”라는 노동계의 줄기찬 요구에도 불구하고 경제사회노동위는 내년 1월까지 경영계의 요구를 중심으로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지난 20일 이승욱 이화여대 교수(공익위원)는 “국제노동기구는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등이 노동자의 파업권을 제약하는 방식으로 도입된다면 핵심협약에 위반된다고 수차례 밝혔다”며 “경영계가 현명한 요구안을 내주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핵심협약 비준으로 ‘포용 사회’에 가까이 가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재계의 불만을 통과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목됩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폭염·폭우 지나도 ‘진짜 가을’은 없다…25일부터 고온다습 1.

폭염·폭우 지나도 ‘진짜 가을’은 없다…25일부터 고온다습

미국·체코 이중 청구서…원전 수출 잭팟은 없다 2.

미국·체코 이중 청구서…원전 수출 잭팟은 없다

중학생 때 조건 만남을 강요 당했다…‘이젠 성매매 여성 처벌조항 삭제를’ 3.

중학생 때 조건 만남을 강요 당했다…‘이젠 성매매 여성 처벌조항 삭제를’

‘응급실 뺑뺑이’ 현수막 올린 이진숙 “가짜뉴스에 속지 않게 하소서” 4.

‘응급실 뺑뺑이’ 현수막 올린 이진숙 “가짜뉴스에 속지 않게 하소서”

“36년 급식 봉사했는데 고발·가압류…서울시 무책임에 분노” 5.

“36년 급식 봉사했는데 고발·가압류…서울시 무책임에 분노”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