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생존권 사수투쟁 결의대회가 열린 지난해 10월 서울 여의도공원 옆 도로에 참가자들이 타고 온 택배차량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씨제이(CJ) 대한통운 택배기사들이 ‘노조 할 권리’를 위해 파업에 나섰다가 일감을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지난달 28일 택배노조가 파업을 끝냈지만, 아직 씨제이 대한통운이 파업 지역에 택배 접수를 받지 않고 있다. 택배노조는 “택배 접수 중단이 길어지면 거래처들은 다른 택배사를 알아볼 텐데, 배송할 물품이 없어지면 택배기사는 사실상 해고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특수고용노동자인 택배기사는 근로기준법상 보호대상도 아니기 때문에 사실상 보호장치도 없다.
설립부터 최근 파업까지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의 길은 한국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 수준을 보여준다. 노동자처럼 일하지만 법적으로 개인사업자 신분인 특수고용노동자들은 노조를 설립하기도 힘들다. 어렵게 설립한 뒤에도 사실상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행사할 수 없다. 노동법 전문가들은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은 법 개정이 필요한 문제”라면서도 “정부가 부당노동행위를 강하게 단속·처벌해서 지금 있는 특수고용노동자 노조만이라도 활동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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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번이나 반려당한 택배기사 단결권 택배기사를 비롯해 대리운전 기사, 보험설계사, 골프장 경기보조원(캐디) 등 특수고용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노동권 사각지대에 놓여왔다. 그동안 법원은 근로기준법의 노동자와 노동조합법의 노동자 정의가 다르다면서 특수고용노동자도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는 입장을 보여왔지만 실제로 이 판례의 적용을 받아 노조 할 권리를 인정받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 1999년 고용노동부가 위탁계약 학습지교사 노동조합에 설립필증을 부여하면서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3권 문제가 떠오른 뒤 18년째 상황은 답보 상태다.
택배연대노조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이 지난해 8월 설립신고서를 제출하자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은 무려 5차례나 보완을 요구했다. 법적으로 ‘신고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노동조합 설립절차는 택배연대노조 앞에서 사실상 ‘허가제’나 다름없었다. 이는 국제노동기구(ILO)가 한국 정부에 수차례 시정을 권고한 사안이다.
문제는 고용노동청뿐만이 아니었다. 노동조합 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회사가 불이익을 주더라도 택배기사들은 대항할 길이 없었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김진일 택배연대노조 정책국장은 “회사나 위탁대리점 사장들은 노동조합 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택배기사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아예 위탁대리점을 폐점하는 일도 있었다. 이런 행태를 부당노동행위로 고발해 법적으로 다투는 중에도 일자리를 잃는 택배기사가 생길 정도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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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쟁취한 단체교섭권…회사는 외면 택배연대노조는 5차례 설립신고서 보완 요구를 받았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농성을 벌이는 등 수차례 문을 두드린 끝에 지난해 11월 설립필증을 받았다. 당시 고용노동부 보도자료다. “택배기사는 △지정된 구역에서 회사가 정한 절차와 요금에 따라 지정된 화물을 배송하는 점 △회사가 작성한 매뉴얼에 따라 일하고 근무시간이 사실상 정해져 있는 점 △특정 사용자에 전속되어 일하고 사용자 허가 없이 유사 배송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노동조합법상 노동자에 해당한다.”
설립필증을 받고 합법노조가 됐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택배연대노조는 지난 1월 장시간 노동 문제를 해결하자며 국내 1위 택배업체인 씨제이 대한통운에 교섭을 요구했지만 회사는 이를 무시했다. 씨제이 대한통운은 ‘교섭요구 사실 공고’ 등 노동조합법에 정해진 사용자의 의무 가운데 그 어떤 것도 행하지 않았다. 택배연대노조의 제소로 중앙노동위원회는 “씨제이 대한통운은 노동조합의 교섭요구에 응하라”고 결정했지만 이 역시 따르지 않았다.
씨제이 대한통운은 법원으로 갔다. 택배연대노조에 설립필증을 내준 고용노동부의 판단을 문제 삼아 행정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택배연대노조는 회사의 소송전이 ‘시간 끌기 전략’일 뿐이라는 태도다. 김진일 국장은 “그동안의 판례를 살펴보면 행정소송의 결과는 노동위원회 결정과 비슷하게 나올 가능성이 크다”며 “회사는 소송으로 교섭을 지연시키면서 ‘집하 금지 조처’ 등으로 택배기사의 생존권을 위협해 노동조합을 와해하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교섭 해태가 지속되자 택배연대노조는 씨제이 대한통운을 ‘부당노동행위’로 고소했다. 고용노동부는 조사를 거쳐 지난 10월2일 씨제이 대한통운을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검찰에 기소의견 송치했다. 씨제이 대한통운은 “택배연대노조가 특수고용노동자로서는 노동조합 설립필증을 받은 이례적인 경우여서 법적 판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봤다. 부당노동행위를 하려고 의도적으로 교섭을 회피한 것이 아니라 행정소송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교섭을 진행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회사는 본사와 직접계약을 맺은 택배기사가 전체 1만8천명 가운데 100여명, 교섭을 요구하는 택배기사는 그중 30여명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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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없는 파업…‘종이호랑이’ 단체행동권 지난달 21일 택배연대노조는 파업에 돌입했다. 근로기준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특수고용노동자의 처지로는 배수진이나 다름없었지만 씨제이 대한통운에는 위협이 되지 못했다.
씨제이 대한통운은 곧바로 파업지역에서 택배 물품을 받지 못하도록 ‘택배접수 중단’ 조처를 내렸다. 교섭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선 택배기사들의 일감을 아예 끊어버리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일주일 뒤 택배기사들은 시민 불편을 우려해 파업을 종료했지만 씨제이 대한통운은 택배접수 중단을 철회하지 않았다. 택배연대노조는 “쟁의행위를 무력화하려는 사실상의 공격적인 직장폐쇄”라며 반발했다. 노동조합법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방어적으로 하는 직장폐쇄만 허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 씨제이 대한통운은 “대리점에서 요청하면 집하 금지 조처를 풀어줄 수 있다. 다만, 파업에 참여했던 택배기사들이 파업 기간에 쌓인 물품은 배송하지 않겠다고 주장하고 있어서 지금은 도리가 없다”는 태도다.
이렇게 씨제이 대한통운이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는 데에는 그동안 부당노동행위에 솜방망이 처분을 해봤던 고용부와 검찰의 관행이 있다. 지난해 2월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검찰은 2013∼2016년 노동조합법 위반 사건을 1857건 처리했는데, 이 가운데 기소한 것은 307건(16.5%)에 그쳤다. 같은 기간 검찰의 평균 기소율(41.7%)의 절반도 되지 않는 수치다.
노동법 전문가들은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단속과 처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성태 한양대 교수(로스쿨)는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은 노동조합법상 노동자 개념을 넓히는 방식으로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지만, 법 개정 전이라도 택배기사 등 이미 단결권을 확보한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해서는 실질적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정부는 부당노동행위를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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