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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경총의 희망은 ‘노동뒷전 사회’?

등록 2018-12-09 16:43수정 2018-12-09 19:19

경총, 국회 제출한 의견서 공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1년, 최저임금 업종·연령·지역별 차등화 등 요구
‘근로자대표 서면합의’를 ‘근로자대표 협의’로 요건 완화도 요구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출범식 및 본위원회 1차 회의에서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에게 위촉장을 수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출범식 및 본위원회 1차 회의에서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에게 위촉장을 수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9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기업의 국제경쟁력 제고와 투자 활성화” 등 내용을 담은 의견서를 지난 7일 국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 의견서에는 전방위적 노동시간 유연화, 최저임금 업종·연령·지역별 구분 적용 등의 주장이 담겼는데, 문재인 정부의 ‘노동 존중 사회’에 반하는 ‘노동 뒷전 사회’를 만들자는 주장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전방위적 노동시간 유연화 요구 경총 의견서를 살펴보면, 경영계는 지난 2월 노동시간 단축 입법에 보완이 필요하다며 노동시간 유연화를 요구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선택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1년으로 확대하고 ‘근로자대표 서면합의’를 받아야하는 현재 도입 요건을 ‘근로자대표 협의’로 완화하는 방향이다.

단위기간 확대를 넘어 도입요건 완화까지 이루어지면 사실상 노동시간 단축 입법이 형해화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달 20일 민주노총은 이슈페이퍼를 통해 “근로자대표를 회사가 임의로 결정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탄력근로제 도입 요건까지 완화되면 노조가 없는 90% 이상의 노동자는 무방비로 장시간 노동에 노출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아울러 경총은 재난 상황에서 불가피한 장시간 노동을 허용하는 인가연장근로제도를 정유업체의 대정비작업이나 조선업의 시운전 등 ‘재난 이외의’ 상황에서도 쓸 수 있도록 해달라고 주장했다. 이는 충분히 사전 계획이 가능한 업무로 인가연장근로제도의 애초 취지에 어긋나는 주장이다.

전문직에 대해 ‘합법적’ 포괄임금제를 허용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던 재량 근로시간제에 대해서도 경총은 큰 폭 확대를 요구했다. 재량근로제 대상업무를 노사가 자율적으로 정하고 회사의 지시·명령을 가능토록 해달라고는 주장이다. 재량근로제는 연구개발 등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일부 업무에 한해 노사 합의로 정한 시간을 일한 것으로 간주하고 노동자가 알아서 업무 수행방법과 시간을 결정하는 제도다. 이는 과도한 업무가 주어질 경우 포괄임금제처럼 기능할 수 있어 노동계의 강한 비판을 받아왔다. 포괄임금제란 연장근로·야근수당 등을 따로 계산하지 않고 정해진 금액을 미리 임금에 포함하여 지급하는 제도로, 과도한 야근과 연장근무를 불러오는 주된 원인이 된다.

이주호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장시간-저임금에 기반한 경영 전략은 국제적 경쟁력을 잃은지 오래다. 한국 경영계가 시대의 변화를 따라오지 못하고 구시대적 주장만을 반복하고 있어 유감스럽다. 게다가 ‘근로자대표 서면합의’ 등의 요건을 완화해 노사협의를 피하려는 시도는 사용자 단체로서 경총의 자격마저 의심스럽게 한다”고 비판했다.

주 최대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된지 5개월이 지났지만 경영계는 여전히 “노동시간 단축은 노사 모두에게 큰 부담”이라는 태도다. 경총은 “지금까지 노동시간 단축은 법정노동시간을 줄이는 방식으로 지난 70년 동안 최대 실노동시간은 60시간대로 급격한 변화가 없었다”면서 노동시간 단축 속도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실장은 “주 52시간 상한제는 이명박 정부 때부터 나왔고 결코 갑작스러운 정책이 아니다”라며 “이미 국회가 법 개정 때 휴일근로수당 중복할증을 못하게 하면서 나름 균형을 잡았는데 경영계가 너무 많은 것을 얻으려한다”고 비판했다.

‘죽지도 않고 또 온’ 최저임금 차등적용 경총은 이미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전문가 논의를 통해 불필요하다고 결론 지은 최저임금 차등적용도 다시금 꺼냈다. 경총은 “업종마다 지불능력이 달라 최저임금 미만율의 편차가 극심하기 때문에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구분 적용 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또한 급속한 고령화와 지역별 생계비 차이를 감안해 연령별.지역별 구분 적용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는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이미 검토된 내용이다. 지난해 12월 최저임금위원회가 산하 최저임금제도개선 전문가 티에프(TF)는 “지금 시점에서 업종별 구분 적용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다수의견을 냈다. “최저임금 취지상 업종별 구분 적용의 타당성을 찾기 어렵고, 업종별 구분을 위한 합리적인 기준이나 통계도 없다”는 이유였다.

지역·연령별 구분적용에 대해서도 전문가 티에프의 결론은 같았다. 전문가 티에프는 지역별 구분 적용에 대해 “한국은 1일 생활권인데다 지역별 낙인효과가 우려된다. 지역별 노동력 수급의 왜곡과 국민통합·지역균형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면서 바람직하지 않다는데 공감대를 이루었다. 연령별 구분적용도 “25세 이하 청년의 생산성이 다른 연령에 비해 떨어지지 않고, 고령자라는 이유로 최저임금을 감액하는 경우는 다른 선진국에서 찾아보기 어렵다”면서 불필요하다는 다수의견을 냈다. 당시 전문가 티에프는 노·사·공익위원이 동수로 추천한 18명의 전문가로 구성됐다.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으로 참여했던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최저임금 차등적용 주장은 객관적 검증이 불가능하다고 정리가 된 사안인데 경영계가 식상할 정도로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경영계의 산업구조개혁 책임이 쟁점화되자 이를 기피하기 위해 정략적인 의도로 주장을 반복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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