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위험 작업 2인1조 요구
회사는 “단순 업무” 수용 안해
‘합격’ 나온 안전검사, 부실 논란도
12일 오후 충남 태안군 태안읍 태안보건의료원 상례원 2층 3호실에서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켄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진 고 김용균(24)씨의 빈소. 태안/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지난 11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끼여 숨진 김용균(24)씨의 목숨을 앗아간 기계가 유해·위험기계로 지정돼 있었지만, 충분한 안전조치를 강제할 근거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사고 현장에는 목숨을 구할 장치도 있었지만, 이 기계를 작동해줄 단 한 사람이 없었다. 컨베이어벨트는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제28조 6에 따라 의무적으로 안전검사를 받아야 하는 유해·위험기계로 지정돼 있다.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 한국발전기술 소속 컨베이어 운전원 김씨는 이날 새벽 ‘홀로’ 일하다가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끼여 숨졌다.
김씨의 파트장인 한아무개씨는 “사고 기계에 비상시 기계를 멈출 수 있는 ‘풀코드’라는 장치가 있었지만, 홀로 근무할 때는 무용지물”이라며 “기계에 빨려 들어가는 사람이 스스로 풀코드를 당길 수는 없지 않으냐”고 따져 물었다. 그는 “풀코드를 작동시킬 한 사람만 있었어도 목숨을 살렸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풀코드는 레버를 당겨 긴급하게 컨베이어벨트를 정지시키는 장치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192조는 컨베이어 기계에 풀코드와 같은 비상정지장치 설치를 의무화해 위반 시 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유해·위험기계였지만, 유해·위험을 방지할 안전조치는 허술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상 유해·위험기계는 안전검사를 받지 않으면 1천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되거나 사용중지 명령도 내려질 수 있다. 사람이 숨질 만큼 위험했지만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는 지난해 10월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에 정해진 의무안전검사에서 ‘합격’을 받았다. 고용청 등의 형식적인 검사가 아까운 목숨을 앗아갔다는 비판이 거셀 수밖에 없다. 보령고용노동지청 관계자는 “정기검사에서는 갖춰야 할 조건만 충족하면 합격이 나온다”며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컨베이어 설비 안에 노동자가 아예 들어갈 수 없도록 조처하는 것도 사업주 책임”이라고 말했다.
서로의 안전을 지켜줄 ‘2인1조 근무’도 강제 조항이 아니다. 노동조합은 줄곧 ‘2인1조 근무’를 요구해왔지만 회사는 단순 업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위험 업무’로 취급되지 않는 김씨의 업무는 용역 입찰 조건에도 ‘2인1조 근무’는 없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특정 유해·위험 작업에 한해 관리감독자가 작업에 동행하도록 정하는데 김씨가 한 업무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위험의 신호는 꾸준히 있었다. 파트장 한씨는 “고장이 잦아 일상다반사로 기계에 치여 손목을 삐거나 멍이 드는 경상을 안고 산다”고 말했다. 현장 노동자들은 컨베이어벨트 작동 상태를 살피고 정비 부서에 이상 여부를 알리는 작업이 상당히 위험하다고 주장해왔다. 컨베이어 운전원들은 평소 기계에서 떨어진 석탄을 치우는 ‘낙탄 제거’ 업무까지 떠안았다. 지난 1월 김씨가 속한 연료운영팀의 ‘팀장 운전지시서’를 보면 “고착탄을 제거하지 않은 상태에서 운전하면 고착탄 과다 누적으로 과부하 발생. 고착탄 등은 수시 확인 후 즉시 제거한다”고 적혀 있다. 동료들은 낙탄 작업을 하다가 벨트에 빨려 들어간 것이 아니냐고 의심한다.
무방비 상태의 발전소에서 비극은 반복되고 있다. 이태성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간사는 “2014년에 동료가 보령화력발전소에서 김씨와 똑같은 방식으로 숨졌는데 그때도 사람이 끼여 기계가 고장 나니 그제야 발견됐다”고 말했다. 2017년 11월에도 태안발전소에서 하청노동자가 보일러 교체작업 중에 협착으로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고용노동부는 태안발전소의 잇따른 사고를 지적하며 뒤늦게 특별감독에 나서기로 했다. 김종훈 민중당 의원이 공개한 발전소 민간정비업체 현황을 보면, 5개 발전 공기업이 한국발전기술 등 8개 민간정비업체를 통해 사용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는 2017년 말 기준 8073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30%가량인 2523명이 김씨와 같은 운전·계측 업무를 한다. 민간정비업체는 발전사와 1~3년 단위로 정비 계약을 맺어, 현장 노동자들은 발전소가 위탁업체를 바꿀 때마다 새 업체와 근로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최근 5년간 발전소 안전사고는 346건으로 이 중 97%인 337건이 비정규직에게 벌어졌다.
글 이지혜 최하얀 기자 godot@hani.co.kr, 사진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