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오바마 정부의 노동정책 설계자인 경제학자 데이비드 와일 미국 브랜다이스대 교수가 지난 11일 서울시청에서 <한겨레>와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파견·하청·용역·위탁·도급…. 한 회사에서 일하지만 소속은 제각각이다. “진짜 사장이 누구냐”는 질문에 다들 고개만 갸웃. 최근 흔한 일터 풍경이다. 미국 오바마 정부의 노동정책 설계자인 경제학자 데이비드 와일 미국 브랜다이스대 교수는 이를 ‘균열 일터’라 부른다. 기업들이 비용을 줄인다며 비핵심 업무를 모두 하청에 떠넘겨 일터가 조각나고, 이 과정에서 일하는 이들의 처우가 열악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한겨레>는 지난 11일 서울시가 연 ‘좋은 일자리 도시 국제포럼’에 참석하려 한국을 찾은 와일 교수를 서울시청에서 따로 만났다.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하청 노동자 김용균(24)씨는 이날 와일 교수가 말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조각난 일터의 컨베이어에서 숨을 거뒀다.
“최근 많은 회사들이 하청 노동자에게 아주 구체적인 업무 기준을 제시해 사실상 노동자로서의 책임을 부과하고 있지만 역시 하청이란 이유로 고용주로서의 책임은 외면합니다. 노동자에게 보장해야 하는 안전한 근무환경, 최저임금, 휴식권, 노조 할 권리 등 다 신경쓰기 싫다는 거죠.”
와일 교수는 2014년부터 오바마 정부의 임기 말까지 노동부 근로기준분과의 첫 종신 행정관으로 일한 고용노동정책 전문가다. 최근 <균열 일터: 당신을 위한 회사는 없다>를 발간했다. 그가 말하는 ‘균열 일터’의 가장 큰 문제는 노동자의 안전과 기본권이 위협받는다는 점이다. “사업장 내 안전의 책임 소재를 따지기 어려워지면 결국 노동자 안전을 위한 보호 수준은 약해질 수밖에 없어요. 너무 낮은 계약금을 받은 하청이 최저임금을 지키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죠.” 그가 <균열 일터>에서 지적했듯, 실제 숙박 및 음식점, 청소용역 서비스, 제조업 등 최저임금 같은 노동기준의 ‘최저한’을 자주 위반하는 업종은 간접고용이 만연해 있다.
특히 노동기준을 위협하는 핵심엔 지나친 경쟁이 있다. “일터의 균열과 불평등은 가격결정구조에서 비롯됩니다. 하청업체끼리 경쟁을 하며 단가를 낮춰야 하는 시장에선 자연스럽게 노동기준을 지킬 수 없는 조건이 만들어져요. 비단 임금뿐 아니라 안전 등 모든 부분에서 상황이 악화돼요. 이런 경향이 마치 물에 큰 바위를 떨어트린 것처럼 민간과 공공부문을 가리지 않고 모든 곳으로 퍼져가고 있습니다.”
와일 교수는 인터뷰에서 “기업이 일만 시키고 책임을 지지 않는 ‘두 마리 토끼’를 잡도록 둬선 안 된다”고 단호히 말했다.
“임금·복지·안전 등 노동기준은 ‘노동자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우리 사회의 기대치이기도 합니다. 이걸 지켜내기 위해 정부의 근로감독 등 공공정책이 중요합니다.” 최근 미국에서 주나 도시별로 노동기준을 재정립하는 노력이 이뤄지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누가 이를 책임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는 게 와일 교수의 전언이다.
균열 일터를 제대로 보려면 기업이 아닌 노동의 관점에 서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노동자가 누구와 근로계약을 맺느냐가 아니라, 누구에게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는지를 봐야 합니다. 고용의 책임은 거기에 있어야 합니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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