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서울 금천구 신영프레시젼 본사 앞에서 금속노조 신영프레시젼분회 노동자들이 회사의 청산 계획에 반발해 ‘신영프레시젼 먹튀청산 분쇄 규탄대회’를 열었다. 금속노조 신영프레시젼분회 제공
“지난 10여년 쉬는 날도 없이 일 시킬 때는 ‘회사가 있어야 여러분이 있는 거 아니냐’더니 설 명절을 앞두고 해고통지를 했어요. 나이 오십 넘은 여성이 일을 새로 구하는 건 상상 이상으로 어렵대요. 눈앞이 캄캄해요.”
엘지(LG)전자에 휴대전화 케이스와 반조립품을 납품하는 하청업체 신영프레시젼에서 일하는 생산직 노동자 김아무개(51)씨는 몇년 전 이혼하고 아들 셋과 함께 산다. 김씨의 연소득 2200만원이 가계수입의 전부인데 그마저도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지난달 31일 신영프레시젼은 김씨를 비롯한 여성 생산직 노동자 45명에게 “주주총회 결의로 해산을 결정하고 청산 등기를 완료”했다며 해고를 통지했다. 이미 회사는 2017년 9월부터 3차례 희망퇴직을 진행했고 권고사직·정리해고 등을 통해 고용을 줄여왔다.
2012년 이후 신영프레시젼처럼 휴대전화 제조업(이동전화기 제조업)에서 대량 해고가 나타나고 있지만, 충분한 정부 지원 없이 구조조정 직격탄을 맞고 있다. 통계청 광업제조업조사·전국사업체조사·경제총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해보면, 2011년 63조7583억원이던 휴대전화 제조업의 매출액(출하액)은 2014년 56조7296억원, 2016년 40조2220억원으로 떨어지더니 2017년에는 34조8849억원으로 반토막(45.3% 감소) 났다. 같은 기간 종사자 수는 27.5%(1만3천여명) 줄었다.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조선업의 매출액 감소폭과 맞먹는 수준이다.
2016년 6월에는 엘지전자 휴대전화를 조립하던 하청업체 갑을프라스틱이 부도를 내며 부천지역 영세업체 180여곳이 줄도산하는 일도 있었다. 이때 갑을프라스틱에서만 직원 150여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한국도 일본, 유럽 등처럼 전자부품 업체들이 인건비가 싼 외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휴대전화 생산량 추이를 봐도 흐름은 명확하다. 지난해 엘지전자와 삼성전자의 국내 휴대전화 생산량은 2500만대 수준으로 추산된다. 2008년 1억3600만대와 비교하면 불과 10년 만에 5분의 1로 줄었다. 연간 휴대전화 생산량이 3억대가 넘는 삼성전자가 2000년대 중국·베트남 등으로 국외 이전을 급속히 추진해 큰 영향을 끼쳤다. 게다가 전세계 휴대전화 생산량이 줄어든 영향도 있다. 지난해 4월 공시된 ‘엘지전자 사업보고서’를 보면 엘지전자 휴대전화 생산량은 2014년 8217만대에서 2017년 5728만대까지 줄었다.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는 엘지전자가 전체 휴대전화 생산량의 15% 정도인 1천만대를 국내 생산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휴대전화 제조업 구조조정의 칼바람은 주로 여성 노동자에게 향했다. 2011~2017년에 휴대전화 제조업에서 줄어든 남성 노동자는 2950명이었는데 같은 기간 여성 노동자는 9786명 감소했다. 감소율로 봐도 남성은 11.6%지만 여성은 46.9%로 거의 절반이 줄었다. 김종진 부소장은 “휴대전화 제조업 안에서도 저임금 여성 노동자는 채용과 해고가 남성에 견줘 쉬워 1순위 구조조정 대상이 되기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남성 숙련 노동자가 중심인 조선·자동차 쪽과 달리 휴대전화 제조업은 노동집약적 특성상 여성 저숙련 노동자가 많아 해고 뒤 재취업도 어렵다.
휴대전화 제조업 구조조정이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는 ‘통계 착시’ 탓이 크다. 호황이 이어지는 반도체 부문과 함께 전자산업으로 묶여, 휴대전화 제조업을 비롯한 비반도체 전자산업의 불황이 가려지는 것이다. 마성균 고용노동부 지역산업고용정책과장은 “조선업보다 구조조정 강도가 강해도 통계 분류상 휴대전화 제조업만 고용상황을 파악하기 쉽지 않아 이슈가 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휴대전화 제조업에 대한 정부 대책을 촉구했다. 노동단체 ‘노동자의 미래’의 박준도 활동가는 “전자산업은 노조에 가입되지 않은 미조직 여성노동자 비율이 높아 저항의 목소리도 응집되기 어렵다”며 “산업 변화의 흐름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실업으로 내몰리는 노동자들을 위한 정부 고용지원 정책이 절실히 필요한 때”라고 지적했다.
이지혜 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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