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식 최저임금위원장(왼쪽)이 14일 새벽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서 열린 제9차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 결과 브리핑을 마친 뒤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이날 전원회의에 민주노총 쪽 근로자위원은 불참했고, 한국노총 쪽 근로자위원은 공익위원들이 낸 ‘1.5% 인상안’에 반발해 집단퇴장했다. 이후 표결에서 이 안은 찬성 9표, 반대 7표로 채택돼 내년도 최저임금은 시급 기준 8720원으로 결정됐다. 세종/연합뉴스
최저임금 인상은 양날의 검과 같다.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활 수준을 개선할 수도 있지만, 노동시장에 압력을 가해 일자리를 되레 줄일 수도 있다. 14일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시급 8720원(월급 182만2480원)으로 결정한 것은, 어느 쪽 날을 더 벼리느냐를 두고 노사 그리고 공익위원들이 아홉 차례에 걸쳐 줄다리기를 한 결과다. 1988년 최저임금법이 도입된 이래 33년 만에 가장 낮은 인상률 1.5%. 표결 불참과 근로자위원 사퇴로 항의한 노동계는 “누구를 위한 최저임금위냐”며 반발하고 있다.
최저임금위는 근로자위원, 사용자위원, 공익위원 각 9명으로 구성된다. 근로자위원 가운데 민주노총 쪽 4명은 지난 6차 전원회의부터 불참했다. 한국노총 쪽 5명은 전날(8차 회의)부터 이날 새벽(9차 회의)까지 이어진 마라톤회의에 참석했으나, 공익위원들이 1.5% 인상안으로 표결을 시도하자 이를 거부하고 회의장에서 철수했다. 이들은 공익위원안이 “참담하다”며 근로자위원직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최저임금 삭감 또는 동결을 주장해온 소상공인연합회 쪽 사용자위원 2명도 공익위원안이 ‘인상’이라는 이유로 퇴장했다. 공익위원과 나머지 사용자위원 7명이 참여한 표결 결과 1.5% 인상안은 9 대 7로 가결됐다.
1.5%는 정부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인 0.1%, 소비자물가상승률 0.4%, 최저임금위가 정한 근로자 생계비 개선분 1%를 모두 더한 것이다. 공익위원 간사인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경영학)는 표결 뒤 “경제위기와 불확실성을 최저임금 결정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고려했다”며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계에서 일자리가 가장 중요한 기반인데, 최저임금이 크게 올랐을 때 노동시장 일자리 감축 효과 등 노동자에게 미치는 생계 영향이 부정적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로 경제가 어려운 만큼 최저임금을 많이 올릴 수 없다는 얘기다. 집권 4년 동안을 합산하면 전체 인상률은 7.7%로, 이는 박근혜 정부 때(7.6%)와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국가부도 사태로 경제가 -5.1% 역성장했던 외환위기 때 최저임금 인상률(1999년 2.7%)보다도 낮은 수준의 인상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노동계는 반박한다. 더구나 광범위한 구조조정으로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영향을 받았던 외환위기 때와 달리 이번엔 임시·일용직과 일부 특수고용직 등 소득이 최저임금 수준인 취약계층에 충격이 집중되고 있는데, 이 정도 인상으로는 이들의 생계를 제대로 보장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위는 내년도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근로자는 93만~408만명, 영향률은 5.7~19.8%로 추정한다.
최저임금을 계산할 때 포함하는 정기상여금과 현금성 복리후생비의 비중이 계속 늘어나는 점을 고려하면, 저임금 노동자들이 실제로 손에 쥐는 임금은 “‘사실상 동결’이 아니라 ‘그냥 동결’”(이창근 민주노총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가령 가장 흔한 복리후생비인 식대를 매달 10만원씩 받는다고 하면, 최저임금을 계산할 때 올해는 1만235원 포함되지만(올해 월 최저임금 179만5310원의 5% 산입), 내년엔 4만5326원이 포함(내년 월 최저임금 182만2480원의 7% 산입)된다. 차액인 3만5091원만큼은 임금을 올리지 않아도 최저임금 수준을 맞출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다만, 취업규칙의 불이익한 변경 금지 규정 등에 따라, 이를 활용해 임금을 깎을 순 없다. 김요한 노동해방노동법률사무소 노무사는 “최저임금 결정에 산입범위 확대는 반드시 고려돼야 하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압력이 거세지니 최저임금위가 아예 고려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양대 노총은 최저임금위가 설정한 생계비 개선분(1%)은 비혼 단신 기준으로도 40만원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최저임금위 개혁을 촉구했다. 민주노총은 최저임금연대와 공동성명을 내어 “저임금 노동자의 삶을 이해하지도, 배려하지도 않은 채 공익위원들이 사용자위원에 편향적인 자세로 최저임금을 결정한 것이 개탄스럽다”며 “최저임금 제도가 저임금 노동자 보호와 소득 증진이라는 취지와 목적에 맞게 정립될 수 있는 제도개선 등을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1.5% 인상은 역대 최악의 수치다. 공익위원들의 거취 판단은 그들의 마지막 양심에 맡긴다”며 이들의 사퇴를 압박하면서 “최저임금위의 구성과 운영, 존재 여부까지 원점부터 고민하겠다”고 했다. 다만 노동계는 취약 노동자들의 생계 문제 해결 등을 위해 정부와 대화의 끈은 이어가겠다는 태도다. 민주노총은 오는 23일 온라인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화 합의문의 승인을 추진한다. 한국노총 쪽은 “취약 노동자들을 위해 경사노위 등에 참여해왔기 때문에 최저임금 문제와 별개로 다른 대화들은 이어나간다는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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