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 위원장이 23일 노사정 합의안 온라인 찬반 투표가 부결된 뒤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23일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코로나19 노사정 잠정합의안’ 승인이 부결됨에 따라, 민주노총은 앞으로 정부·사용자와 ‘대화’ 아닌 ‘투쟁’으로 코로나19로 위기에 빠진 노동자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라는 새로운 숙제에 맞닥뜨리게 됐다. 연말로 예정된 새 지도부 선거에서 강경파가 우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크지만, 우선은 내홍을 추스르는 일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민주노총은 지난 4월 정부와 경영계에 코로나19 고용 위기와 관련한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를 제안했다. 과거와는 차별화된 사회적 대화의 결실을 맺고자 했던 청와대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표자 회의’가 지난 5월 구성됐다. 한달 반 가까이 공전을 거듭하던 노사정 대표자 회의는 지난달 말 어렵게 전국민 고용보험 확대, 고용 유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잠정합의안을 마련했지만, 이는 민주노총 내부의 반발에 부딪쳤다. 산하 지역·산별 노조 대표자로 구성된 중앙집행위원회의 합의안 폐기 요구 등에 맞서 김명환 위원장은 거취를 걸고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찬반 투표를 시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22년 만에 민주노총까지 참여한 노사정 합의가 물 건너간 만큼 정부가 더는 민주노총의 노정교섭 요구에 화답할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진단이 나온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장은 “정부 입장에선 민주노총의 요구에 따라 공식 사회적 대화 기구(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두고 별도의 교섭 틀에 참여한 것인데, 민주노총 스스로 합의를 포기한 만큼 정부가 민주노총의 편의에 맞춰주는 일방적인 관계는 더 이상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대화의 끈이 사라진 민주노총으로선, 코로나19가 장기화할 경우 닥칠 고용위기에 대응할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고용 위기에 놓인 미조직 노동자들을 보호할 방안은 고용보험 확대 적용이나 업종 전환을 위한 직업훈련 등의 적극적 노동정책의 시행인데, 이는 투쟁을 통해 돌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김명환 위원장이 24일 오후 기자회견에서 사퇴할 예정이어서 민주노총 내부의 진통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사퇴하면 새 위원장 선거가 예정된 연말까지는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들어서게 된다. 투표 결과가 ‘압도적 부결’로 볼 수 없는데다, 이번 사회적 합의 과정에서 정파·조직 간 불필요한 갈등이 고스란히 대중에 노출된 상황이어서, 비대위 체제 이후 차기 위원장 선거 과정에서도 내분은 계속될 수 있다.
이미 전국민 고용보험 로드맵 수립, 특별고용유지지원금 확대 등 노사정 합의안 내용 일부의 실행에 나선 정부는 다른 내용과 관련한 향후 계획도 조만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방식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별도의 협약식 행사 없이 정세균 국무총리나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 등이 민주노총의 최종 불참 결정과 노사정 합의안의 추진 등에 대한 메시지를 발표할 것으로 전해졌다.
선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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