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내년부터 중소기업(50~299인 사업장)에 주 52시간 상한제를 시행한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시행을 1년 유예한다고 해서 주 52시간 상한제의 근간이 흔들리진 않는다. 하지만 특별연장근로 확대는 고용노동부가 노동부이길 포기한 결정 아닌가.”
지난해 12월 정부가 중소기업(50~299인 사업장)의 주 52시간제 시행을 1년간 연기한다고 발표한 직후 노동부 출신의 한 인사가 사석에서 한 말이다. 당시 노동부는 이 발표와 함께 업무량 급증이나 연구개발 등 ‘경영상의 이유’도 특별연장근로 사유로 인정해주는 지침을 내놓았다. 노동시간에 제한을 두지 않는 특별연장근로제는 원래 ‘자연재해·재난 또는 이에 준하는 사고를 수습하는 경우’에 한해서만 허용됐는데,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경영상의 이유도 사유로 추가해 노동시간을 늘릴 수 있는 길을 터준 것이다.
그날 이재갑 노동부 장관은 노동시간 단축 정책에 ‘구멍’을 내는 이유에 대해 “국회에서 보완입법이 안 돼서 불가피하게 시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영계의 요구로 추진됐으나 불발된 탄력근로제 개편이 특별연장근로 사유 확대의 명분이 됐다는 얘기다.
그로부터 1년 가까이 흐른 지난 30일, 이 장관은 내년부터 중소기업의 주 52시간제 시행을 발표하며 국회에 또 한번 탄력근로제 법안 처리를 호소했다. 그래서 다시 궁금해졌다. 탄력근로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 “보완입법”이 되면, 노동부는 특별연장근로 허가 사유에 추가됐던 ‘경영상의 이유’를 삭제할 것인가.
이 장관의 답변은 엉뚱했다. “탄력근로제는 주로 업무량이 주기적으로 변동하는 경우에 유용하고, 특별연장근로는 코로나19 등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에 활용할 수 있는 제도”라고 본질을 흐렸다. 탄력근로제 법안이 처리돼도 “(법안) 내용과 노동시장의 상황을 고려해” 특별연장근로 지침의 개정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탄력근로제 개편 불발로 특별연장근로 사유를 확대한다’는 1년 전 설명은 그렇게 ‘거짓’임이 드러났다.
지난 30일 정부가 주 52시간제를 예정대로 내년부터 시행하겠다고 발표하자 보수매체와 경제지 등은 당장 중소기업들이 문을 닫을 것처럼 난리법석이지만,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노동부의 특별연장근로 인가 건수는 3648건에 이르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793건)보다 5배 가까이 폭증한 수치다. 중소기업에 주 52시간제가 시행되어도 노동자들에게 장시간 노동을 부과할 합법적 장치가 충분하다는 걸 보여주는 선례다. 이 장관은 이 부조리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
선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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