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IT) 기업들이 우수 개발자 유치를 위한 ‘쩐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게임사 크래프톤이 최근 동종 업계 다른 기업보다 2배가 넘는 연봉 인상액을 발표해 화제가 됐다. 그런데 업계에선 대표 기업인 ‘3엔(N)’(넷마블·넥슨·엔씨소프트)과 달리 ‘포괄임금제’를 고집하고 있는 이 회사가 장시간 노동에 대한 직원들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이런 결정을 한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다.
2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달 25일 크래프톤이 개발직군 연봉을 2천만원(비개발직군 1500만원)씩 일괄 인상하기로 발표하기 직전 이 회사 일부 직원들은 회사의 주 52시간 상한제 위반 의혹을 공론화하기 위해 제보를 접수했다. 크래프톤은 주 52시간 근무를 일주일 단위가 아닌 월평균으로 산정하는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시행 중인데, 업계에서는 이 회사가 선택적 근로시간제와 포괄임금제를 결합해 운영하면서 ‘공짜 야근’을 일상화하는 등 주 52시간 상한제를 위반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실제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보면, 이 회사는 2019년 연장근로 제한 및 보상과 관련한 근로기준법 조항을 위반해 고용노동부로부터 두차례 시정지시를 받았다.
크래프톤 창업자인 장병규 의장은 2019년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위원장으로 활동할 당시 노동계 대표 위원의 거듭된 반대에도 불구하고 주 52시간제를 유연하게 적용하는 내용의 대정부 권고안을 만들어 논란을 일으켰다.
노동계는 크래프톤처럼 선택적 근로시간제와 포괄임금제를 결합할 경우 ‘장시간 공짜노동’이 무한대로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해왔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업무 시작과 종료 시간이 일정치 않은데, 여기에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을 미리 약정한 시간만큼만 월 급여에 포함하는 포괄임금제를 적용하면 가산수당의 지급 기준이 불분명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 정확한 노동시간 측정이 어려워져 주 52시간을 넘기는 장시간 노동을 해도 드러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지난달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크래프톤이 법망을 피해 (주 52시간 상한제에 저촉되는) 장시간 노동을 시키고 있다’는 취지의 내부 직원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현행법 규정상 두 제도의 결합이 불법은 아니지만, 고용노동부 역시 사업주가 이를 남용하는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2017년 ‘포괄임금제 사업장 지도지침’ 초안을 만들었다. 노동자의 명확한 합의가 없거나 일반 사무직에는 포괄임금제를 적용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경영계 반발 등에 부닥쳐 4년째 발표를 미루고 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24일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심층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지침을 다듬고 있다”며 발표 시점에 대한 즉답을 피했다.
크래프톤 쪽은 이런 의혹에 대해 “게임 개발은 제조업과 달리 근무시간에 비례해 일의 가치가 나오는 게 아니다 보니 포괄임금제를 유지하기로 했다”며 “회사는 (주 52시간 상한제) 관련 법을 준수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선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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