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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중대재해처벌법, 23살 이선호씨의 죽음을 애도하는 방법

등록 2021-05-21 20:05수정 2021-05-22 02:30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고 이선호씨 추모문화제가 지난 13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렸다. 고인의 아버지 이재훈씨가 헌화한 뒤 아들의 사진을 어루만지며 오열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고 이선호씨 추모문화제가 지난 13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렸다. 고인의 아버지 이재훈씨가 헌화한 뒤 아들의 사진을 어루만지며 오열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23살 대학생 이선호씨가 평택항 항만 부두에서 300㎏ 무게의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숨진 지 22일로 꼭 한달이 됩니다. 숨진 지 15일이나 지난 뒤에야 세상에 알려진 이 대학생의 안타까운 죽음을 두고 뒤늦게 추모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이선호씨의 죽음에는 어떤 문제가 숨어 있었을까요? 한국 사회는 이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안녕하세요? <한겨레>에서 노동과 보건복지, 교육 분야를 맡고 있는 사회정책팀장 이재훈입니다. <한겨레> 사회정책팀은 이선호씨의 친구 김벼리씨를 통해 그의 죽음을 확인한 뒤, 평택 현장으로 달려가 사망사고 현장과 이를 낳은 구조적인 문제를 연이어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한 청년의 죽음을 낳은 문제가 몇번의 보도로 갈음될 수 있을까요? 그래서 한달이 지난 지금까지 선호씨의 죽음은 제게 하나의 응어리가 되어 남아 있습니다.

이선호씨는 형식적으로는 하도급업체 ‘우리인력’ 직원이었지만 실질적으론 원청업체인 ‘동방’의 지휘·감독 아래 있는 노동자였습니다. 이른바 ‘위장 도급’으로 불리는 ‘이중 신분’이지요. 하지만 두 업체가 맺은 계약을 보면, 일감을 놓고 계약하는 하도급 계약이 아니라 단순히 인력을 공급하는 계약이었습니다. 근로기준법상 이 계약은 불법입니다. 동방은 이런 불법 계약을 통해 우리인력에서 ‘수시로 출근을 조정할 수 있는’ 인력을 공급받았습니다. 평택 항만 현장에는 비용 줄이기를 위한 이런 불법 계약이 비일비재하다고 합니다. 이러니 소속이 다른 여러명의 노동자가 복잡한 업무에 투입되면서 위험 요인을 살피고 예방하는 게 더 어려워지게 됩니다.

한국 사회에 노동자의 죽음을 낳는 이런 모순은 곳곳에 산재해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지난해에만 산재 사고로 882명의 노동자가 숨졌습니다. 하루에 2.4명의 노동자가 출근했다가 산업 현장에서 죽임을 당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이 죽음의 행렬을 막기 위해 지난 1월8일 국회가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을 통과시켰습니다.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이 법은 논의 과정에서 애초 발의안보다 대폭 후퇴한 내용을 담게 됐습니다. 우선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되지 않고, 50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이 3년 유예됐습니다. 지난해 산재 사고로 숨진 882명 가운데 5인 미만 사업장 소속 노동자는 312명, 5인 이상~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402명입니다. 합쳐서 80.9%나 되는 노동자들의 죽음이 이 법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유예된 것이지요. 게다가 최근 5년 내 안전 조처 의무 관련 법을 3회 이상 위반한 경우 사업주가 사실상 재해에 책임이 있다고 간주하는 ‘인과관계 추정의 원칙’도 삭제됐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법이 만들어지면 이를 실제로 적용하기 위한 하위 법령이 만들어지는데요. 이를 시행령이라고 합니다. 고용노동부는 이달 말이나 새달 초 중대재해법 시행령을 확정해 입법예고할 예정인데요.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중대재해법이 최소한의 구실을 하려면 법이 시행령에 일부 위임하고 있는 ‘경영책임자의 의무와 이행 사항’ 등을 포괄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회사 대표에게 산재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회사 대표가 평소 안전보건 조처를 제대로 이행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래야 산재 예방에 필요한 방호덮개나 방호울 같은 안전 설비도 확충하고, 안전 관리를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전문 인력도 고용해 현장을 정밀하게 감시할 수 있을 겁니다. 법 제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면 경영책임자는 어떤 책임도 지려고 하지 않고, 노동부 관료들도 산업 현장 안전 실태를 세밀하게 점검하려고 하지 않겠지요. 그런데 경영계는 충분한 권한과 책임을 가진 안전보건 책임자만 두면 대표이사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규정을 넣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노동자의 생명을 보호하는 데 들이는 비용보다 노동자의 죽음에 치르는 비용이 더 적은 이 비상식적인 사회를 바꾸기 위해 앞장서주십시오. 선호가 하나의 슬픈 이름으로 남지 않도록, 이 사회가 선호의 죽음에 빚져 한 걸음이라도 나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해주십시오.”

이선호씨의 친구 김벼리씨가 20일 정의당을 찾아가 한 말(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 페이스북)입니다. 이번에는 선호씨의 죽음에 빚지지만, 더는 애꿎은 생명을 담보 삼는 사회가 되어선 안 되는 것 아닐까요. 그것이 지금이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애도일 겁니다.

이재훈 사회정책팀장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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