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대학별곡/ 술판 대신 봉사 등 새바람 ‘솔솔’
신입생들이 처음 맛보는 대학생활 가운데 그 어떤 것이 재미있지 않겠냐만 신입생 환영회만큼 기대되는 파티(?)도 없을 것이다. 대학생들의 이러한 모임에 술이 빠질 수 없는 법. 그러다 보니 신입생 환영회가 있는 3월 한달 동안 대학가 앞은 평소 때보다 유난히 시끌벅적하다. 각종 사고 소식이 종종 전해지고 각종 뉴스를 통해 대학생들의 무분별한 음주문화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하지만 모든 대학생들이 신입생을 술로 맞이하는 것은 아니다. 신입생 환영회 풍속도에도 작은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몇몇 학교에서 그간 봉사활동, 세족 행사 등 새로운 형식의 환영회를 마련, 눈길을 끌고 있다.
한남대 공대 학생회(회장 김선호)는 걸판진 술자리 대신 선후배가 함께 참여하는 봉사활동을 준비했다. 신입생을 포함한 공대생 600여 명은 지난 18일 대전시 중구 중천동 등 학교 주변 홀몸 어르신들의 집과 사회복지관을 방문해 가사도우미, 무료 급식 등의 봉사활동을 했다. 새내기 이재성씨(산업경영공학과 1)는 “신입생 환영회가 술문화 일색이라는 그동안의 편견이 없어졌다”며 “짧은 시간이나마 독거노인들을 돕게 되어서 보람이 있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신입생 환영회의 또 다른 변신. 경운대 경호학부(회장 이상묵)는 오는 28일 150명의 선배들이 신입생들을 잘 돌보겠다는 의미로 발을 씻겨주는 ‘세족행사’를 열였다. 생각은 쏘옥 빠진 채 선후배 사이의 우정을 빙자한 신입생 환영회 술자리 문화에 대한 야심찬 도전장을 낸 셈이다. 이상묵 학생회장은 “그간 전통적으로 학과의 특성상 구타와 약간은 거친 술자리 문화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몸과 마음을 정화해 신입생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겠다는 뜻을 담아 이번 행사를 진행하게 되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또 충남대 생명과학대의 경우 소속 학과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 지난 24~25일 전북 무주리조트에서 환영회를 겸한 ‘바이오 심포지엄’을 가졌다. 금강대 사회복지학과는 다음달 2일 신입생 환영회를 대신해 ‘논산사랑 걷기대회’에 참가해 장애우 등과 함께 10km를 완주하는 행사 계획을 짰다.
작은 변화의 새싹들도 보이지만 신입생 환영회의 흐벅진 술판은 여전하다. 매년 3월이면 뉴스 한 토막을 장식하는 대학 음주사고. 올해에도 한 청년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지난 13일 경기도 소재 모 대학 인근 농수로에서 신입생 환영회에 참석했던 ㅎ군이 술해 취해 귀가하다 정신을 잃고 쓰러져 저체온증으로 숨지는 일이 발생한 것. 아직은 어색하기도 할 선후배와의 자리에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담당했던 술이 살인 무기로 돌변한 안타까운 사건이다. 광주 한 대학 건축토목학과에서는 2학년 학생이 신입생들이 군기가 빠져 꾸물댄다며 폭력을 휘둘러 뇌사상태에 빠뜨린 일도 있었다.
하지만 환영회 ‘술’의 ‘도수’가 크게 낮아졌다는 분석도 있다. 고려대 옥만강씨(건축학과 4)는 “예전에는 신입생 환영회에서 토할 때까지 마시게 하는 사발식이나 대야에 소주를 부어서 양말로 마구 휘저으며 마시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하지만 요즘에는 문화가 많이 바뀌었다”며 “마시지 않겠다는 본인의 의사표시를 정확히 하는 그런 신입생들을 보면 선배 말에 껌뻑 죽던 옛날이 그리워질 정도”라고 말했다.
이와 달리 더 심해졌다는 분석도 있다. 해마다 신입생 환영회 행사에 꼭 한번씩은 참석했다는 중앙대 학생지원처 박기석 계장은 “예나 지금이나 신입생 환영회 때 술은 빠지지 않더라”며 “제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새벽 4시정도면 집에 들어갔는데 요즘 애들은 새벽 6시까지 술을 마시더라”고 말하며 웃었다. 하지만 그는 “신입생 환영회때의 술판이 대학문화의 잘못이라 말할 수는 없다”며 “한국사회 전반적인 행사모습의 단면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의 회식 문화가 대학에 스며든 결과라는 분석이다.
며칠전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 지식 검색 코너에 이러한 질문이 등록된 적이 있다. “저 이번에 대학교에 들어가는 신입생인데요. 신입생 환영회에 가면 뭘 해야 하나요.” 이에 대한 답변은 “술만 먹습니다”였고 이를 본 사람들은 웃음이 묻어나야 할 신입생 환영회 이야기에 쓴웃음을 지었다. 푸른 잔디밭 위에서 꿈같은 캠퍼스 생활을 기대했을 새내기들. 2006년 신입생 환영회를 경험한 뒤 그들은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한아름/<중대신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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