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딛고
진짜 ‘연극배우’된
길윤배씨 “안녕하세요. 연극배우 길별은입니다.” 그는 자리를 잡자마자 명함을 내밀며 정식으로 인사를 다시 한다. “제가 직접 지은 ‘예명’이에요. 말 뜻대로 ‘황금’처럼 길이 빛나는 배우가 되고 싶어서요.” 역시 직접 디자인했다는 그의 첫 명함에는 ‘액터(actor)’라고 또렷이 적혀 있다. 지금까지 그는 ‘장애인 배우’ 길윤배(35)로 불렸다. “요즘은 배우가 아니라 배우는 중이죠. 하지만 날마다 나올 곳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그의 직장은 지난해 10월 창단한 ‘장애인·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연극공동체’ 극단 어우름이고, 날마다 출퇴근하는 곳은 연습실로 빌려 쓰고 있는 서울 봉천동의 한 교회 강당이다. 지난해 11월 창단 공연작품 <더불어>의 주요 출연진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린 그의 배우로서 이력은 1993년 12월 수화연극 ‘죽음에 관한 보고서’부터 시작된다. “나도 남을 돕고 싶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수화 강습생 모집 기사에서 ‘두 손으로 밥을 먹을 수만 있어도 축복이다’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어요. 맞아, 난 비록 말을 더듬는 지체장애(3급)가 있지만 두 손을 맘대로 쓸 수 있잖아?” 그 길로 한국밀알선교단을 찾아가 1년간 배운 수화와 변화무쌍한 표정은 지금껏 그의 든든한 연기 밑천이다. 당시 그는 힘들게 입학했던 한 비정규 대학의 영화과에서 “앞날이 없으니 다른 길을 가는 게 좋겠다”는 지도교수의 권유를 받고 실의에 빠져 있던 상태였다. “주인공이니 스타니 욕심낸 적 없어요. 단역, 아니 배경으로라도 무대에 서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고1 때 홍콩영화 <영웅본색>을 보고 ‘주윤발처럼 다양한 인물로 변신하면 멋지겠다’는 생각에 키워온 ‘연기자의 꿈’이 맞닥뜨린 첫번째 현실의 벽이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도 포기하지도 않았다. 혼자 끊임없이 연습을 하며 여기저기 극단을 찾아다녔다. 물론 번번이 ‘장애인은 안된다’며 문전박대하거나 잔심부름만 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기회가 왔다. 2004년 10월 서울예술단에서 연말 공연작 <크리스마스 캐롤>을 위해 처음으로 장애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오디션에서 당당히 합격해 예술의전당에서 ‘말리 유령’역으로 데뷔한 것이다. “그렇게 큰 공식 공연은 처음이어서 겁이 났는데 신기하게도 무대에 서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구요. 한달 동안 정말 행복했어요. 거기다 나중에 출연료까지 받으니 어안이 벙벙하던대요.” 서울예술단 객원배우 자격으로 난생 처음 번 ‘돈’이자 ‘개런티’를 봉투째 갖다 드렸을 때 어머니는 “이용만 당하지 않을까 늘 걱정했는데…”라며 기뻐하셨단다. 하지만 누구보다 기쁜 사람은 “바로 나였다”는 그, 당시 받은 개런티 금액은 “배우로서 자존심 때문에 밝힐 수 없다”며 큰 입이 터지도록 시원스레 웃는다. ‘높은 장벽’ 넘어 계속 도전· 재작년 ‘크리스마스 캐롤’ 데뷔
얼마전 기획사와 계약도 맺어 지난해 8월 공연한 <코카서스의 백묵원>에서 배우와 예술감독으로 인연을 맺은 어우름의 대표 정혜승씨는 그의 첫 연기 스승이자 배우 인생의 길잡이다. 지난달 20일부터 극단에서 개설한 ‘연기 아카데미’에 참가해 연기 수업을 받고 있는 그는 “이제야 비로서 배우가 된 기분이 든다”고 말한다. 그런 자신감이 그로 하여금 두가지 큰 용기를 내게 했다. 얼마 전 전문기획사인 ‘가나안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맺었고, 직접 만든 명함을 들고 종종 ‘바보 취급’을 받았던 동사무소를 찾아가 ‘연극배우’라고 당당히 자기 소개를 한 것이다. “한 때는 언어장애가 배우한테 치명적이란 지적에 그만둘까도 했지만 이제는 그래서 더 유리하다고 생각해요. 희소가치도 있고 비장애인이 기피하는 역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요.” ‘죽을 때까지 최고는 아니라도 최선을 다하는 배우로 기억되길 바랄 뿐’이라는 그가 언젠가 꼭 해보고 싶은 배역은 멜로 드라마의 연인역, “음…, 경아, 오랜 만에 같이 누워보는군. 허허허!”
글·사진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진짜 ‘연극배우’된
길윤배씨 “안녕하세요. 연극배우 길별은입니다.” 그는 자리를 잡자마자 명함을 내밀며 정식으로 인사를 다시 한다. “제가 직접 지은 ‘예명’이에요. 말 뜻대로 ‘황금’처럼 길이 빛나는 배우가 되고 싶어서요.” 역시 직접 디자인했다는 그의 첫 명함에는 ‘액터(actor)’라고 또렷이 적혀 있다. 지금까지 그는 ‘장애인 배우’ 길윤배(35)로 불렸다. “요즘은 배우가 아니라 배우는 중이죠. 하지만 날마다 나올 곳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그의 직장은 지난해 10월 창단한 ‘장애인·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연극공동체’ 극단 어우름이고, 날마다 출퇴근하는 곳은 연습실로 빌려 쓰고 있는 서울 봉천동의 한 교회 강당이다. 지난해 11월 창단 공연작품 <더불어>의 주요 출연진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린 그의 배우로서 이력은 1993년 12월 수화연극 ‘죽음에 관한 보고서’부터 시작된다. “나도 남을 돕고 싶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수화 강습생 모집 기사에서 ‘두 손으로 밥을 먹을 수만 있어도 축복이다’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어요. 맞아, 난 비록 말을 더듬는 지체장애(3급)가 있지만 두 손을 맘대로 쓸 수 있잖아?” 그 길로 한국밀알선교단을 찾아가 1년간 배운 수화와 변화무쌍한 표정은 지금껏 그의 든든한 연기 밑천이다. 당시 그는 힘들게 입학했던 한 비정규 대학의 영화과에서 “앞날이 없으니 다른 길을 가는 게 좋겠다”는 지도교수의 권유를 받고 실의에 빠져 있던 상태였다. “주인공이니 스타니 욕심낸 적 없어요. 단역, 아니 배경으로라도 무대에 서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고1 때 홍콩영화 <영웅본색>을 보고 ‘주윤발처럼 다양한 인물로 변신하면 멋지겠다’는 생각에 키워온 ‘연기자의 꿈’이 맞닥뜨린 첫번째 현실의 벽이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도 포기하지도 않았다. 혼자 끊임없이 연습을 하며 여기저기 극단을 찾아다녔다. 물론 번번이 ‘장애인은 안된다’며 문전박대하거나 잔심부름만 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기회가 왔다. 2004년 10월 서울예술단에서 연말 공연작 <크리스마스 캐롤>을 위해 처음으로 장애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오디션에서 당당히 합격해 예술의전당에서 ‘말리 유령’역으로 데뷔한 것이다. “그렇게 큰 공식 공연은 처음이어서 겁이 났는데 신기하게도 무대에 서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구요. 한달 동안 정말 행복했어요. 거기다 나중에 출연료까지 받으니 어안이 벙벙하던대요.” 서울예술단 객원배우 자격으로 난생 처음 번 ‘돈’이자 ‘개런티’를 봉투째 갖다 드렸을 때 어머니는 “이용만 당하지 않을까 늘 걱정했는데…”라며 기뻐하셨단다. 하지만 누구보다 기쁜 사람은 “바로 나였다”는 그, 당시 받은 개런티 금액은 “배우로서 자존심 때문에 밝힐 수 없다”며 큰 입이 터지도록 시원스레 웃는다. ‘높은 장벽’ 넘어 계속 도전· 재작년 ‘크리스마스 캐롤’ 데뷔
얼마전 기획사와 계약도 맺어 지난해 8월 공연한 <코카서스의 백묵원>에서 배우와 예술감독으로 인연을 맺은 어우름의 대표 정혜승씨는 그의 첫 연기 스승이자 배우 인생의 길잡이다. 지난달 20일부터 극단에서 개설한 ‘연기 아카데미’에 참가해 연기 수업을 받고 있는 그는 “이제야 비로서 배우가 된 기분이 든다”고 말한다. 그런 자신감이 그로 하여금 두가지 큰 용기를 내게 했다. 얼마 전 전문기획사인 ‘가나안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맺었고, 직접 만든 명함을 들고 종종 ‘바보 취급’을 받았던 동사무소를 찾아가 ‘연극배우’라고 당당히 자기 소개를 한 것이다. “한 때는 언어장애가 배우한테 치명적이란 지적에 그만둘까도 했지만 이제는 그래서 더 유리하다고 생각해요. 희소가치도 있고 비장애인이 기피하는 역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요.” ‘죽을 때까지 최고는 아니라도 최선을 다하는 배우로 기억되길 바랄 뿐’이라는 그가 언젠가 꼭 해보고 싶은 배역은 멜로 드라마의 연인역, “음…, 경아, 오랜 만에 같이 누워보는군.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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