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의/한국예술종합학교 편집장
대학별곡 /
취업·학점 연연
‘대학인지 학원인지’ 입시 준비를 했던 대학생이라면 모두 기억할 것이다. 프린트 암기의 추억. 교사와 학생들의 암묵적인 공모로 이뤄지는 내신점수를 높이기 위한 전략이었다. 시험철이 되면 대부분의 교사들은 수업 요점정리나 시험예상문제를 뽑아 한 묶음씩 나눠주었고, 시험에는 그 묶음 안에 든 문제가 미묘하게 바뀌거나 심지어 그대로 나오기도 했다. 수업에 집중하지 않거나 수업 내용을 이해하지 않아도 프린트의 문제와 정답만 외우면 높은 점수를 딸 수 있었다. 프린트를 외우며 우리 모두 ‘대학에서는 더 이상 이런 변칙공부는 안 하겠지’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대학생들, 여전히 선배에게서 물려받은 족보(역대 기출문제)나 교수가 주는 프린트를 외운다. 대학교에서도 암기식 문제 출제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시험철이면 적지 않은 대학생들이 고교 때와 비슷하게 도서관에 앉아 문제와 정답을 통째로 암기하는 게 요즘 대학가의 현실이다. 서울의 한 명문 사립대 ㅇ(경영학과 04)씨는 “수업시간에 토론이나 발제 등을 하지만 시험에서는 교재를 외워서 쓰면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교육대학에 다니는 ㅂ(교육학과 04)씨는 “커리큘럼이 크게 바뀌지 않기 때문에 선배들이 물려준 족보를 외우면 거의 다 맞출 수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어떤 과목은 교재의 목차를 외워서 쓰면 되는 문제가 나오기도 하고 심지어 괄호 채우기 문제도 있다. 한 국립대 ㄱ(수학교육과 04)씨도 “시험문제는 거의 교재의 연습문제에서 나오고 보통 족보에 나와있는 풀이과정을 외워서 그대로 쓰면 된다”라고 말했다. 한 사립대 ㅇ씨는 “수업시간에 안 배운 것도 프린트와 교재를 외우면 되는 시험 문제가 있고, 형식은 고등학교 때처럼 객관식으로 나온다”라고 말했다. 불필요한 지식 암기를 강요하는 문제도 있다. 전남대학교 인문대 ㅇ씨는 “이번 중간고사에서 건강 관련 교양과목 시험을 쳤는데 평소에 들어본 적 없는 방대한 양의 복잡한 병 이름, 생식기 구조, 약 이름 등을 외워야 했다”며 “물론 얻는 것이야 있겠지만 이렇게까지 외워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물론 모든 시험이 그렇지는 않다. 자연계의 경우다. 홍익대학교 윤영석(전자전기공학부 05)씨는 “기본적으로 외워야 할 공식을 외워서 시험문제에서는 그것을 응용해야하는 문제가 주로 나온다” 라고 말했다. 아주대학교 조정래(자연과학부 생명과 04)씨도 “전공과목은 객관식 문제가 나오기도 하는데 기본적인 지식이고 답이 정해져 있는 것이라서 적절한 형식인 것 같다”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아예 암기 시험문제가 없다는 학과도 있었다. 서울대 정욱(경제학과 04)씨는 “교수가 문제를 직접 만들어 서술형, 논술위주로 나온다. 그러므로 원론적인 공부를 해도 시험문제를 풀려면 기발한 발상과 응용력이 필요하다. 대학 시험이라면 그래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전남대 임나현씨도 “고등학교 때와 달리 대학에서는 학문 자체를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마냥 외워서 학점만 높이는 것은 의미가 없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적지 않은 학생들이 대학 시험에서도 암기 위주의 시험문제가 적지 않으며 이는 이를 “시험을 위한 공부일 뿐”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암기 위주의 시험이 계속 존재하는 이유는 고교 때 대학 입시를 목표로 공부했듯이 대학에서는 취업이라는 또 다른 목표가 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대학이 취업 학원 같은 분위기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 스스로도 취업을 위한 학점 관리를 위해 예측 불가능한 논술형 시험보다 ‘딸딸’ 외우면 되는 시험을 선호하고 있다. ㄱ대에 다니는 한 여학생은 “대부분의 학생들은 에세이보다 외워서 시험 보는 것을 선호한다”며 “취업을 걱정하는 학생들은 학점에 민감해서 학점에 대해 교수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암기식 시험은 교수와 학생이 부딪히는 일도 없고 학점 매기기도 편리하다”고 말했다. 대학이라는 곳이 취업학원이 아닌 진정한 학문의 배움터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남의/한국예술종합학교 편집장
취업·학점 연연
‘대학인지 학원인지’ 입시 준비를 했던 대학생이라면 모두 기억할 것이다. 프린트 암기의 추억. 교사와 학생들의 암묵적인 공모로 이뤄지는 내신점수를 높이기 위한 전략이었다. 시험철이 되면 대부분의 교사들은 수업 요점정리나 시험예상문제를 뽑아 한 묶음씩 나눠주었고, 시험에는 그 묶음 안에 든 문제가 미묘하게 바뀌거나 심지어 그대로 나오기도 했다. 수업에 집중하지 않거나 수업 내용을 이해하지 않아도 프린트의 문제와 정답만 외우면 높은 점수를 딸 수 있었다. 프린트를 외우며 우리 모두 ‘대학에서는 더 이상 이런 변칙공부는 안 하겠지’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대학생들, 여전히 선배에게서 물려받은 족보(역대 기출문제)나 교수가 주는 프린트를 외운다. 대학교에서도 암기식 문제 출제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시험철이면 적지 않은 대학생들이 고교 때와 비슷하게 도서관에 앉아 문제와 정답을 통째로 암기하는 게 요즘 대학가의 현실이다. 서울의 한 명문 사립대 ㅇ(경영학과 04)씨는 “수업시간에 토론이나 발제 등을 하지만 시험에서는 교재를 외워서 쓰면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교육대학에 다니는 ㅂ(교육학과 04)씨는 “커리큘럼이 크게 바뀌지 않기 때문에 선배들이 물려준 족보를 외우면 거의 다 맞출 수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어떤 과목은 교재의 목차를 외워서 쓰면 되는 문제가 나오기도 하고 심지어 괄호 채우기 문제도 있다. 한 국립대 ㄱ(수학교육과 04)씨도 “시험문제는 거의 교재의 연습문제에서 나오고 보통 족보에 나와있는 풀이과정을 외워서 그대로 쓰면 된다”라고 말했다. 한 사립대 ㅇ씨는 “수업시간에 안 배운 것도 프린트와 교재를 외우면 되는 시험 문제가 있고, 형식은 고등학교 때처럼 객관식으로 나온다”라고 말했다. 불필요한 지식 암기를 강요하는 문제도 있다. 전남대학교 인문대 ㅇ씨는 “이번 중간고사에서 건강 관련 교양과목 시험을 쳤는데 평소에 들어본 적 없는 방대한 양의 복잡한 병 이름, 생식기 구조, 약 이름 등을 외워야 했다”며 “물론 얻는 것이야 있겠지만 이렇게까지 외워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물론 모든 시험이 그렇지는 않다. 자연계의 경우다. 홍익대학교 윤영석(전자전기공학부 05)씨는 “기본적으로 외워야 할 공식을 외워서 시험문제에서는 그것을 응용해야하는 문제가 주로 나온다” 라고 말했다. 아주대학교 조정래(자연과학부 생명과 04)씨도 “전공과목은 객관식 문제가 나오기도 하는데 기본적인 지식이고 답이 정해져 있는 것이라서 적절한 형식인 것 같다”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아예 암기 시험문제가 없다는 학과도 있었다. 서울대 정욱(경제학과 04)씨는 “교수가 문제를 직접 만들어 서술형, 논술위주로 나온다. 그러므로 원론적인 공부를 해도 시험문제를 풀려면 기발한 발상과 응용력이 필요하다. 대학 시험이라면 그래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전남대 임나현씨도 “고등학교 때와 달리 대학에서는 학문 자체를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마냥 외워서 학점만 높이는 것은 의미가 없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적지 않은 학생들이 대학 시험에서도 암기 위주의 시험문제가 적지 않으며 이는 이를 “시험을 위한 공부일 뿐”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암기 위주의 시험이 계속 존재하는 이유는 고교 때 대학 입시를 목표로 공부했듯이 대학에서는 취업이라는 또 다른 목표가 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대학이 취업 학원 같은 분위기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 스스로도 취업을 위한 학점 관리를 위해 예측 불가능한 논술형 시험보다 ‘딸딸’ 외우면 되는 시험을 선호하고 있다. ㄱ대에 다니는 한 여학생은 “대부분의 학생들은 에세이보다 외워서 시험 보는 것을 선호한다”며 “취업을 걱정하는 학생들은 학점에 민감해서 학점에 대해 교수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암기식 시험은 교수와 학생이 부딪히는 일도 없고 학점 매기기도 편리하다”고 말했다. 대학이라는 곳이 취업학원이 아닌 진정한 학문의 배움터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남의/한국예술종합학교 편집장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