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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나 핸드폰 없어도 돼”…훌쩍 큰 내딸

등록 2006-05-02 17:08수정 2006-05-03 15:18

김옥숙/소설가
김옥숙/소설가
희망나무 /

“몰라! 몰라! 엄마 땜에 답답해 죽겠어!”

딸아이 혜미가 소리를 지르더니 아파트 현관문을 쾅 닫고 나가버립니다. 딸아이는 핸드폰이 없으면 왕따를 당한다고, 숫제 영순씨 가슴에 못을 쾅쾅 박아버렸습니다. 중학교 3학년이 되자 혜미는 핸드폰을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습니다. 택시운전을 하는 남편의 건강도 점점 나빠지는데 세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막막합니다. 영순씨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우유배달을 합니다. 아무래도 종일 일하는 일자리를 알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녁 찬거리를 사러 시장으로 향하는 영순씨의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도로변에 피어난 화사한 봄꽃들이 눈을 맞추어 달라고 앞 다투어 얼굴을 내밀지만 영순씨의 가슴은 황량한 겨울 벌판입니다. 꽁치 다섯 마리와 애호박과 오이와 부추를 사고 감자와 양파를 사니 장바구니가 꽤 묵직합니다. 혜미가 좋아하는 딸기를 살까, 남편이 좋아하는 참외를 살까, 한참 망설이던 영순씨는 지갑을 닫아버립니다. 영순씨는 호떡을 굽는 리어카 쪽으로 다가갑니다.

“호떡 다섯 개만 주세요.”

영순씨는 돈을 꺼내다가 깜짝 놀랍니다. 혜미와 같은 학교의 교복을 입은 여중생이 호떡을 굽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복 소매를 둥둥 걷고 호떡을 굽고 있는 여중생의 얼굴은 한점 그늘도 없이 환합니다. 하루 이틀 호떡을 구운 솜씨가 아니라 아주 숙달된 솜씨였습니다. 민들레 같은 여중생의 동그스름한 얼굴에 검은 깨를 뿌려놓은 듯한 주근깨가 가득합니다. 그 옆에서 밀가루 반죽을 퍼 담는 아줌마와 모녀지간 아니랄까봐 붕어빵처럼 닮아있습니다. 호떡 굽는 엄마를 돕기 위해 교복 소매를 둥둥 걷고 나선 여중생이 어찌나 이뻐 보이는지요.

영순씨는 그 행복한 모녀를 부러운 표정으로 쳐다보며 한숨을 푹 내쉽니다. 그때 누군가 영순씨의 등을 툭 치는 바람에 뒤돌아보았습니다. 혜미가 쑥스럽게 웃으며 무거운 장바구니를 빼앗아 듭니다.

“이리 내. 무거워.”

“이렇게 무거운 거 들고 다니니까 팔뚝이 굵어지잖아.”

“네가 엄마 팔뚝까지 신경을 다 쓰다니, 정말 별일이네. 근데, 시장에 웬일이냐?”

“내 친구 현지 만나러 왔어. 현지 집이 이 근처야. 엄마! 나, 핸드폰 그까짓 거 필요 없어. 현지 보니까, 핸드폰 그거 공부에 방해만 되더라구.”

그토록 갖고 싶어 하던 핸드폰이 필요 없다는 혜미의 말 때문에 영순씨의 콧등이 시큰해집니다. 혜미의 키가 오늘 따라 부쩍 더 커 보입니다. 엄마와 딸이 같이 들고 가는 장바구니에 황금빛 노을이 가득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김옥숙/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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