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경 기자
대학별곡 /
대화란 마주 대하며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이다.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이 먼저다. 그러나 지금의 대학가에는 입만 있고 귀는 없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대학마다 난리다. 연세대에서는 지난 3월 총학생회를 비롯, 학생들이 등록금 인상 반대를 주장하며 본관을 점거했다. 총학생회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학생총회를 열어 등록금 인상안 무효 등의 안건을 의결하려 했지만 총회 도중 정족수 부족으로 안건 의결에 실패한 학생 대표들이 차선책으로 본관 점거를 택한 것이다.지난달에는 학생들이 재단이사회 회의장에 들어가 항의시위를 펼쳤다.
총학생회장 이성호씨는 “이사회에서 결정된 사항을 통보받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총학생회가 이사회에 참여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재단 이사들은 오히려 그들이 이사회에 무단으로 난입했다며 불만을 표시했고 정찬영 총장은 “학생들이 큰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며 당장 나가달라는 말만 했다. 이런 서로의 일방적인 의사전달은 제3캠퍼스 건립을 위한 ‘송도 프로젝트’ 공청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총학생회, 교직원 등은 송도 프로젝트와 원주 캠퍼스에 대한 의견을 학교 쪽에 전달했지만 학교 쪽 대표 교수는 “언젠가는 이 자리에서 말할 수 없었던 것들을 말하겠다”며 대화를 피했다.
이화여대에서는 개강 이후 총학생회장이 삭발을 하고 학생총회까지 열어 의견을 모았지만 요구안만 전달했을 뿐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지난 달에는 학교에서 총학생회의 천막 농성장을 강제 철거하기도 했다. 총학생회쪽은 “학교 측이 요구안에 대해 의견을 주는 대신 물리적 폭력을 감행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학교 쪽은 “학생들에게 불법 설치물을 자진 철거할 것을 여러 차례 권고했으나 듣지 않았다”고 받아쳤다. 이화여대에는 지금 말한 사람은 있어도 들은 사람은 없다. 학생들은 요구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농성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학교와 학생, 양쪽 모두 대화를 이야기하지만 서로가 꿈꾸는 대화의 모습은 영 다른 것 같다. 학교 쪽은 “우리도 대화하고 싶지만 학생들이 들어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만 되풀이하고 학생들은 “학교는 학생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라”며 목소리를 높이지만 양측 모두 귀는 굳게 닫아 걸었다.
최근 고려대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들은 서로를 이해하려 하지 않은 채 곪아온 상처가 어디까지 덧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지난달 고려대 본관 2층과 3층 계단 사이에서 일부 학생과 고려대 병설 보건대 학생들은 보건대의 투표권을 인정해 달라며 처장단을 17시간 동안 억류했다. 처장단과 학생들은 끊임없이 허공에 대고 서로에게 대화에 응하라고 외쳤다. 지난해 이건희 회장 명예박사 수여 항의 시위, 올해 2월 입학처 점거 등으로 이어져온 학교와 학생들의 갈등은 결국 주동자 19명 전원 징계, 7명 출교라는 유례없는 징계를 낳았다. 학생들의 대화 방식이 점거와 농성이었다면 학교의 대화방식은 강력한 징계인걸까.
설태영(고려대 국문 2년)씨는 “학교와 학생 모두에게 잘못이 있다. 그러나 양측 모두 스스로는 잘못이 없다고 주장한다. 서로 조금만 이해하면 될 것 같은데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자신들의 행동은 정당했다고 주장하는 학생들이나 아예 제자를 학교 밖으로 내친 처장단이나 서로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고려대의 한 교직원은 “예전에는 학생들이 찾아와 이것저것 도와달라고 할 때도 많았다”며 “지금은 이야기하려고 해도 그저 싸우자고만 하니 답답할 뿐”이라고 대화가 끊긴 현실을 말했다. 반면 출교 징계를 받은 학생들은 “학교가 이런 식으로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일을 진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학교 쪽에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학교와 학생, 모두가 대화를 희망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말하려는 사람만 있고 들으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간에게 입 하나 귀 두 개가 있는 이유는 말하기보다 듣기를 더 많이 하라는 하늘의 뜻이라는 옛 격언이 무색해진다.
조은경/<고대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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