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의 산골짜기 벌랏마을의 낡은 오두막에서 이종국·경옥씨 부부가 아들 선우와 함께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도시 떠나 충청도 두메살이
이종국씨 부부 / 충북 청원 청남대를 지나 양의 창자처럼 굽은 숲 속 외길을 돌고 돌아 또 돌면 더 가려야 갈 수 없는 막바지에 벌랏마을이 있다. 육지 속의 섬이나 다름없는 곳. 문의면 소재지에서도 50리나 더 들어가야 하는 두메다. 이런 산골로 접어들면 도시인들은 한순간 세속사를 벗어나는 듯한 해탈을 느끼지만, 만약 이런 곳에서 1~ 2년, 아니 평생 동안 살라면 두려움부터 앞서기 마련이다. 무엇으로 생계를 이어간단 말인가. 친구도 없을 텐데 외롭지 않을까. 대형 할인점도 없고 시장도 없고 구멍가게조차 없는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축복보다는 부족한 것부터 셈하기 때문이다. 이종국(43)씨는 그런 두메에서 10년을 넘기고 있다. 이제 토박이나 다름없는 벌랏마을 사람이 된 그는 걱정부터 앞세우는 사람들에게 “죽을 때까지 먹고 써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풍요롭다”고 말한다. 식사 시간을 앞두고 그는 낫을 들고 집 뒷산에 올라가더니 20여분 만에 나물을 바구니 가득 담아 내려왔다. 깊은 산에 혼자 버려져도 살아갈 수 있는 ‘산귀신’답다. 그는 괴산의 산골 출신이긴 하지만, 청주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청주 시내에서 미대 입시학원을 할 때까지만 해도 이런 삶은 꿈도 꾸지 않았다. 입시학원 경쟁에서 이겨 돈도 벌 만큼 벌어보았다. 그러나 ‘그림’보다는 ‘입시’ 자체에만 매달리는 환경에 신물이 난 그는 학원을 때려치우고 경기도 안성에 있는 무용가 홍신자씨의 ‘웃는돌 명상캠프’에서 1년반 가량 명상센터를 지으며 보냈다. 특히 그곳에서 호박을 키웠던 그는 알맞은 토양과 온도와 습도를 만난 호박만이 생명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그런 자리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새로운 결단은 두려움을 수반하기 마련이지만 이씨의 실험정신은 그를 최고 오지라는 강원도 정선의 산골로 이끌었다. ‘과연 이런 곳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런 화두를 안고 벌랏마을에 오기 전 1년 반 가량을 전기도 전화도 없는 정선의 외딴집에서 홀로 살았다. “누구나 다 그런 환경에 처하면 살아가게 돼 있어요.”
산의 온갖 풀들과 버섯들을 먹고 토할 때도 있었지만 그는 이것이 모두 야생을 회복하는 학습 과정이라고 여긴다. 그 과정에서 그는 산토끼들이 먼저 시식한 풀은 먹어도 탈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서진 집을 새로 짓느라 몸이 탈진해 갑자기 고기 생각이 간절해진 순간 바로 옆에서 매가 ‘푸드덕’ 하고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곳에 가보니, 매가 머리만 뜯어먹은 꿩이 있었고, 그는 그 꿩을 끓여 국물을 한달 내 먹으며 원기를 회복했다고 한다.
“자연에 살던 옛사람들은 오감이 열려 예지력이 있었지요.”
그가 이곳에 토속박물관 같은 집을 가꾸며 자연 속에 살아가는 것도 물질문명에 정신이 팔린 현대인들과 달리 오감이 열려 있던 옛사람들의 예지에 대한 확신 때문이다. 화가이자 목수로 일을 맡아 이곳저곳을 누벼야 할 때가 적지 않은 그지만 흔한 휴대폰 하나 없다. 편리함을 신봉하는 현대인들에게 이씨의 신념은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로 치부될 수 있겠지만, 그는 물질문명보다 인간의 예지를 더 믿는 쪽이다.
“(휴대폰이 없어도) 만날 사람은 다 만나게 돼 있거든요.”
청원/글 조연현 기자 cho@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이종국씨 부부 / 충북 청원 청남대를 지나 양의 창자처럼 굽은 숲 속 외길을 돌고 돌아 또 돌면 더 가려야 갈 수 없는 막바지에 벌랏마을이 있다. 육지 속의 섬이나 다름없는 곳. 문의면 소재지에서도 50리나 더 들어가야 하는 두메다. 이런 산골로 접어들면 도시인들은 한순간 세속사를 벗어나는 듯한 해탈을 느끼지만, 만약 이런 곳에서 1~ 2년, 아니 평생 동안 살라면 두려움부터 앞서기 마련이다. 무엇으로 생계를 이어간단 말인가. 친구도 없을 텐데 외롭지 않을까. 대형 할인점도 없고 시장도 없고 구멍가게조차 없는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축복보다는 부족한 것부터 셈하기 때문이다. 이종국(43)씨는 그런 두메에서 10년을 넘기고 있다. 이제 토박이나 다름없는 벌랏마을 사람이 된 그는 걱정부터 앞세우는 사람들에게 “죽을 때까지 먹고 써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풍요롭다”고 말한다. 식사 시간을 앞두고 그는 낫을 들고 집 뒷산에 올라가더니 20여분 만에 나물을 바구니 가득 담아 내려왔다. 깊은 산에 혼자 버려져도 살아갈 수 있는 ‘산귀신’답다. 그는 괴산의 산골 출신이긴 하지만, 청주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청주 시내에서 미대 입시학원을 할 때까지만 해도 이런 삶은 꿈도 꾸지 않았다. 입시학원 경쟁에서 이겨 돈도 벌 만큼 벌어보았다. 그러나 ‘그림’보다는 ‘입시’ 자체에만 매달리는 환경에 신물이 난 그는 학원을 때려치우고 경기도 안성에 있는 무용가 홍신자씨의 ‘웃는돌 명상캠프’에서 1년반 가량 명상센터를 지으며 보냈다. 특히 그곳에서 호박을 키웠던 그는 알맞은 토양과 온도와 습도를 만난 호박만이 생명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그런 자리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새로운 결단은 두려움을 수반하기 마련이지만 이씨의 실험정신은 그를 최고 오지라는 강원도 정선의 산골로 이끌었다. ‘과연 이런 곳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런 화두를 안고 벌랏마을에 오기 전 1년 반 가량을 전기도 전화도 없는 정선의 외딴집에서 홀로 살았다. “누구나 다 그런 환경에 처하면 살아가게 돼 있어요.”
산의 온갖 풀들과 버섯들을 먹고 토할 때도 있었지만 그는 이것이 모두 야생을 회복하는 학습 과정이라고 여긴다. 그 과정에서 그는 산토끼들이 먼저 시식한 풀은 먹어도 탈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서진 집을 새로 짓느라 몸이 탈진해 갑자기 고기 생각이 간절해진 순간 바로 옆에서 매가 ‘푸드덕’ 하고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곳에 가보니, 매가 머리만 뜯어먹은 꿩이 있었고, 그는 그 꿩을 끓여 국물을 한달 내 먹으며 원기를 회복했다고 한다.
이종국씨가 나무와 철사로 만든 작품을 토담집 벽에 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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